사전정보 없이 도서관에서 둘러보다가 발견한 책이다.
무심코 봤는데... 제목이랑 인상이 확 다르네. 사실 제목만 봤을 때는 좀 더 파퓰릭한 대중서일 줄 알았다. (가십적인 느낌이잖아-)
가계도 책이랑 같은 저자(보웬 제자-)가 쓴 책이고... (보웬적인) ‘가족 탐사’에 대한 책이다.
유명인 가계도를 사례로 들어가며... (보웬적인 관점의) 가족역동과 가족체계적인 이론을 전개해 나가는 (라이트한) 이론서에 가까운 느낌이다.
영어 원제는 ‘You can go home again: reconnecting with your family.’ (원제랑 너무 느낌 다른 거 아니냐.-_-; 제목에서부터 책 느낌이 확 달라지네-)
결국 집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가족체계적 역동을 이해하고. 분화하고. 관계 구도를 재설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단 느낌이다...


“이 책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에 대한 탐색, 즉 우리에게 ‘집home’이란 개념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가족과의 유대에 대한 책이다.”
집home은 자신의 출신, 인종, 계층, 성별, 수치나 비밀, 복잡미묘한 가족과의 유대를 타당한 것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집의 역사 밖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족을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자신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런 가족문제 다루는 책들에서 매번 단골처럼 등장하는 가족들이 있네. 브론테 가족. 프랭클린 가족. 애덤스 가족. 프로이트. 카프카 등등...
“브론테 가족 고유의 독특성처럼, 수많은 가족이 특정문제를 가지고 있다.” (개인이 저마다 고유한 -심리적인-문제를 갖고 있듯이-)
보웬 가족체계이론은. 늘 자기 가족만의 ‘고유한’ 어떤 맥락. 역동에 대한 성찰. 메타적인 관점. 적극적인 가설 설정과 탐구. 검증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
(가족적인 맥락에서의 개성화 과정과도 겹치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각자 자기만의 의미를 찾아야 되는...)


나도 딴엔 가족문제로 골머리앓았다고 여김에도... 온갖 역기능적인 융합과 자살. 죽음이 만연한 가족사를 보면... 지금 내 처지가 어디냐.. 하게 되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이야기는 불완전하다. 왜냐하면 사례를 설명하기 위해 가족의 특정 단면만을 조명했기 때문이다.”


애덤스 가족을 보면... 그 엄청난 사회적인 성공들에도 불구하고... (95년 기준 미국 대통령을 2명 배출한 유일한 가족- 온갖 사회적인 명망과 지위들-)
저마다.. 강박적이고 성취지향적인. 족쇄 같은 기대와 ‘가족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들이 짠하게 다가온다.ㅠ
“애덤스 가에서 심리적으로 분리하는 데 성공한 사람... (4대쯤 가면) 모두가 애덤스 가의 가족유산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았다.”


“부모가 모든 자녀에게 동일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신화 같은 이야기다. 사랑은 아이가 가족 안에서 가진 고유의 위치와 아이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
요건 형제순위와도 관련있고. 나만 돌이켜 봐도 형과 내가 가족 및 친척들 사이에서 받았던 어떤 기대 자체가 완전히 다르니까-
모든 가족이 같은 형제순위마다 똑같은 기대를 한다고 가정할 순 없음에도. 가정마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형제순위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거-


“셰익스피어는 ‘이름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었다. 가족체계적 관점에서 그 해답은 매우 많은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이름을 따오는 서양의 경우에는 더욱 그럴 거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름에 암시된 의미. 가치. 느낌적인 느낌을 가지고 비슷한 접근이 가능하다.
(내가 내 이름의 가족체계적인 의미에 대해서... A4 반 페이지 분량은 (필요하다면 더-) 구구절절 써낼 수 있다는 거...)


“삼각관계는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의 특징보다도 체계의 정서적 욕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문제는 그(사위)가 ‘버릇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가 딸과의 융합을 꿈꾸는 어머니의 욕구를 대신 위협했다는 것이다.”
“‘앤드류(남편. 사위)는 나(딸)와 융합하려는 어머니의 꿈에 정면으로 대항한 나(딸)의 거부였다.’”


“카프카는 전형적인 가족의 삼각관계에서처럼, 직접 편지를 아버지에게 전해 주는 대신 어머니에게 전달해 줄 것을 부탁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에게 편지를 되돌려주었고, 카프카는 그 편지를 간직했다.” (ㅠㅠ)
내가 가족체계 파고 나서 제일 먼저 의식적으로 바꾸려 든 게.. 의사소통에서 누군가를 중개역으로 두지 않는 거였다. 무조건 직접 본인한테 말하기...
(삼각관계에서 이전의 균형에 미묘한 변화를 주는 거라. 마냥 쉽진 않다.ㅠ 어떤 의도적인. 의식적인 시도.. 꾸역꾸역이 필요했다...)


“엘리자베스는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자신의 일부분으로 여기며, 기괴하게도 그에게 여자 옷을 입혀 키웠다.”
모성이 아들에게 과도하게 융합적으로. 합일적으로 굴 때. ‘아들’을 넘어 ‘딸’ 취급을 하게 되지 않나-


가족의 미해결된 상실(ex. 가족구성원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신화와 가족비밀...
“...이런 신화는 자연적으로 자녀에게 영향을 주게 되고 자녀는 죽은 사람의 대리자로서 생활하게 된다. 종종 이들은 이런 연결이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이런 것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대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정체감 이면에 숨어 있는 비밀을 알아야 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쫓아내는’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
요런 거 보면. 예전에 어디서 얼핏 봤던 (크게 관심 안 뒀던) ‘가족세우기’ 기법이 떠오르네...
뭔가 체계적인 뭔가보단 투사기법.. 정서적인. 막연한 느낌적인 느낌에 의존하는. 정밀하지 않은 그런 느낌이었음에도. 둘이 살짝 겹치는 영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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