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리정원

Posted 2018. 3. 22. 13:23, Filed under: structured thinking/reviews

문근영 EBS 타인 뭐시기 인터뷰 보고 나서... 왠지 문근영 나온 거 하나 찾아보고 싶어져서 최근작으로 찾아본 영화다.
보고 나니... 우쩜 이래 인터뷰에서 느낀 그 느낌 그대로인 것 같냐.ㅠ 안쓰러 죽겠네...
인터뷰 보면서 미묘하게 느끼던 게, 영화 보고 나니까 어떤 이미지로 빡 구체화되는 느낌이다. 주인공이 살짝 본인이랑 겹쳐보이는 느낌이다...
“순수한 건 오염되기 쉽죠.” 요 한 구절로 영화에 깔린 전체적인 정서가 거의 요약되는 것 같다.
‘상처입은 순수’. 미숙. 부적응. 상실. 회귀(+좌절. 허무...)의 이미지들... 옛날 한강 소설들이랑 신경숙 소설들에서 받던 딱 그 느낌이다.


문근영 눈빛 좋다... 내가 옛날에 왜 좋아했었는지 알 것 같고. 지금 봐도 뭔가 나를 안쪽에서 미묘하게 자극하는 게 있다...


“내 발, 징그럽죠? 열두살때부터 안 자라요.” (‘멈춰버린 성장’의 이미지...)
나무와의 소통. -죽은-아버지와의 어릴 때 추억. 깊은 숲 속의 ‘유리정원’ 등... 여기서 말하려는 ‘순수’라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만한 느낌이다...
(‘동화적인’. ‘순수한’ 어린아이에 반쯤 머무른. 그 너머를 보길 두려워하는. 깨지기 쉽고 나약한. ‘아름다운’ 미성숙의 이미지...)


우째 오가는 분위기가 근질근질- 묘하다 했는데. 바로 키스.ㅋㅋ 내연관계일 줄 알았다.
강력한 부성 콤플렉스가 작용하는. *온전히* 이해받고자 하는 소망의 이미지. 성적인 무언가가 끼어있는 게 당연하단 느낌이다...
저런 식의 상대로부터 *온전한* 이해를 요구하는 건. 자기 정서적인 톤에 상대를 끌어들이고 합일시키고 경계를 흐리는 뉘앙스가 있지 않은가.
나라면... 저런 의존적인 소망이 (저 정도로) 대놓고 느껴지면... 만나기 부담스러울 거 같다.-_-
애초에 본인부터가 본인 생각의 ‘순수한’ 면만 상대에게서 인정하고. 상대의 ‘세속적인’ 면은 이해할 시도조차 안 하고 쌩 무시하지 않았나...
매 그런 식이니 연구주제 바꿔볼래?도 쉽게 얘기 못하고 주저주저 하다가 (부담스러우니) 딴 애로 어물쩍 갈아타는 거고...
(원래 모든 관계는 부담스러우면 버거운 법...) (‘순수의 결정체’를 상대하면서. ‘순수의 투사적 동일시’를 받으며 얼마나 편안할 수 있을까.)
(말없이 어물쩍 갈아타는 게 졸라 찌질하고 상처줄 일이긴 하지.ㅠ 근데 심정 자체는 이해 못할 일도 아니라는 거...)
나중에는 어릴 적. 자기 아버지 얘기도 꺼내고... 자기의 가장 내밀한 추억과 ‘순수’의 공간일 고향-숲 속의 ‘유리정원’까지 데려가는데...
보는 -지금의 내-입장에선. 뭔가 합일적인. ‘삼켜오는’ 무의식... 은근 부담스런 이미지로 다가온다.


“(숲 속. 개울...) 상류를 막아서 물이 썩어가고 있어요. 예전엔 여기서 낚시도 했었는데.”
“순수한 건 오염되기 쉬워.”


연구 아이템 뺏기고도. 와인 드립따 붓는 등 어린애마냥 공격행동의 표출만 있고. 뭐라 따박따박 말이 없어서 보는 데 답답하다.-_-
남자와 연구실 후배 쎍쓰...하는 소리 들으면서. 바로 밖에서 안 맞는 여자 구두 신고 터벅터벅 하는 것도 그렇고... (Aㅏ..)
뭔가 자기선고적인. 숙명적인... 피해자적 한恨의 정서가 깔려 있는 느낌이다... 아무도 날 이해모태ㅠ 식의. 유아적인-수동공격적인?-느낌...


