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ica McGoldrick - 가계도 분석을 통해 본 세계 유명인의 가족비밀 (학지사) 中 얼기설기 발췌.



 우리는 중요한 기념일, 조부모와 부모가 보여 준 인간관계 유형, 조부모와 부모의 삶의 방식과 우리의 삶의 방식 간의 연계를 통해 형사 콜롬보가 될 것이다. (가족 체계와 가족 내 역동에 대한 적극적인 가설 설정과 탐색과 검증-) ...간과했던 이런 정보는 가족 전체에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초래하고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 반대로 그런 정보를 알게 되면서 가족 간의 이해와 강한 유대감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정보는 힘이다. 어떤 정보가 어떻게 맞아떨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라도 정보를 알아야 한다. 사소한 것이 상당한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나는 딸, 조카, 자매, 친구, 동료, 손녀, 연인, 사촌으로서의 어머니를 알아야만 한다. 또한 이런 각각의 역할에서의 할머니를 알게 될수록 어머니에 대한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어린 시절에 들은 사실과 신화 그리고 일화 관의 연관성을 알아봐야 한다. 또한 그것의 가족경험에 대한 다른 사람의 반응을 가족원에게 물어보는 것도 유용하다. 예를 들면, “엄마, 외할아버지가 증조할아버지와 의절하셨을 때 어떠셨어요? 알 삼촌은요? 마사 이모는요? 실제로 두 분이 다투셨을 때 거기엔 누가 계셨나요? 그런 뒤 휴일이나 가족모임에서 두 분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모든 가족이 갖는 의문 이면에 있는 중요한 가정은 가족 고유의 다양한 관점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는 것이다. 전형적으로 우리는 가족드라마에서 부모를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인공이고, 우리 자신을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고 관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동시에, 다른 사람이 ‘계획하는’ 행동에 공감할 수 있어야만 한다. 우리의 행동을 바꿀 기회가 얼마나 ‘계획되어 있는지’에 대한 이해는, 반대로 나의 관계개선에 도움을 준다.


 질문을 하기 전에 우선 (스스로의. 정서적인. possibly 무의식적인) 질문 의도를 파악해야만 한다. 질문의 목적이 자기를 정당화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가족의 잘못을 탓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가족원은 그것을 바로 감지할 것이다(방어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순수한 마음으로 악의 없이 접근한다면, 실제로 가족원은 우리에게 변명할 기회가 생긴 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상관하지 않거나 방어하지 않고 스스로의 느낌을 고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정서적 중립’-) 그것은 자신의 생각에 대한 독자적인 판단과 타인의 인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남에게 ‘가치 있다’고 느끼게 할 ‘필요’ 없이,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자신의 가치와 행동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대답을 자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질문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알고 싶어할 때, 우리는 자신의 모성적 부적절성에 대해 항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어머니가 심하게 좌절하는 것을 본다. 우리의 질문에 답하는 가족의 반응이 방어적이거나 혹은 적대적이라면, 결코 어떤 것도 얻어낼 수가 없다. 목표는 문제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하는 우리 스스로가 받아들인 정보가 어떤 것인지를 평가하는 데 있다. (적대적이거나 거부적인 모든 반응 또한 ‘정보’라는 것을 기억하라.) 나는 사랑하는 아버지가 형제를 형편없는 사람이나 혹은 사업상 악덕 고리대금업자로 취급한다든지, 또는 가족이 나를 거만하고 응석받이에 이기적이거나 운이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부정적인 감정과 행동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거기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는지 고려해야만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인식이 각 가족원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개인이 자신과 가족사에 대해 말한 이야기는 이야기한 부분과 이야기하지 못한 부분 모두에 조심스럽게 귀 기울여야 한다.


 가족을 알려면 정서관계의 상호작용을 살펴보아야 한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누가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안전하다고 느낄 때 가장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만약 가족문제가 있다면, 가족원은 대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보호하려고 왜곡된 의사소통을 한다. 가족은 전혀 말을 하지 않거나, 자신을 탓하거나, 특정 개인을 비난하거나 혹은 대화의 주제를 바꾼다.

 의사소통의 왜곡은 가족관계의 전반적인 불안과 경직성을 평가하는 좋은 측정치이다. 만약 가족원 중 2명이 어떤 일이건 항상 의기투합한다면, 아마도 이것은 그들이 마음이 잘 맞아서라기보다는 불안에 대처하는 그들 고유의 방식일 것이다. 반대로 만약 가족원 중 2명이 항상 다툰다면, 그들이 갈등하는 주제가 가족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결국 그들은 어떤 대화건 간에 늘 반대할 것이다.

 역기능적인 가족관계와 의사소통유형은 대부분 스트레스 시기에 가장 잘 나타난다.


 가족원은 스트레스가 주는 압박감 때문에 가족에 대한 충성심을 지키려고 그들 고유의 정체성을 희생한다. 개인은 집단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도록 강요받는다. 어떤 독자적인 행동도 삼가야 한다. 이런 관계에서 가족원은 우리는 하나라는 환상을 갖는다. 필연코 가족은 가족원 간의 차이를 무시하거나 줄이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가족유대를 융합이라고 한다. 각 개인의 경계가 상실된 채 다른 사람의 요구에 순응해야 한다.

