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영화감상 기록

Posted 2014. 11. 3. 03:44, Filed under: structured thinking/reviews
신년맞이 프로젝트로, 하루하루 생기는 자투리시간을 모아서 영화 한 편씩 보기를 진행 중이다
그러고 보면 책은 어디서 주워듣고 나중에 봐야지 했던 건 거의 다 봤는데, 영화는 왠지 잘 안 찾아보게 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나중에 보려고 적어둔 영화만 다 본다 쳐도 하루에 한 편씩 1년은 넘게 걸릴 것 같다.-_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 큰 기대 없이 봐서 그런지 재밌었다. 본 시간이 아깝진 않다.
책을 예전에 읽어봐서 그런지 이리저리 짤리고 바뀐 부분에만 신경이 쓰인다. 베오른 거미전투씬 등등 간달프는 왜 거기서 잡히니.-_
타우리엘-킬리 러브라인은 뭔가 개연성이 없다. 레골라스는 거기서 뭐하는 거냐.-_
호수마을 분위기가 뭔가 이질적이다. 언뜻 보면 중국 같기도 하면서 무슨 흑사병 걸리기 전 유럽 분위기
늙고 교활한 드래곤이 현란한 말빨 심리전과 bluffing으로 빌보를 들었다 놨다 해야할텐데...
그닥 호감 안 가던 드워프들 급 띄워주는 액션씬 만드느라 스마우그를 그냥 완전 무슨 근육바보-_ 로 만들어놨다.
무슨 도발마다 다 걸리고 이렇게 멍청하고 다루기 쉬운 드래곤이 있었나.-_ 애초에 그 머리 수준으로 드워프왕국을 싹쓸었다는 게 용하다.
원작소설 90%쯤에서 정말 애매하게 끊었다. 막 오크와의 전투를 무슨 반지의 제왕 식 대작으로 만들라 그러나.


캐리 (2013, 리메이크판). 내가 예전 영화를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가. 느낌이 왜 이리 다르지 (별로지)
예전 거 봤을 때와는 달리 (생리 신에서) 패닉 상태인 캐리보다 오히려 괴롭히는 애들 입장이 더 공감이 가는 건 내가 비뚤어진 탓인가.-_
너무 애를 *대놓고* 주눅들게 만들어서 오히려 공감이 안감. 실제로 주눅든 애들은 오히려 티를 안내려고 애쓸텐데
현실감을 주려고 그러는지 스마트폰에 동영상 유튜브에 업로드 등 이것저것 굳이 갖다붙이는 게 오히려 위화감이 들게 한다.
초능력을 너무 대놓고 남발하는 거 아닌가.-_ 어쩌다가 감정 흔들릴때 나오는게 아니라 시도때도없이 터치고 날리고 무슨 무적 캐릭으로 만들어놓음
크리스 + 남친. 돼지잡는 신. 불필요하게 너무 질질 끔. 번갈아가며 쓸데없는 감정선. 오히려 평면적인 캐릭터로 넘기는게 나을거같은데...

대학살신. 보면서 살짝 울었다.-_ 이 영화 앞부분은 단지 이 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나 마찬가지. 근데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찬다.-_ 많이 부족하다
한순간 꼭지가 돌아서 터뜨리는 게 아니라, 이건 무슨 계획범죄마냥.-_ 중간에 감정의 틈이 너무 많다. 막 몰아붙였어야 하는데.
이 영화의 백미인 대학살신. 그리고 집으로의 복귀 후 신. 엔딩까지... 모두 예전 것보다 맘에 안듬.-_ 매우 아쉬움.
주인공 연기도. 초능력 다룰 때 너무 그로테스크함을 강조하려 든다고 할까.-_ 오히려 몰입도를 떨어뜨림. 내가 바라는건 그런게 아님.
글로 줄줄 쓰여진 소설과는 달리. 영화는 한정된 시간에 이것저것 구구절절 챙기려 들다가는 오히려 큰 틀을 놓치게 된다.
캐릭터가 평면화되는 걸 감수하고. 최대한 감정선 고조에 방해되는 요소를 걷어내야 할 텐데. 소설에나 나올 법한 구구절절이 자꾸만 흐름을 끊는다.
영상미. 강렬하게 때리는 이미지. 뒤흔듦. 이런 걸 바란 거지. 구구절절한 서사 나열을 바란게 아니다. 원작 소설이 어떻든 전혀 관계없다.