결국. 모든 걸 접고 숲 속 깊은 곳의 ‘유리정원’으로 후퇴해서 혼자 고립되어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나무에 몰두하고 독자연구를 진행하는 등...
뭔가... 세상으로부터의 체념적인. 자폐적인 후퇴. 침잠. -부성회귀적인?-퇴행...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나무가 되겠다는 건 원초적인 순수-무의식-대자연 모성과의 합일. 회귀지만... 의식 차원에선 -수동공격이 묻어나는?-자폐적인 퇴행이다...
합일화하고자 했지만 끝내 벗어나버린 남자를 숲 속에 붙잡아두는. 물 속에 삼켜버리는... 어떤 무의식의 수렁의 이미지다....


남자 소설가. 암만 옆에서 원로 빨아주는게 고까웠다 쳐도. 알량한 자존심만 쎄가지고 속이 배배 꼬여 있네.ㅋㅋㅋ
평가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표절작가 따위가 원로라고 깝치네...’ 식의 고까운 정서가 아닐까 싶다.ㅋㅋ 아니면 저런 무리한 깽판이 설명이 안 된다.
(애초에 저런 류의 ‘투사적 정의감’이랑 (so-called)‘순수함’이랑 살짝 비슷한 톤의 정서 아닌가.)
이 양반도. 어지간히 세상에 치이고 박해받고 자기를 안 알아주고 하필 몸도 성치 않고... 등등. 온갖 미숙함과 부적응의 테마로 가득하다.
(사실 성질머리만 앞서가지구 어느 정도는 사서 고생하는 느낌이라.ㅋㅋㅋ 그쪽으론 큰 연민은 안 간다...)


벽지에 주인공이 남기고 간. 동그란 열매 속에 웅크리고 있는. ‘나무가 잉태한 아기들’의 이미지... (자궁회귀욕망-)
남자도 주인공과 비슷하게 피해자적 한恨의 정서를 잔뜩 깔고 있는 느낌이다. 온전한 수용과 안식을 바라는. 퇴행적인. 회귀적인 정서가 있다.


소설가 남자 입장에서. 여자는 내면의 메타포를 자극하고 자기의 정서적 톤과 환상과 공명하는 존재... 아니마의 현신처럼 다가올 거다.
(주인공이 세상으로부터는 매번 상처입고 실망하는 ’약자’였음에도. 남자한테는 강자마냥 어떤 ‘마술적인’ 힘-끌어들임-을 행사하고 있다는 거...)
(남자가 일종의 가해자적 입장이지만. 여자한테 온 신경이 사로잡혀 안달하고 절절매고 있는... 그걸 얘기하는 거다...)
“전 진짜 획기적인 연구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왜 그만두고 이런 데서 혼자...” (사탕발림 보소.ㅋㅋ)
남자가 여자에게 심하게 집착하는 건... 아니마의 회귀적인 속성에 맹목적으로 동일시된. 공명되는. 끌려드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몸이 굳어가고 있어요. 나무가 되가는 거 같아요.” (뭔가...ㅠ 불쌍하긴 하네.)
여자의 삶을 ‘훔쳐내듯’. 침투하고. 글로 옮기고. 소설로 써내면서. 동시에 그녀에게 ‘마술적으로’ 점점 빠져드는 느낌...
자꾸만 찾아가고. 쓸데없는 말 걸고. ‘유리정원’의 무너진 담장을 대신 쌓아주고- (퇴행적-자폐적 뉘앙스에 공명된. 나름 공감의 느낌이다)
but 뒤로 갈수록 점점 광기에 가까워지는 듯.-_- 가택침입에 몰사진 찍어대고 저널 훔치고 어쩌고 하는데. 저 도둥노무 시키...가 절로 나온다.-_-+


요때까지만 해도. 남자는 그녀의 삶을 아련한 ‘순수’의 이미지로 묘사하는... 회귀원형의 단면. 낭만적인 측면만을 보는 느낌이다.
“나는 언젠가 나무가 될 거라고. 그녀는 사람들을 나무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속삭였다.”
“사람들은 그녀 앞에서 웃음을 지었지만, 그녀를 이해하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언젠가 자신이 아름다운 나무로 환생할 거라는 믿음에 그녀는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녀는 매일밤 자기가 태어난 숲을 그리워하며 꿈을 꾼다.”

