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 스완

Posted 2014. 1. 22. 15:36, Filed under: structured thinking/reviews
블랙 스완. 보면서 굉장히 정신력 소모가 심했던 영화다. 나쁘지 않았지만, 두 번씩 보고 싶지는 않다.-_

어머니가 일단 정상이 아니다. 딸에게 죄책감을 유발해 조종하려는 엄마. 그걸 또 싫다고 못 하고 맞춰주는 딸. 겉으론 ‘착하지만’ 속으로는 썩어가는.
어머니와 주인공이 아주 죽이 잘 맞는다.-_ 사실 주인공 같은 완벽주의적 성향만큼 외부에서 쥐락펴락하기 쉬운 성격도 또 없을 거다.
매순간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다. 완벽주의적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한테는 거의 일상인 일이다. 당위성이 실재를 이긴다.
you can't handle it. 결국 이게 억압적인 어머니가 하고 싶은 말이겠지. 내가 해줄게. 너는 못할 거니까. 나는 착한 엄마니까. 반항은 나쁘니까 가만있어.
손톱 사이 물어뜯고. 파고. 손톱을 ‘다듬는’ 건. 강박적 성향의 대표적 발현 형태다. 중간에 손가락껍질 훅 뜯어내는 거 보고 질겁을 했다.-_

이건 예술가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예술가는 소재일 뿐. 하긴 일정 이상 강박적이지 않은 사람이 예술을 할 수 있을까. 난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나는 예전부터 내 안의 강박성을 최대한 들어내려고 아주 기를 쓰고 있지. 근데 그닥 성공적이진 않은 것 같다.-_

화이트스완과 블랙스완. 본인의 화이트스완적인 모습만을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블랙스완적인 면모를 철저히 억압하고 있는 주인공.
성적인 면모와 섹스에 대한 억압. 감독이 섹스를 즐겨? 하는 물음에. 대충 넘어가지? 식 웃음으로 무마하려 드는 모습.
자위하는 신에서. 옆에 있는 엄마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신은. 결국 엄마가. 이런 경직성의 기여자이자 해결에 방해가 되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근데. 엄마의 행동과 별개로. 그딴 식으로 화내고. 미친년처럼 굴면서.-_ 떼어낸 거를. 엄마를 극복했다고 말하는 건 말도 안 되지.-_
극복을 위한 첫단추라고 말하면 또 모를까. 그 자체는 극복이 아니라 또다른 막장이다.-_ 하지만 좀더 관계를 진전시킬 틈도 없이 죽어버리니 원...

릴리에게 주인공이 엄청난 반감. 위화감을 느끼고. 경직된 태도를 보이는 건. 자기가 억압한. 혐오하는 면모가 고스란히 보이기 떄문이다.
릴리는 화이트스완적 면모 약간과 더불어. 블랙스완적 면모를 감추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껏 드러낸다.
약과 클럽. 섹스. 완벽한 조합이다. 나도 좋아해. 죽기 전까지 외국 나가서 약은 꼭 한번 빨아보고 싶다... 쎈 걸로. 잡히긴 싫은데. 무슨 느낌일지 궁금하다.
그녀와 fucking하는 환각을 보는 게. 이상할 일도 아니다. 분리된 자아. 자신의 억압된 면을 상징하니까. (주인공이 그렇게 느끼니까.)

엄밀히 말하면. 주인공은 죽을 때까지 블랙스완과의 온전한 융합을 이뤄내지 못한다. 지 말론 완벽하다지만.-_ still, she's a perfectionist.
영화 후반부 그건. 그냥 어설프게 블랙스완을 받아들이다가 멘붕한. 한순간 내면의 블랙스완한테 먹혔다가 뱉어진 화이트스완이지. 융합이 아니지.
이런 류의 멘붕은 원래 한 방에 때려맞기 마련. 그 안에 있을 때에는 자기 혼자 모른다. 벗어나고 나서야 밀려오는 십수 년간의 멘붕.
끝까지. 죽을 때까지 분열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진짜로 융합을 말하려면, 그녀는 망가지는 게 아니라 더 강해졌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블랙스완적 면모에는. 화이트스완에 포함되지 않는 것. 주인공이 억압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저런 어둠의 포스를 풍기는 극단적인 케이스들 말고도.-_ 훨씬 온건하고 정상적인. 발랄하고 귀여운 것들까지.
진정 완벽해지기 위해서. 화이트스완과 융합해야 할 블랙스완적 면모를. 저런 이상심리적인. 어두운 것들로만 꽉꽉 채우려 드니. 결론이 이 따위로 나지.-_

결국 이건. 강박적. 억압. 착한아이 컴플렉스. 왜곡된 완벽주의 등에서. 어설프게 깨고 나오려다 실패하고 주화입마하는 케이스를 그린 영화다.
블랙스완적 면모를 받아들이는 데조차. 완벽주의적이기 때문에. 융합이 아니라. 블랙스완 그 자체가 되는 거지. 먹히는 거지.
차라리. 더 차분하게 감정선을 잡아갔으면 좋았을 텐데. 정신분열 수준의 환각과 공포영화 수준의 연출에 미쳐가는 장면은 투 머치다.
후반부 갈수록 현실과 환각의 뒤섞임... but 영화의 방향성을 안 이상. 뭐가 환각인지 아닌지 따위 다 뻔하다. 전혀 긴장없이 봤다.
긴가민가하며 본 환각은. 맨 처음 손가락 껍질이랑.-_ 마지막 주인공이 진짜로 자기 배를 쑤셨나 아닌가뿐이었다. 안했다면 새로운 앞날이 기다릴 테니.

차라리. 백조 엔딩에서. 백조 옷을 입고도. 흑조 깃털이 돋아나와. 백조가 흑조한테 완전히 먹혀버린 걸 보여주는 게 훨씬 더 극적이었을 거 같다.

중간에 베스 찾아가는 신에서. perfect? fuck you. i'm not perfect. i'm nothing. 이건 뭐... 대사가 대놓고 완벽주의의 상징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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