스티븐 킹 소설을 여러 편 읽어봤다. (정작 캐리는 안읽어봤다.) 지금 생각해보니. 스티븐 킹 문체를 *그대로* 옮기면 딱 이런 느낌이 나올 것 같다.-_

...다 보고 나서. 내 기억이 미화된 건가. 예전 영화 대학살신을 다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찾아보진 않았다.-_
+ 다른 리뷰들 죽 훑어보다가 너무 한 가지 얘기가 자꾸 나오는 거 같아서. 이 영화는 굳이 왕따 문제와 안 엮더라도 보고 느낄 거리가 있다.
왕따 문제와 굳이 엮어서 ‘왕따 희생자’의 틀에서만 캐리를 보는 건. 오히려 어느 정도 감상의 시야를 좁힐지도 모른다.

p.s. 우연히 1976년작을 (중간중간)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대학살신을 다시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리메이크작보다 훨씬 낫다.-_-


그래비티. “우주 속의 먼지로 사라지고 싶다.ㅠ” 이 말이 실제로 무슨 의미인지 실감하게 해주는 영화.-_
개인적으로 우주에 대한 로망이 없다. 딱 space oddity의 이미지. fragile and unstable. silent. 지구와의 단절.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자들의 아득한 공간.
우주에 대한 이런 이미지는 꽤나 전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사실 기대 이하였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너무 주위에서 시끄럽게 띄워놔서. 기대치를 실제 이상으로 높여놓으니 충족될 턱이 없지.
다른 리뷰들 찾아보다 보니 제목에 대한 이런저런 썰이 있던데. 그냥 매일 겪는 중력. 우리의 일상. 삶의 소중함이라는 주제를 대놓고 드러낸 거지 싶다.
내가 그닥 만족스럽지 않은 건. 다시 태어남. 일상(삶)의 소중함 등의 주제에 넋놓고 감동할 만한 내적 이미지가 부족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i may die at any time and soon. or... perhaps i can survive with my own effort and luck.
극한상황에서. 잘 하면 내 노력으로 죽음을 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죽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긴장과 공포를 놓지 못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사실 주인공은 영화 중 어느 순간에라도 죽을 수 있었다. 결국 살아남은 건 운. 요행이다. 물론 가만있었다면 그 요행조차 없었겠지만.
만약 나라면. 최대한 이완한 채로 ‘우주 속의 먼지로’ 표류하는 느낌을 한껏 받아들였을 것 같다. 산소부족으로 잠들듯 졸도하며. 고통없이 몽롱하게.

...생존률을 계산해서. 가망없는 끈을 놓을 수 있는 사람은. 같은 판단기준 하에서. 가망없는 상대방의 손을 냉정하게 떼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어나더 어스. (애초에 기대가 낮아서 오히려) 기대 이상이었다. 분위기가 몹시 마음에 든다.
그래비티에서도 언뜻 보이듯, (내가 보는) 우주의 궁극적인 이미지는 지구에서의 삶의 허무. 무의미. 현실로부터의 단절. 도피다. space oddity.
일종의 자살충동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지구. 현실. 삶에 대한 긍정의 부재. 무의미. 허무.
이런 감각이 반드시 우주와 연관될 이유는 없지만.-_ 굳이 제2의 지구라는 소재를 가져다 쓴 건 정말이지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래비티가 재난을 극복하며 삶을 긍정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면. (그래서 마음에 안 들지) 이 쪽은 그 (허무적인) 감각 자체에 충실해서 마음에 든다.
다른 리뷰들 보니 무슨 원죄와 용서. 분열과 융합. 뭐시기 하던데, 솔직히 나한테는 그냥 이 허무감을 둘러싼 부차적 감정으로만 느껴졌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주인공의 사죄는 죄책감뿐이 아니라. 공허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시도처럼 보였다는 거다. 사죄 자체가 삶의 의미가 되는.

결국 소재보다 중요한 건. 문제의식. 주제. 그리고 이미지다. 이 영화는 제2의 지구가 없이도 그 자체로 성립한다. 소재는 그냥 (훌륭한) 양념이다.


케빈에 대하여. http://delliny.tistory.com/107


월플라워. 케빈에 대하여 리뷰랑 유독 엮여있는 경우가 많길래 내친 김에 연달아 봤는데... 난 그저 그랬다.
흔히 말하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테마를 내세우는 영화들은. (가족영화. 일부 성장영화 등) 그 속에 나름의 성찰이 있다 해도. 살짝 경계를 세우게 된다.
너무 하이틴 영화 아닌가.-_ 케빈에 대하여와의 연관성은 그냥 같은 배우가 등장한다는 것뿐. 이런 식의 성장 이야기는 확실히 내 취향이 아니다.
주인공은 어쩐지 내 타입은 아니고. 그나마 샘이 더 공감가는 캐릭터 같다.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i don't deserve this 식의 자기서사.
왜 나는. 우리는. 우리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걸까. 나한테 이 영화의 중심서사는 이거다. 그 외 다른 내용은 잘 기억도 안 나니까.-_
we accept the love we think we deserve. 이건 영어로 써야 된다. 한국말보다 영어가 훨씬 잘 붙는 단어들이 있다. deserve도 포함.

1학년과 졸업생. 나이 상관없이 친구가 된다는 게 부럽다. 존댓말은 언어가 사고를 바꾸려 드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개인적으론 영어 쓰는 게 꽤나 편하다.
문득 뜬금없이. 군대에서 병장 때. (나름 친근한) 동갑내기 하사한테 나도 모르게 반말이 툭툭 튀어나오던 기억.-_ 사고부터가 반말이니 뭐.