 융합된 가족은 종종 스트레스 대처상황에서 (똘똘 뭉쳐) ‘세상아 덤벼라’라는 태도를 취한다. 만약 개인이 항상 ‘가족의견’에 순종해야 한다면, 가족은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다. 외부의 변화와 생각을 차단하고, 가족은 외부인을 잠재자원이 아닌 적으로 간주한다. 일체감에 대한 환상이 깨질 때, 지나친 일체감은 결국 밀착이 아닌 단절을 야기한다. ...전형적으로 융합이 깨어질 때 환멸과 단절을 초래한다.


 스트레스 시기에 특정 가족원은 환자나 증상운반자가 된다. 치료자는 종종 가족이 문제로 지목한 사람(identified patient, IP)이 실제로 가족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란 것을 안다. IP는 가족의 정서역동의 초점이 되고, 가족의 문제를 가족원에게 알린다.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가족원이 특정 개인의 증상을 무의식적으로 조장한 것일 수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돌보고 지원하면서 가족원은 자신이 증상운반자가 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직된 가족체계의 지위는 고착될 수 있다.

 두통, 우울, 불안 발작, 자녀의 등교거부나 문제행동은 증상운반자의 핵심문제에 비해 부수적인 것처럼 보이는 가족문제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종종 그것은 증상운반자의 핵심문제에 큰 영향을 미친 가족원의 문제이다. 부부관계에서의 갈등을 부부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때 자녀는 증상운반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가족체계 전체를 이해하지 않고서 오직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으로 가족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복통을 일으킬 때 (그저) 약을 먹이거나 등교를 거부할 때 (그저) 야단을 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면, 이는 가족 안에서 아이에게 고통이 되고 있는 진짜 문제를 놓치는 것이다.

 가족원의 질병은 종종 아픈 사람보다 전체 가족의 불안을 더 많이 함축한다. 한 연구에서 자녀가 위독할 때 자녀의 질병은 자녀의 건강 이상보다는 부모의 갈등으로 야기된 긴장과 훨씬 더 관련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부부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일반적으로 많은 삼각관계가 나타난다. 부부가 말썽쟁이나 아픈 자녀 일로 연합하여 부부문제에서 벗어나려고 할 수도 있다. 아니면 둘은 원가족을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족비밀이 가족원 중 누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누구를 소외시기키 위한 것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여러분이 가족일화에 관심을 보인다면, 부모는 훨씬 더 잘 대답해 줄 것이다. 위협적이지 않은 특정 질문으로 여러분 자신을 자기개방하는 것은 부모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아니, 아버지는 너무 적대적이야.’ 혹은 ‘어머니는 너무나 지배적이고 간섭이 심해서 나는 결코 그녀에게 말을 건넬 수가 없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부모의 행위가 어떻든 간에 해결해야 할 과제는 그들이 어째서 그런 모습이 되었는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섭이 심한 부모는 아무래도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그런 행동은 자녀를 해하기 위한 계획적인 시도라기보다는 불안정하고 부족한 자신의 감성을 반영하는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들 자신의 삶과 경험에 관한 정보처럼 일단 그들이 여전히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게 된다.


 부모를 인정했다는 것은 그들을 변화시키려고 했던 여러분의 노력을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치료전문가 톰 포가티는 말한다. 여러분의 기대치를 0까지 낮춘다면, 부모와의 관계는 개선될 것이다. 이것은 여러분이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좀 더 효율적으로 대화를 하려고 시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모에게서 기대했던 ‘보상’에서 성립된 관계 대신에, 여러분은 *여러분이* 얼마나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가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우리 대부분은 언제나 (possibly 이상적인. 원형적인)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이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우리는 나와 가족이 하나라는 일종의 유대감을 가져야 한다. 가족은 신비로운 존재인 우리 인간에게 기본적인 연결성을 강요한다. 이는 우리의 부모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한데, 그 불완전함 자체를 수용하는 것과는 또 다르다. 예를 들면 정서적 태만이나 신체학대 혹은 아버지의 불합리한 요구나 협박을 탓하지 않고, 아버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가 학대하거나 학대를 계속하게 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학대 이외에도 또 다른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실제로 자신의 정체성이 확고한 성인 자녀는 아버지가 계속 시비를 걸지라도 방어하지 않고, 비판적이고 소원한 관계에 있는 아버지에게조차도 관대해질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항상 나의 요구를 받아들이거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가족원의 관점에서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 개인은 흔히 가족을 변화시키려고 자기 자신을 바꾸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가족을 바꾸려 한다. 가족이 변하거나, 나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고 기분을 이해해 주거나, 언제나 나를 자랑스러워할 것이라는 기대를 포기해라. 그럴 때만이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개인적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알게 된다. 이는 나를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고 무시하는 가족을 내가 감히 인정하고 거부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가족으로의 귀속에서 가장 중요한 지침은 바로 “공격하지 마라, 그리고 방어하지 마라”이다.


Respon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