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이트 클럽

Posted 2014. 1. 23. 22:33, Filed under: structured thinking/reviews
파이트 클럽. 책을 먼저 보고 영화를 나중에 본 케이스인데도. 영화에서 거의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잘 만들었단 얘기다.
with insomnia, nothing's real. everything's far away. everything's a copy of a copy of a copy. 불면증 비슷한 거라도 겪어본 사람은 무슨 느낌인지 알 거다.
이런 불면증의 느낌은 이인감. 비현실감과 연결되어 있다. (아직까진 현실에 발붙이고 있음에도) 살짝 붕 뜬 느낌. 멍함. 공허감. 무의미감.
붕 뜬 감각 속에서도 쉴새없이 돌아가는 쳇바퀴. 무의미함 속에서도 쫓기듯 바쁜 일상. 자기기만적 목표인 완벽한 콘도와 가구들.
이 영화는 우리가 애써 힘들여 발을 붙이려 노력하는 현실-쳇바퀴-의 균열을 암시하며. 그 자체를 부정해 버리는 가능성을. 판타지를 보여준다.
타일러 더든의 등장. 콘도의 폭발. 가방의 분실. 무소유. 제로베이스. 자기파괴의 충동. trying to hit bottom.
모든 이미지가, 보통 흔하게 말하는 자기계발. 순응적이고 건실한. 온건한. 예측 가능한. 남부럽지 않은 삶. 이 모든 수식어의 대척점을 가리킨다.

first rule is, do not talk about the fight club. second rule is, you do not talk about the fight club. 외국 게시판에서 버그 등 비밀 얘기할 때 많이 보이는 문구다.

일하고. 일상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쳇바퀴라면. 싸움은 본능이자 삶 그 자체다. 싸우는 동안에는 이인감. 비현실감이 끼어들 틈이 없다.
안정감. 집착. 고통(싸움?)에의 두려움. 회피. 등은 쳇바퀴의 범주에 들어가는 거다. 싸움. 생존본능. 직면. 삶을 스스로 통제한다는 느낌. 이게 삶이다.
피. 흉터. 타박상. 쓸린 상처. 볼에 뚫린 구멍. 부러진 이 등은 싸움의 훈장이다. 쳇바퀴에 안주하지 않았다는, 삶의 징표다. 고통이다.

처음의 파이트 클럽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만 존재하는. 아직까지는 개인 차원에서 존재하는 일시적 일탈이다.
하지만,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파이트 클럽은 그 범위를 사회로 넓힌다. 순간의 일탈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무의미한 쳇바퀴 그 자체를 파괴하는 것.
forget about what you think you know about life. hitting bottom isn't a weekend retreat. stop trying to control everything and just let go.
지금의 현실을 구성하는 기반. 가치관. 사고방식. 질서 등, 쳇바퀴를 구성하는 모든 문명적인 것을 혼란시키고 흔들려는 시도다. 말하자면 테러다.
초반의 파이트클럽이나 후반의 메이헴 프로젝트나, 그 근본의 세계관은 (거의) 같다. 그 스케일이 차원이 다를 뿐이다.
but. 이 시점에서부터 주인공의 소외가 보이는데. 결국 이 판타지에 (일반적) 관객이 공감가능한 한계점은 거기까지일 거라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즉 쳇바퀴로부터의 순간적 일탈을 꿈꾸지만, 사회 전체가 야생. 본능. 충동. 자유. 생존의 장으로 탈바꿈하는 걸 바라진 않는다는 거다.
사실 이 쳇바퀴는 지루하고 무의미한 만큼 그만큼의 안정감. 발을 디딘 느낌을 주니까. 그런 안정감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assignment. you're gonna go out. you're gonna start a fight with a total stranger. you're gonna start a fight, and you're gonna lose.
이 영화에서 개인적인 최고의 명장면은. 스페이스 몽키들이 낯선 사람한테 무작정 싸움 거는 신이었다.-_ 나는 그랬다.

이 영화가 자본주의 등 기존 사회. 세계관의 파괴라는 테마를 담고 있다고 해서, 좌파적 세계관의 연장에서 볼 수 있는 건 또 아니다.
이건 그냥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에 가깝다. 흔히 말하는 좌파적. 공동체적 세계관은 오히려 이 영화가 대척점에 두는 그 무언가에 속해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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