엘리시움. 볼 때는 그저 그러네. 하고 봤는데. 다 보고 나니 뭔가 (부정적으로) 껄끄러운 맛이 많이 남는 영화다.
인구과밀. 비좁음. 질병. 고층건물에 덕지덕지 붙은 불법가옥. 부자들은 따로 모여서 사는 등. 기본적으로 내가 그리는 (근)미래상과 얼추 흡사하다.
만약 내가. 계층 사이의 갈등구조에 집착하는. 정치과잉적인 사람이었다면. 아마 내 비슷한 뻘글이 이 영화보다 더 먼저 나왔을지도.-_

but. 처음 시작 빼고. 중간부터 결말까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 이 영화의 문제의식 자체가. 이상하게 배배 꼬여 있다.
애초에. 그들의 가난과 절망이. 억압에 의한 거였나? 엘리시움 공동체 때문이었나? 아니다. 인구증가. 인구과밀로 인한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부자들이 자기들끼리 뭉쳐. 부를 나누어주지 않는다는 건. 괘씸죄에 불과하다. 애초에 그들이 재난의 원인이 아니라는 거다.
애초에 생존 문제가 아니라면 그들의 삶에 침투할 명분은 없다. 왜 자기들끼리 알아서 살 수 없는가. 설국열차에서는 식량이었고. 엘리시움에서는 의료다.
식량이. 생존에 직결되는 1차적 자원이라면. 의료는 2차적 생존자원이다. 설국열차의 상황보다 비교도 안 되게. 훨씬 덜 절박하게 다가온다.

이 상황에 직결되는 원인 중 하나인. 인구과잉 문제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미시적 입장에서. 감상적인 접근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인구문제는 미시적 관점에서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 애초에 아이를 낳는 게 죄도 아니고. 다산은 개인 입장에서 오히려 축복이 될 수도 있다.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냥 모두가 무고한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억울하고 부조리하겠지. 그렇다고 그게 엘리시움 탓은 아니지.

문득 흥부놀부 설화가 연상된다. 시도때도없이 애를 낳아놓고 죄다 굶기는 ‘착한’ 흥부와. 그를 한심하게 여기는 ‘못된’ 놀부.
마치 흥부가 가난한 건 단지 놀부가 도와주지 않은 탓이며. 순순히 나눠주지 않는다면 직접 놀부네 집을 털어서라도 모두가 공평히 먹고 살아야 한다 식의.
동화적 세계관 이상의 인식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거다. 오히려 동화적 선함의 가면을 쓸 필요가 없는 만큼 훨씬 더 과격하고 노골적이다.
엘리시움 점령 이후. 웃으며 뛰어다니는 애들 장면을 보면서. 무슨 유니세프 광고인 줄 알았다. 판에 박은 듯이 노골적으로 감정에 호소하는 이미지.
애초에 엘리시움이 유지가능한 건. well-balanced 소수집단이라 그런 거 아닌가.-_ 인구과밀에 사망률까지 제로가 되면 오히려 문제는 훨씬 악화될 텐데.

이 영화는. 문제의 근원은 아무것도 다룰 생각 없이. 부자들의 주머니를 털자 식의 빈곤한 발상을 두고. 그걸 감동적 이미지로 포장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이렇게 몰고 간다. 애초의 원인은 다 필요없고. 해결책을 나눠주지 않는 저 엘리시움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원인은 상관없고. 저놈들 부자 놈들한테서. 그 빌어먹을 부와 기술만 뺏어온다면. 이 세상은 자동으로 다시 천국이 될 거라고. 그게 선이고 정의라고.

보고 나서는 영화선정 실패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면적이지만.-_ )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뭐이리 요즘 영화들마다 닌자들이 많냐.-_ 미친놈에 카타나에 슈리켄이라. 완벽한 조합이다.-_ 저쪽 애들은 일본에 이상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듯.


디스트릭트 9. 엘리시움 리뷰랑 계속 엮이길래 내처 봤다. 감독의 전작이라길래. 또 헛소리 늘어놓을까봐 거시기했는데. 생각보단 훨씬 낫다.
등장하는 외계인. 프론prawn은. 점액에 촉수라든지 알까지. 이미지가 딱 바퀴벌레 같다. 심지어 하는 짓까지 비슷하다.
확실히 집단의 구심점. 리더. 지휘관이 없으면 전체가 산으로 간다. 초반에 뭘 하더라도 유리했을.-_ 협상 입장에도 불구하고. 저런 취급을 받고 살다니.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 비위생적인 생활과 혐오감을 유발하는 외모. 단순노동직. 아둔하고 폭력적인 성향.
감독 인터뷰도 그렇고. 내용 자체가. 그냥 대놓고 외국인혐오. 제노포비아에 대한 풍자다. 단순한 연상이 아니라. 아주 그냥 대놓고.-_

