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중후반기 독서 기록

Posted 2014. 8. 18. 13:52, Filed under: structured thinking/reviews
이런 식으로라도 정리 안해놓으면 감상이 그대로 증발할 것 같은 느낌이라서, 짤막하게나마 반 강제적으로 기록을 남겨놓으려 한다
(영화감상 프로젝트 때 해보니, 이런 방식이 길게 써야 한다는 부담도 없는 등 유지하는 데 효과가 있더라)


잭 런던 소설집 - 불을 지피다. (한겨레출판)
뭔가 문제의식이나 분위기에서 조지 오웰이 연상된다. 읽다 보면 왜 출판사가 한겨레출판사인지 자연스럽게 납득이 간다
대다수 부조리극에는 뭔가 불공평함, 억울함, ‘불특정 그들’에 대한 증오와 경멸의 투사 등이 패시브로 깔려 있다
그런 보편적인 감성을 충실히 전달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소설인 동시에. 그런 감정을 적절히 승화시키지 못한다는 점에서 선동적이기도 하다
특히 1, 2장의 이야기들에서 그런 경향이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마치 사회주의 우화인 것마냥. (3부는 자연의 냉혹함에 대하여.)
단편 ‘강자의 힘’에서 드러나는 세계관은 지나치게 빈곤하고 동화적이라 지루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쓰여질 당시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어려서. 생애 한 번쯤은. ‘좌파적 분노’. 불공평과 부조리에 대한. 세상에 대항하는 분노를 품은 채 살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전부는 아니지만) 이 소설 구석구석에 그런 분노가 도사리고 있는 게 느껴진다. 냉정히 절제되어 있지만 속으로는 타오르고 있는.
but 그런 식의 사고방식으로. 세상 불특정의 소위 나쁜 놈들에게 모든 죄악을 덮어씌운 채 정처모를 분노를 품고 사는 건 정서적으로 유익하지 않다.
그런 식의 단순화된 세계관을 밑바닥에 깔고 지어내는 글들은 결국은 다소 유치한 우화가 되기 십상이다. 단편 ‘강자의 힘’처럼.
어디선가 봤던 글이 생각난다. “예술가는 문제의 답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다.” 였던가, 비슷한 얘기였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조리함과 억울함, 분노의 투사는 결국 인류 보편적인 감정인 거다. (역사가 오래된)
그 분노가 어떻게 승화되는가와는 별개로. 어떤 식으로 뻗어나가고 어떤 희생양을 찾든 간에. 그런 분노와 부조리한 감정 자체는 실존하는 것이다.
곳곳에 묻어나는 어설픈 성토질은 배제하고라도. 냉혹하고 부조리한 상황을 보여주는 측면에서는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뒤의 부록에서, 잭 런던의 작품 중 논평이 없고 판단이 보류되어 있는 작품들이 가장 뛰어난 경향이 있다는 식의 말이 있는데. 거기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1, 2부와 3부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느껴지는데, 개인적으로는 3부, 그 중에서도 불을 지피다와 생에의 애착 두 단편이 가장 마음에 든다.


알프레드 알바레즈 - 자살의 연구. (청하출판사)
김형경씨 천 개의 공감 도입부였던가 어디서 나온 짤막한 에피소드를 보고 궁금해서 찾아본 책이다.
도입부 읽으면서 무슨 소설인 줄 알았다. 중간에 딱딱한 부분을 거쳐 끝부분까지 읽으면, 덤덤한 자기고백이 거의 소설만큼 먹먹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작가가 직접 말했듯이, 자살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은 여기에서 제시하지 않는다. 그냥 그 동안 있었던 논의의 흐름을 정리한 수준.

