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겨울왕국

Posted 2014. 1. 24. 17:09, Filed under: structured thinking/reviews
겨울왕국. 정말 오랫만에 보는 디즈니다. 라푼젤도 안 봤으니, 어렸을 때 아나스타샤.-_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한때 이런 뮤지컬식 영화. 애니메이션 붐이 일던 시절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오히려 진부하고 촌스럽다 생각했었다. 지금 보니까 너무 좋다.

힘을 통제할 수 있을 때까지 모든 것들로부터 물러나 꼭꼭 숨는다. conceal it. don't feel it. don't let it show. be the good girl you always have to be.
모든 것이 통제 하에 놓일 때까지. 완벽해지기 전까진 드러낼 수 없다는 건. 전형적인 강박적, 완벽주의적 테마다.
make one wrong move, and everyone will know. 딱 대인불안이 연상되는 테마다. 증상을 숨기려 들수록 역설적으로 더 심해지는.
딱 하루만 버티면 된다 식으로. 불안에 사로잡힌 채 대관식을 견디고 있다. 툭 건드리면 터질 듯이 불안정한 상태다. 불안은 사람을 fragile하게 만든다.
but 그걸 모르는 상대방은 눈치없이 자꾸 권하고. 트러블이 트러블을 낳는다. 이런 식의 은폐는. 어떤 식으로든 답이 될 수 없다.
억압은 필연적으로 분열을 낳고. 억압. 은폐를 쭉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사람들을 떼어내게 될 거다. shutting people out.

Let it go. 노래 좋다. 감동의 도가니. 개인적으로도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정체성의 각성이란 테마는. 어떤 형태든 간에 꽤나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같다. (억압의 해방 like this. 또는 흑화. 회개. 기타 등등)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1차 각성. 2차 각성이 생각난다. 니체의 낙타 - 사자 - 어린아이 뭐시기랑도,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은유가 될 것 같다.
fears that once controlled me can't get to me at all. no right, no wrong, no rules for me. time to test the limits and break through.
여기서 엘사는 1차 각성. 마치 화이트스완이 블랙스완을 받아들이듯. 스스로를 몰아세우던 억압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억눌렀던 힘을. 자유를 만끽한다.
that perfect girl is gone. past is in the past. let it go. i'll rise like the break of dawn! 과거의 나와의 단절,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출발.

but. 거기까지다. 스스로의 억압을 걷어낸 것까지는 좋은데. (그 억압을 유지하게 만들었던) 근본적인 불안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항상 주위에 상처를 주는 존재라는 정체성.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가해공포와 (몰이해의 타인에 의한) 위해공포의 공존.

결국 엘사가 선택하는 건. 마치 인투 더 와일드의 주인공마냥. 철저한 고립을 통한 (혼자만의) 자유다. 관계욕망이 적을 경우 가장 이상적인 도피지 싶다.
none of you would bother me, as i won't bother you any. 이게 아마 모든 고립. 도피. 단절에 깔린 기본적인 사고일 거다.
i don't belong arendelle. i belong here. alone. where i can be who i am, *without hurting anybody*. 하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
without bothering. or hurting anybody는 환상에 불과하다. 현실에는 없는 판타지다. 당장, 영원히 지속되는 겨울과 얼어붙은 아렌델이 있다.
애초에. 과거로부터의 완전한 단절이 가능할까. 쉽지 않을 거다. 과거와의 단절을 원한다는 것 자체가. 과거에 그만큼 심하게 얽매여 있다는 거니까.

고립. 도피는 단지 위협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당장의 false sense of freedom을 줄 뿐. 정작 실제 문제는 아무 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애초에 고립 자체가. one-side way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누가 찾아오는 순간 간단히 깨지는 게 고립이다. 아나가 찾아왔듯이, 원정대가 찾아왔듯이.
성으로 침입해 오는 invaders. intruders의 분위기는. 딱 내가 인투 더 와일드에서 기대하던. 도피가 깨어지는 장면이었다.
그들의 공격은. 억압의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공포가 그대로 실현화된 것이나 다름없다. 거봐. 이럴 줄 알았어. 이걸 두려워하고 있었던 거잖아.

결국 현실이었다면 아마 등장인물 다 죽고 막장으로 치달았을 줄거리를.-_ 한 번에 깔끔하게 해결해 주는 건 아나의 true love. 진정한 사랑이다.
예전엔 동화 속에 나오는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그딴 게 어딨냐고 냉소하던 때가 있었다. but 지금은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결국 이제 와서 내가 이해하는 진정한 사랑이란. 그런 내면의 불안. 편견을. 인간에 대한 불신을 (장기적으로) 녹여낼 정도로 순수하고 강렬한 애정이다.
꼭 남녀 관계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가족애라든지. 모성애라든지. 아나가 그 수많은 냉대와 밀쳐냄에도 엘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듯이.
불안에서 야기된 비상식적인 행동에 흔들리지 않는. 개떡같이 얘기해도 그 속의 찰떡을 알아주는. 조건적이지 않은. 기타 등등.
정신분석학에서 ‘환자는 언제나 옳다’고 하던가.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필연적으로 자기희생이 수반된다는 것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단 하나뿐인 지고지순한 사랑은 믿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어디에나 시도때도없이 존재할 수도. 혹은 전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ㅠ)

...아래 클립은. 유튜브에 올라온 let it go. 이 영화에서 가장 감정이 고조된 장면이다.

'structured thinking > review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줄리언 바지니 - 에고 트릭  (0) 2014.08.18
2014 중후반기 독서 기록  (0) 2014.08.18
영화, 케빈에 대하여  (0) 2014.01.24
영화, 파이트 클럽  (0) 2014.01.23
Respon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