인간들이 프론을 막 대하는 건. 그 사람이 애초에 막대먹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패러다임 쉬프트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저런 비인간적인 사람들이 있나. 하고 비난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왜냐면 저건 그냥 인간의 보편적인 기본 모드니까. 자기 자신의 모습이니까.
애초에. 인간의 행동을.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으로 나누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 인간적이란 게 애초에 뭔지도 애매하니까.
난 절대 안 그런데. 저놈들은 뭐야. 쯧쯧. 하는 것 자체가. 아직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는 거다. 누구든 환경이. 분위기가 바뀌면 거기에 맞출 수밖에 없다.
초반의 능글맞고 비호감적인 비커스와. 후반의 주인공 비커스는. 완전히 같은 인격체다. 상황과 환경이 그를 바꾼 (달리 보이게 만든) 것뿐이다.

굳이 선악의 기준을 들이민다면. 인간은 동시에 착하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당시 상황과 주위 환경에 따라. 기준 자체가 유동적일 뿐이다.
착한 인간을 나쁜 인간으로부터 분리해내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분열을 낳는다. 착한 인간이 따로 존재한다는 믿음 자체가. 센티멘털리즘적인 태도다.
영화 내에서 악으로 표현되는 mnu가 하는 일은. 결과적으로는.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다. 도덕성은 차치하고 생각하면 그렇다.
문득. 미시적 인간. 개인으로부터. ‘나쁘지만 유익한’ 면모들을 분리해내기 위해서. 거시적 기관들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뻘생각이 들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는데도. 의외로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_


파이트 클럽. http://delliny.tistory.com/106


오블리비언. 왠지 이름이 뭔가 있어 보여서. (게임이름?-_ ) 기대도 뭣도 없이 봤는데도. 그닥 임팩트가 없다.
여주인공이. 미모와 별개로. 뭔가 언밸런스한 이나영 닮았다. (...) 1초 이나영. 코 크고 입술 두꺼운 외국 이나영. 음 1cm 낙타 속눈썹도 추가해야겠다.
내가 원래 닮은 꼴을 잘 찾는다. 생각해 보니 우리집 고양이는 눈 가늘게 떴을 때. 아빠 어디가에 나오는 송지아 닮았다.-_ 뚱할 때 표정이 똑같다.
빅토리아는. 뒷모습 옆모습 볼 때. 뭔가 소녀같은 느낌이 있어서 살짝 설렜다. 사실 미모든 이미지든. 빅토리아가 더 우위인 것 같다.-_
개인적으로 중후반부 빅토리아 비중에 대해 불만이 있다.-_ 한정된 러닝타임이라지만. 충분히 더 살릴 수 있는 캐릭터였는데. 줄리아보다도 훨씬 더.
후반부는. 뭔가 굉장히 스토리가 엉성한 느낌. 그렇게 허술하게 방어가 뚫리고. 그렇게 쉽게 일이 풀리고. 만사가 해피 고고라니.

화면도 이쁘고. 설정이 SF영화 치고도 꽤나 흥미로운 축에 속한다. 인류를 침략한 (외계) 기계와. 착취. 복제. 기억 조작과 정체성의 문제까지.
근데. 딱 거기까지다.-_ 설정은 흥미롭지만 뭐 하나 제대로 깊이 들어가는 게 없고. 그냥 줄거리는 그냥 시놉시스나 보면 될 정도로 딱히 문제의식이 없다.
그러니까. 양념으로서의 설정 및 소재는 훌륭하지만. 알맹이가 없다. 화면 이쁘고. 설정 멋있고. 그걸로 끝. 하고픈 말이 대체 뭔지.
아무 것도 제대로 말하는 게 없다. 메세지가 없다. 그냥 보여주기식 영화. 흥미로운 설정과. 이미지. 예쁜 영상을 생각 없이 즐기면 그걸로 될 듯하다.
...주제가 없다기보다. 짜잘짜잘한 주제들이 산개되어 있어서. 뭐 하나 제대로 깊이있게 말하지 않는다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다.

기억의 파편을 가진 복제인간은. (원 인간이 파괴된 상황에서) 원래 인간과 어느 정도나 정체성을 공유하는가.
물론 동일인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상응하는 대우를 받을 권리는 있을지도. but. 만약 존의 복제들이. 한꺼번에 풀려나 돌아다닌다면 어떨까.
제각기 기억의 파편을 가진. 수천 명이 돌아다닌다면. 그 때는 어떻게 될까. 테트랑 같이 자폭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게 더 재밌었을 것 같다.-_
어렸을 때 봤던 시간탐험대 만화가 생각난다. 그것도 결론은. 여러 제각각 시간에서 온 수많은 주인공들이. 축구팀을 짜는 등. 공존하는 해피엔딩이었다.