흥미로웠던 설명 중 하나는 초기 기독교 교리의 허점 때문에 순교를 빙자한 준 자살이 난무했다는 거고 (“믿기만 하면 죽었을 때 천국? 바로 죽어야겠다!”)
삼손 등 준 자살자가 성서에서 호의적으로 등장하는 거에 비해서, 기독교에서 자살을 ‘죄악’으로 만들기 위한 이런저런 과정이 있었다는 것.
또 책에서 중점있게 다룬 주제 중 하나가 자살과 예술, 낭만주의의 관계에 대한 건데 (어려워서 읽기 힘들었다...-_ )
그 중 낭만주의자들에게 삶이란 어떤 극적인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삶은 무가치) 낭만주의는 곧 자살지향적이라는 논지가 있다.
이를테면 짧게 불태우고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들에 대한 만연한 숭배 신화라든지, 죽음이 영감의 원천이라는 식의 믿음이라든지.

책에 나온 다양한 설명 중 가장 수긍이 가는 건, 자살은 실패의 고백이자 하나의 제스쳐로서 죽음으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관점이었다.


스티븐 킹 - 유혹하는 글쓰기. (김영사)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작품마다 호불호가 갈려서 100% 믿고 사지는 못한다. (다수의 구매실패 경험...)
‘예비 작가를 대상으로 쓴’ 스티븐 킹 자신의 개인적인 글쓰기 방법이라고 강조를 한다. 얼추 봐도 객관보단 주관이 팍팍.
(남들이 보기에) 좋은 글이 어떤 글인지 개념을 잡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생활글쓰기에 곧이곧대로 적용하기엔 좀 까탈스러울 것 같지만.
글 곳곳에 뜬금포 잔개그가 난무한다...-_- 이 양반 개그 센스 보소. 읽다 보면 헛웃음이 픽.

뭐니뭐니해도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력서 파트다. 확실히 스티븐 킹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쓴다.
근데 작가라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어렵게 살면서. 생업 와중에 틈틈히 쓰면서. 자기 작품을 사줄 에이전시가 나타나기만을 기대하며 버텨내는 건가?
처음 보는 유형의 얘기가 아니다. 국내 작가들의 경우에서도 많이 봤다. 회사 다니면서 세 시간씩 쪽잠을 자며 글을 썼어요 운운.
마약중독... 구하기가 쉬우니 중독되기도 쉽겠지. 마약중독 에피소드가 알콜중독과 동급으로 언급된다. 우리 나라였다면 쇠고랑 차고 매장됐을려나.

이 사람 스타일이 직설적이고 축 늘어지는 거랑은 상 극단이라.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형편없는 소설의 대표작으로 꼽는 걸 보고 약 빨았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주관이 많이 드러날수록 환영이다. 무슨 절대적인 글쓰기 교본을 찾느라고 읽는 게 아니니까.

스토리. 스토리. 플롯보다 스토리. 주제보다 스토리. 중요한 것은 언제나 스토리.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라고 강조에 강조를 거듭한다.
좋은 소재는 일종의 좋은 출발점일 뿐. 중요한 건 결국 이야기. 서술이다. 작가가 짜놓은 틀(플롯)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나가는.
그러니까... 글쓰기의 재능 =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가는 능력인데. 주제의식이나 문제의식 이딴 건 다 재능 이후의 문제라고 받아들여진다.

“처음부터 문제나 주제 의식을 가지고 출발하는 것은 형편없는 소설의 지름길이다. 좋은 소설은 반드시 스토리에서 출발하여 주제로 나아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열린책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일종의 창작노트라 생각하면 된다. 예전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업그레이드 버전인 것 같다.
소설 개미 등 기타 소설들 중간중간에 삽입된 걸로 본 익숙한 내용들이 많다.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드물다. (나한테는)
사실 100% 정확한 내용도 아니고. 카더라나 야사, 지나치게 주관적인 판단들이 많다. 하지만 읽는 태도만 확실히 한다면 정확도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백과사전마냥 곧이곧대로 팩트를 따지려 든다면 이 책에는 다소 문제가 있지만.-_ 영감을 주는 상징적인 소재 및 이야기라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까 이건 단순히 사실들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거다.
이 사람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이야기’들을 (‘팩트’가 아님) 선별 취합하여. 본인의 세계관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읽다 보면. 이 사람은 신비주의. 생태주의. 여성주의. 등등 소위 ‘대안적’ 사상들에 심하게 경도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일단 영과 파동, 우주 등에 대해 다루는 신비주의 과학에 대한 옹호가 두드러지고 (피라밋 파워 운운을 그렇게 진지하게 써놓을 줄이야...)
비기독교 신화에서 유사 공통 구조를 찾으려는 노력 + 비서구 문명의 문화 관습을 신비주의적 관점으로 미화하는 사례들.
무슨 숫자 뭐시기에서 비틀즈코드마냥.-_- 의미를 찾아내는 것... 이걸 뭐라 그러더라. 움베르토 에코가 푸코의 추에서 한 번 제대로 비꼬았던 거 아닌가.
“우리가 꿈이나 명상을 통해서, 또는 어떤 마약을 사용함으로써 초의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대다수가 이런 분위기라고 보면 된다.