더 문. 이것도 오블리비언 리뷰랑 은근히 엮이길래. 그리고 평가가 다들 좋길래 내처 봤는데. 확실히 볼 만하다. 잘 정돈돼 있다.
위의 감상에다 뻘생각 비슷하게 썼는데. 왠걸 (굳이 따지자면) 복제인간들이 동시에 돌아다니는 얘기라서. 으잉? 싶음.-_
오블리비언도 이것도. 주입된 기억과 제한된 환경. 격리된 샌드박스 속에서 일하며. 기억 속에만 남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복제인간을 소재로 삼고 있다.
구구절절 흘러 넘치는 인간성.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간이’ 인간은 인권을 어디까지 갖는가. 그러니까. 어느 정도. 어디까지가 인간인가.
영 비실비실대는 주인공 1을 보면. 아마도 복제인간 유통기한이 3년 이내지 싶다. 비실비실댈 때쯤. 지구로 복귀하라며. 캡슐에 넣고 수면마취 후 분해.
음 딸이 15살이고. 3년마다 복제에 6호 복제인간이면. 이 쳇바퀴가 시작된 지 의외로 별로 안 됐다. 본체도 아직 멀쩡히 살아있고.

복제인간은. 차라리 자신에게 주어진 기억. 환경에 만족하고. 그냥 안주하며 살다가 설렁설렁 가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떤 계기든. 스스로 자각하던 자신의 희망과 정체성이 모조리 부정되고. 삶의 지독한 허무를 맞이하는 기분. 아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_
우주가 상징하는 특유의 감각에 더해서. 이미 일상 자체가 고독의 절정인데. 거기다가 아주 그냥 쐐기를 박아버리는 느낌...
오블리비언에선. 뒤바뀐 정체성에서 곧바로 의미를 찾아내는 데 반해. 여기서는 뭐 아주 그냥.-_ 그것도 하필이면 죽기 직전에 알아가지고. 아...
안습한 주인공 1과는 달리. 아직 3년이라는 시간이 있는 주인공 2는. 새로운 존재의 의의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결말에 무슨 재판 하는거 같드만.

언뜻 비슷한 기존 정체성의 부정이라도. 사실 너는 더 중요한 인물임. 또는 유용함. vs. 사실 넌 아무것도 아님. 이건 근본적으로 다르지.

의외였던 건, 복제된 자신을 마주하는데도 으레 있겠지 하던 멘붕. 패닉이 없다. 생각보다 훨씬 침착하게 현실을 수용하고 순식간에 우호 관계를 형성한다.
특히 주인공 2의 경우. 아무도 말 안해줬는데도.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이성적으로. 자기 또한 복제라는 걸 유추해낸다. 멘붕도 없이.
아마 관객을 위한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지들 일이지 관객 일은 아니니까. 괜히 지들끼리 호들갑떨면. 관객 입장에선 저게 뭐라고 저러나.-_ 짜증낼지도.
거티가 굉장히 착하다. 신기할 정도로 샘에게 호의적이고 협조적이다. 헌신적이다. 상부의 명령은 샘을 위해 유도리있게 무시해주기도 하고.
영화에 비인간적인 관계가 없다. 심지어 구조반까지도. 우호적인 상대는 끝까지 우호적이다. 반전이나 비비 꼼이 (거의) 없다.
이런 plain한 전개가. 영화의 기묘하게 고요한. 우주적인 분위기를 극대화시키는 데 한 몫을 했지 싶다. 이런 분위기에 갈등. 긴박함은 어울리지 않는다.

뭐가 됐든. 오블리비언보다는 훨씬 깔끔하다. 한 가지 주제에 집중이 이루어지니. 쌈질이나 설정 보여주기에 애매하게 공력을 나눠쓰지 않으니.
경험상. 우주 배경 드라마는. 섬세한 ‘우주적’ 감정선을 잡아내든지. 아니면 아예 블록버스터로 가든지. 둘 중 하나만 하는 게 훨씬 승산이 있는 것 같다.


블랙 스완. http://delliny.tistory.com/105


인투 더 와일드. http://delliny.tistory.com/104


1408. 예전에 한번 봤지만. 별 인상 없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상하게 평이 좋길래.-_ 내가 놓친 뭐가 있나 하고 다시 한 번 봤다.
이번에도 그닥 큰 임팩트는 없었지만.-_ 적어도 예전에 봤을 때처럼 밋밋한 느낌은 아니었다.
...애초에. 1408호 방이 곧 주인공의 무의식 자체라는 알레고리적 해석이 없이는 성립이 안 되는 영화다. 영화 자체만으로는 그닥. 난 그저 그랬다.
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완전히 주인공의 무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내면 감각의 구현. 외부로부터 오는 게 아니다.
문득. 혹시. 흠칫. 하면 어김없이 일어나는 일들. 마치 꿈. 악몽의 내러티브와 흡사하다. 마치 공포 버전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연상된다.
내면의 뒤틀림. 불안. 트라우마. 아버지. 죽은 딸. 모든 현상을 주인공의 심리와 연결시키지 않고는. 단순 재난 영화 축에도 못 든다.-_
차라리. 딴 데 가서 해설이라도 읽고 나서 보기를 권함. 알레고리적 대칭 없이 영화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기는 2% 부족하니까.
아무래도 감독판보다는 극장판 결말이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훨씬 쉽다. life goes on 식의, 시련을 겪고 강해진 주인공이 있으니까. 감독판은 걍 이뭥미.


겨울왕국. http://delliny.tistory.com/108


트랜센던스. 말 그대로 초월(transcendance). 디지털화된 의식을 통해 초월적인 존재-신이 된 한 남자의 이야기다.
과거의 신이 초 신비적인 그 무언가였다면. 현대의 기적은 테크놀로지 그 자체이고. 현대의 신은 그 테크놀로지의 궁극을 체현한 인간이다.
컴퓨터의 잠재력을 총동원한 의식으로. 생물학과 나노 테크놀로지의 정점을 찍고. 사람들을 치유하며. 영향력을 점점 키워가는 모습.
박살난 태양광 발전판이 저절로 재생하는 장면에서 살짝 뜨악했다.-_ 저 정도면 이미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진짜 초월적 존재가 아닌가 싶어서.

영화 내내. 윌이 진짜 윌인지. 윌의 의도가 선한지. 등등에 대한. 윌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되지만. 사실 별 의미가 없다.
그게 진짜 윌이든. 의도가 선하든 악하든. 문제는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을 잠정적으로 지배 가능한 초월적인 존재라는 것 자체가 문제지.
의도가 선하든 악하든. 그 결과가 어떻게 예상되든. 우리는 그런 초월적인 존재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걸 본능적으로 원치 않으니까.
...결말로 보자면. 결국 그는 윌이 맞았다는 것. 반전 입장에서는 살짝 싱겁다. (감동 코드면에서는 더 나을지 몰라도.)
선악 구도를 떡밥 이상으로 명확하게 나누는 게 철학면에서는 더 빈곤해질지 몰라도 영화의 긴장감, 박진감 면에서는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두려워해. 운운을 영화 여기저기에 끼워넣고. 윌이 피해자 연 하는 듯한 부분도 있었던 것 같고.
거기다가 실제로 윌은 인간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고. 윌을 막으려는 시도-바이러스가 오히려 전세계의 정전-재앙을 가져왔다는 등등.
감독이 그래서 뭘 말하고자 하는지 헷갈린다. 자비로운 윌 신님이 선한 의도로 ‘가호’를 베풀라는데. 우매한 인간들이 신을 끌어내리려 들었다 이건가?
SF적인 소재와 별개로. 나는 이 영화가 굉장히 종교적으로 읽혔다. SF는 그냥 소재로 갖다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내 기본적인 입장이. 안티 테크놀로지에 가깝다는 것을 재확인.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을 이롭게 하지만, 선을 넘을수록 점점 파멸에 가까워진다는.
모든 과학적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한다는. 모든 기술발전은 바람직한 것이라는 식의 입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쓴다.
판타지 세계에서. 헬게이트를 열 줄 몰라서 안 여는 게 아니라고. antagonist들도. 나름 악마학 연구해 가며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서 여는 거라고.

시든 정원과 해바라기. 예전에 에서 보았던 이미지랑 굉장히 닮아서 신기했다. 심지어 상징성마저도 비슷하다.


그녀 (Her). 얼핏 입소문만 들은 상태에서 (sf영화?) 본 영화인데. 로맨스 영화라는 걸 알았다면 아마 안 봤을 거다.-_-
(모든 로맨스 영화의 기본 테마는 사랑을 통한 치유/구원... 이라고 하던데, 개인적으로 영화소재로서 그닥 감흥을 못 느끼는 테마 중 하나다)
보면서 주인공 사랑타령에는 관심없었고.-_- 영화의 인공지능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나이브하고 피상적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보고 나서 다른 사람들 영화평을 보니, 정작 좋다는 감동 포인트들은 거의 놓치고 본 듯.-_- 난 별 느낌 없었는데.)

상용화된 개인용 만능 인공지능이, 현재진행형인 ‘인터넷에 삶의 지혜를 구하는 시대’ 경향성의 끝판왕이 아닌가 싶다. (그닥 이상적인 미래상은 아니다)

사만다 보면서, 뜬금없이 전통 한국호러에 나오는 지박령이 생각났다. 몸을 갖고 싶어...” 운운.-_- 조금만 뒤틀어도 퓨전호러 하나 나올 듯.