읽다 보니 과거에 내가 경도되었던 사상들, 소위 ‘대안적’ 사상들을 현재의 나는 다소 미덥잖게 여기고 있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대안에는 답이 없다.” 현재의 부정에서 시작하는 애매두루뭉실한 이정표만 있을 뿐이다.
확고한 신념이 없는 상태로, 겉멋스러운 이미지에 현혹되어 무턱대고 해답을 찾으려 나섰다가는 결국에는 환멸밖에 못 찾을 거라는 것.
그러니까 이건 내가 요즘 느끼는 자기부정감의 연장이다. 일종의 전향. 개인적인 실패?와 지금까지의 사고경향성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마치 어설픈 변절자가 된 것마냥. 어느 쪽에도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그야말로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린 꼴이다.

계속 등장하는 동물실험 이야기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양식에서 지능을 배제한 결과를 보고 싶다, 뭐 이런 건가?
모든 실험결과를, 동물을 대상으로 한 그 자체로 놔두는 게 아니라 꼭 인간사회에 직유해서 하나의 우화처럼 써먹는 게 살짝 거슬린다.


프란츠 카프카 전집 1 - 변신 - 단편전집. (솔출판사)

단편소설이 장편소설보다 훨씬 압축적이고 실험적인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단편소설에 대한 로망이 있다
카프카 단편 ‘전집’이라는 타이틀을 보자마자 이건 사야돼, 싶어서 바로 지르긴 했는데... 앞부분에서 진도가 안 나가서 몇 번을 도로 덮었는지 모른다.
의미파악도 힘들고 지리장황하고 이게 무슨 뜬구름잡는 소린가.-_- 번역 탓인가, 아니면 원래 카프카가 이따위로 글을 쓰는 사람이었나.
...결국 접근방식을 바꿔서. 소설이 아닌 시 읽듯이 이미지로 느끼려 드니 그나마 낫지만. 그래도 난해하긴 매한가지다.
그나마 많이 알려진 작품들은 양호한 수준. but 미완결 소설의 조각들을 굳이 [누락] 섞어가며 무리하게 출간할 필요가 있나.-_ 그리 좋지도 않구만.

단편소설 대부분이. 이야기. 서술보다는. 강렬한 (신경증적인. 특히 편집적인) 감정의 이미지 한두 장으로 요약가능하다.
타자화된 세계의. 상식과 기대의 배반. 비합리성. 부조리 및. 그로 인한 (본인 및 세계에 대한) 의구심.
모든 전개가. 신경증적 불안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므로. 마치 꿈 속에서 부조리한 상황에 놓인 것처럼. 생생하면서도 현실감이 떨어진다.
(마치 꿈처럼. 의식을 건너뛰는 진행. 엄밀히 말하자면 ‘이야기’로서는 완성도가 다소 떨어져 보인다. 적어도 스티븐 킹 기준으로는.)