그 자체로 person이어야 할 인공지능이 굳이 humankind가 되기를 갈망한다는 발상은. 지나친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되지 않나 싶다
지성이 굳이 인간의 전유물이어야 할 이유도 없으며. 인공지능이 만들어진다면 아마 ‘짝퉁 인간’으로서가 아닌 그 자체의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될 거다
(정체성 문제는. 인공지능 쪽에서 느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인공지능을 대하는 인간 쪽에서 느끼는 자격지심 같은 거에 가까울 거다)
(인공지능 인격이 홀로서지 못하고 인간과의 상대적 관계에서밖에 얄팍한 정체성을 찾을 수밖에 없다면. 처음부터 안 만드는 게 정답일 거다.-_-)

무슨 철학자의 생전 사상과 행적들을 모아서 그 사람의 인격을 재현했다고라...-_- 그건 니들이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
사람의 말과 행적만으로 인격을 재현할 수 있다고 믿는 게 신기하다. 그건 단지 사상의 현신, 인격화에 불과하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사상이 아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계속 사만다랑 트랜센던스에 나오는 (디지털화된 의식으로서의) 윌이랑 오버랩된다.
얼추 묘사된 것만 볼 때, 사만다는 (가능성 측면에서) 윌과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위험한 존재다.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는 언제나 한끗 차이로 갈린다)
인공지능이 학습한다면, 뒤틀린 감정과 악의, 인간의 도구화, 철지난 시대착오적 이데올로기 등을 학습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후반부 뉘앙스로는 이미 (인간이 배제된) 초월한 인공지능끼리의 (그들만의) 사회가 구성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디스토피아가 멀지 않았다.-_-;


토탈 리콜 (2012, 리메이크판). 전작의 느낌이 제대로 안 산다. 이런 식으로 하려면 새 영화나 찍을 것이지 왜 굳이 리메이크를 하는지 모르겠다.
가슴 세개달린 여자. 토탈 리콜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 전작에서는 돌연변이였는데 여기서는 어떤 개연성으로 등장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내’ 요원의 행동이 보면 볼수록 제멋대로에 자아도취적이다. (코헤건 입장에서 볼 때) 싹을 초반에 잘라내지 못하고, 일을 키운 주범이나 다름없다.
아마 하우저에 대한 (영화에는 안 나온) 개인적인 원한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삽질들이 멍청함으로밖에 설명이 안 되니까...-_-

차 사고 장면에서. 나는 아내가 그대로 죽은 것 같아 보여서 이게 무슨 전개지... 하면서 황당해하고 있었다. 근데 나중에 멀쩡히 일어나더라 ;;

전작의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였던 (매트릭스에도 차용된) 빨간 알약 먹어... 장면이 뭔가 장황하고 공감 안 되게 바뀌어서 실망스럽다.
현실로 돌아오려면 사람을 죽이라니 누가 곧이 들을까...-_- 거기다가 그게 함정이었다는 것까지 대놓고 보여주니 원.
원작에서는 끝까지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애매한 것에 비해, 여기서는 그냥 결론을 알기 쉽게 내버리면서 전작의 기본 전제 자체를 죽여버린 셈이다.
게다가 전작에서는 걍 모르는 사람인 의사라서 쏴죽이는 게 그런가보다 했는데, 여기선 친구잖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쏴죽일 수 있나?-_-

“넌 네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싸우고 있잖아!” --- “...내가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가 누구고 뭘 해야 하는지는 알아.”
‘원래의 나’, 진짜 나를 규정하는 고정불변의 특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현재의 변질된 나는 진짜 내가 아니다’ 식의 생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가, 라는 답 안 나오는 질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현재의 내가 (딕) 과거의 나와 (하우저)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하는 실존적 질문이다.
예전에 봤을 때는 정체성 뭐시기 하면서 답없는 고민을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책 한 권 읽고 나서) 이렇게 정리가 된다는 게 만족스럽다.


섬 (2000, 김기덕). 옛날 영화. 맨날 케이블 채널에서 스치듯 짜투리 짜투리만 보고 전체를 못 보다가, 결국 날잡아서 봤다
보아하니 현실성이 아니라 분위기와 이미지, 상징성을 위한 영화다. 스토리나 개연성은 그닥 중요치 않아 보인다
영상 예쁘고 분위기 굉장히 마음에 든다. 하지만... 보고 있기가 불편하다.ㅠ 예전부터 느꼈지만 김기덕 감독님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닌 것 같다
몇몇 장면은 아주 그냥 몸서리가 쳐지는 걸 ‘가학적으로’ 노리고 만든 것 같다.-_- 미친 거 아냐 그놈의 낚시바늘 좀 치워줘요 제발 ㅠ
...주인공 여자. 눈빛 살아있고. 동물적인 분위기 죽인다. 뜬금없지만 (...) 왠지 우리집 고양이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방 레지가 개인적으로 레알 불쌍하다. 여기는 주인공이 따로 있으니 이리 됐지 다른 영화같으면 이런 운명적인 끌림이라니 능히 주인공감 아닌가


브라질. 여기저기서 자꾸만 언급되길래 일부러 찾아봤다. (사실 땡기는 영화는 아니었는데 잊을 만하면 한번씩 언급돼서...)
딱 모던 타임즈스러운 정서와 연출에 1984스런 모티브를 짬뽕시켜 놓은 참 옛날스러운 영화다. 1985년작인데 확실히 요즘 정서는 아니다
기계 문명과 시스템(관료제)의 비인간성 운운. 모던 타임즈보다 반세기 넘게 나중에 나왔는데도 그 때 그 정서에서 바뀐 게 없다
흔히 SF 영화라고들 하던데-_-... 보면 현실적이거나 공상과학적인 느낌은 거의 없고, 그냥 극단적인 풍자로 꽉 들어찬 부조리극 보는 느낌이었다
사실 현실성과 개연성에 중점을 두고 보면 산만하고 너저분하기 짝이 없다. 카프카 단편 전집 읽었을 때랑 딱 느낌이 비슷하다
카프카의 소설에서 나올 법한 신경증적 불안을 증폭시키는 비현실적인 전개와 주인공의 정신분열적 현실인식 등. 영화가 이미지와 환상에 기초해 있다

영화 초반이 딱 모던 타임즈스러웠다면, 영화 중후반은 카프카적 정서가 바닥에 깔린 몽환적인 B급 1984 오마주라고 할 수 있겠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비교적) 현실적이던 초반에 비해서 점점 환상과 이미지와 꿈이 현실에 비집고 들어오는 비중이 커진다
무슨 서류가 겉잡을 수 없이 바람에 흩날려가니, 쫓아가던 여주인공이 잠깐 흠칫한 사이에 사라지니 하는 것 등이 다 전형적인 ‘꿈’의 이야기 방식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주인공의 인식과 행동이 전부 충동적이고 정신분열적이고 망상적으로 바뀌다 보니, 초반에 비해 이입이 잘 되진 않는다

꿈 속에서 주인공은 이카루스고 여주인공은 무슨 헬레나 같은, 아무튼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적 이미지다 (자유와 민주 운운 하는)
반면에 꿈 속의 적이나 군인에 덧씌워진 사무라이의 환상이나 고문관이 쓰고 나오는 동자신 (이걸 뭐라고 하더라..) 가면 등은 전형적인 일본적 이미지다
...솔까 일본이 관료주의 군국주의 이미지가 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자유적 이미지와 대비시키는 데 쓰면 좀 기분나빠하지 않을까.-_-


백설공주 살인사건. 좋다는 평이 들리길래 찾아서 봤는데 확실히 볼 만하다. 영화가 꼬임없이 일직선으로 정리가 깔끔하게 잘 되어 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보면 딱 라쇼몽 재해석 버전 같다. 여기서는 끝에 가서 알기 쉽게 명백한 답을 제시한다는 게 차이다

여자 배우들이 다 예쁘다. 미키 노리코, 카노 리사코뿐만 아니라 (밋짱은 글쎄...-_-) 음울하고 위축되게 묘사돼야 할 시로노 미키도 본판 자체는 예쁘다
정작 예쁘다고 극중에서 떠받드는 미키 노리코식 서구형보다는, 카노 리사코 같은 토끼이빨형 -_-* 얼굴이 더 내 취향에 가까운 것 같다
카노 리사코. 초중반의 귀여운 매력이 약간 평이하게 다가오는 반면에, 후반에 냉혹하게 표정 싹 바뀌었을 때 180도 다른 매력이 보이는 것 같다

영화 처음 등장할 때부터 쭉 카노 리사코가 남주인공 여친인 줄 알고 보다가... 다 끝날 때에서야 아니라길래 살짝 어벙벙했다 ;

시로노 미키. 사정은 알겠지만 참 답답한 스타일이다. 도피공상적이고 자기주장을 못 하고 어버버 휩쓸려가는 스타일. 순수하단 건 좀 아닌 것 같다
평소에 어지간히도 주위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있었지 싶다. 안 그러면 저렇게까지 악질적인 추측들이 나올까 싶은 거다
가족들과의 애정도 믿음도 없는 것 같고. 친구랍시고 나오는 것도 영 못 미덥고. 그나마 진심이 있다는 히키코모리 친구는 안 본지 한 세월이고.
내면에 상당한 취약성을 갖고 있는데다가 그게 겉으로 너무 드러나 보이는지라 manipulator가 맘먹고 접근하기가 쉬웠을 거다

...세리자와 브라더스를 미키 노리코한테 ‘뺏겼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다. 단순한 팬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하긴 도쿄에서 마사키? (이름 생각 안남) 보러 가는 장면을 보면 단순한 팬보다는 빠순이(...) 상태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
근데 그렇다고 쳐도 마사키?를 계단에서 밀쳐서 굴리는 건 빼박캔트 정당화가 안 된다. 악의있는 행동만은 아니었다는 최소한의 변명 정도의 의미일까
앞에서의 진술이 다 그랬듯이. 시로노 미키의 진술도 비록 피해자의 정리 입장일지언정 여전히 왜곡되고 편파적인 시선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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