선고. 시골 의사. 및 해당 장에 포함된 작품들. 이 소설집에서 가장 뚜렷하고 와닿는 이미지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 아닌가 싶다.
변신. 이게 그나마 (다른 작품들을 볼 때 예외적으로.-_-) 가장 하나의 이야기로써 기승전결이 짜여진 작품이다.
유형지에서. 이건 조금 더 뒤틀면 공포소설 하나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살짝 아쉽다. (싱겁다.) 나는 장교가 탐험가를 거기에 매다는 걸 기대했었다.
화부. 나는 이게 독립된 단편이기보다 실종자(아메리카)의 한 (첫) 장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유독 따로 떨어져 나오는 일이 많은 것 같다.

“내가 썼던 모든 작품들 중 ...만을 남겼으면 하네... 그 이외에 나에 의하여 쓰여진 것이라면 예외 없이 모두 다... 불살라주게.”
유언장에서 카프카가. 몇개 빼고 다 불태워달라... 고 부탁했다는데. 나름 숙고해서 내렸을 그 부탁이 썡 무시당했다는 걸 알면 아마 분노했을 거다.-_-
개인적으로. 최소한 (미완성) 단편 쪼가리들의 절반 이상은. 부탁한 대로 불태워졌어도 큰 무리가 없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있다.
왜 단편 전집은 드물고. 단편선 형식이 더 많이 보이는지 이번에 확실히 느꼈다. (저마다 기준이 달라서 딱 맘에 드는 단편선 찾기도 쉽지 않지만.)


크리스텔 프티콜랭 - 굿바이 심리 조종자. (부키)

심리학 여기저기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인. 조작(manipulation)에 대해 별도로 다룬 책이 아닐까 싶어서 도입부만 보고 지른 책이다.
but 내가 바란 내용은 일상에서 흔하게 이루어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 manipulation을 짚어주는 그런 거였는데. 이건 다소 심한 경우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아무래도 심각한 조종 피해자를 잠정 독자로 상정하고 쓴 책이라, 제3자를 위한 객관적인 정보적 목적과는 다소 멀어지지 않았나 싶다
피해사례나. 대처법. 마음가짐. 등등 ‘문제’ 자체만을 따로 다루느라 개념 자체는 곁다리로밖에 다루지 않는다.
피해자(독자)를 달래느라 그러는지, “심리조종자는 이러이러하다!” 식으로 정형화된 단순한 이미지를 제시하기 일쑤. 제3자가 보기에는 좀 거슬린다.

읽으면서 새삼 느낀 건, 내가 자라온 환경이 꽤나 조작적이었다는 것과.ㅠ 내게도 알게모르게 가해자적인 면모가 스며들지 않았나 싶은 자각이었다.
manipulators의 특징이라고 나열해놓은 게. 내게는 환경상 익숙한 분위기고. 관점에 따라 내게도 부합한다고 볼 수 있는 특징들이다.
내 안에 심리조작의 피해자적 면모와 (악의가 결핍된. 형식상에서의) 가해자적 면모가 공존한다는. (나름 통찰이지만 기분좋은 느낌은 아니다)
(그중 일부는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만큼 심각하다고 (또는 일방적이라고) 여겨본 적은 없지만. 아마 꽤나 흔한 일일 거라 생각한다)

예전에도 (심리 쪽) 비슷한 책 읽으면서 몇번 생각하던 건데. 극단적 막장 케이스들은. 누가 봐도 알기 쉬우니 책 쓰는 데는 더 좋을지 몰라도.
그런 식의 구성이 오히려 일상에서 수시로 ‘아무렇지 않은 듯’ 일어나고 묻히는 ‘심각하지 않은’ 사례들을 상대적으로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지 않나 싶다.
오히려 작고 소소한 사례들을 다루면서 일상속에 숨어든 작은 문제들로 개념을 전개하는 그런 식의 기획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p.s. 그러고 보니. “이 분야에선 내가 최곤데” 식의 말은 엔간해선 자기 입으로 하기 힘든데...-_- 이 저자 믿어도 되겠지?


줄리언 바지니 - 에고 트릭. (미래인) http://delliny.tistory.com/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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