뭐 요런 류의... 감성적인. 소외된. 상처받은 여성성과 회귀욕구의 이미지들에 대한 글들을 써내며. 반응이 오고. 그걸로 인기작가 반열에 오른다.
(이런 글이 그리 인기를 끌까-_-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가. 문득 한강과 신경숙... 등의 소설들을 떠올리고. 수긍하다.-_-)
담장 틈 사이로 들여다보는 이미지. 담장 위에 자라난 한포기 풀의 이미지. 이해받지 못하는. 버림받은. 상처입은 그녀와 춤을 추는 이미지...
(특유의 이 정서적 쪼가 있지 않은가...) (-지금의-나는 이걸 아니마의 회귀적 속성의 낭만과 엮인 미숙의 이미지로 간주하고 있다.)
(결국 외부의 그녀에게 투영된 자기의 그림자-투사된 내면의 아니마-와 춤을 추고 있는 거다...)


“(비꼬듯. 비아냥대듯) 신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할 때 사람이 이렇게 사악해질 줄 몰랐거든.”
원로 대할 때도 그랬고. 이 남자 화내는 태도가 너무 맘에 안 든다.-_- 오히려 원로든 출판사든 악역?들이 훨씬 더 태도가 성숙한 느낌이다...


그러다 결국 ‘훔쳐보던 눈이 마주치고’... 회귀원형의 퇴행적인. 끌어들이는 수렁과도 같은. ‘파괴적인’ 면모를 접하고 멘붕한 느낌이다.
(눈 또렷하게 뜨고) (문근영 눈빛 좋다...) “그 소설, 계속 써 주세요.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거, 보여주세요.”
(무례한) 침투에 화를 내기는커녕. 거기에 (인터뷰에서도 언급된)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고 싶어하는. ‘수용’에 대한 갈망을 거는 느낌이다...
자기의 옳음을 아득바득 증명하려 드는 건. 뭔가... 이해받지 못한다는 분노에 대한 수동공격적 표출의 뉘앙스도 있고.
상호 조율과 헐랭헐랭 타협이 배제된. 자기의 ‘온전한’ 입장에 꼬장꼬장한 느낌도 있고...
스스로 ‘이해받지 못한’, 기대를 배반당한 상처에 지나치게 몰두된. ‘사로잡힌’ 듯한 느낌이 있다... 여린 동물마냥 상처에 ‘지배당하는’ 느낌-
무조건적 이해의 갈망에선. 경계선이 흐릿한. 일방적인. 끌어들이는. 삼키는. 수렁 같은... 이미지들이 연상된다.


여자가 시체 잡고 우는 데서... 문득.. 죽은 자식 부랄 잡고 염불하는-_- 속담이 열라 잘 만든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다.-_-;
“(울먹이며) 왜 그랬어?ㅠㅠ (흐느끼며)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요? ...응?ㅠㅠ”
그녀의 환상 속에서는. 달빛 아래. 그의 시체에서 혈관에서 이파리가 피어나고. 시체가 나무로 되살아나고... (신비한. 숭고한 느낌-)
“살았군요. ...내가 틀린 게, 아니었어요. (하, 벅찬 웃음)”
하지만 현실은 시체.ㅠ 시궁창.ㅠ 원형에 자아가 먹혀버린 듯. 이뤄질 수 없는 소망과 환상에 사로잡힌... 뭔가 안쓰런... 짠한 느낌이다.ㅠ


“도망가면 다야? 넌 항상 비겁해. 결정적인 순간에 뒷걸음질쳐서 이 꼴로 사는 거라고!”
남자 소설가는 화낼 때 욕하고 버럭 위협하고 멱살 틀어쥐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말이 없네.-_- 니가 그덯게 따움을 달해? 물어보고 싶다.-_-
“이 새끼가...” 말고는 한 마디도 못 받아치고. 멱살 틀어쥐어서 상대 입 막을 생각밖에 없고. (그런다고 입이 닫아질까.)
태도도 이도저도 아니고. 매사에 끝마무릴 자기 입으로 짓질 않고. 상대가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가게 놔두고. 영 깝깝하다. 아...
미숙함을 강조할라고 일부러 의도적으로 그런 건지. 아님 걍 생각없이 써놓고 보니 그런 건지 문득 궁금해진다. (차라리 의도적이었음 좋겠다...)


“그녀는 그를 지하에 가두고 감금했다. 죽은 사체를 끌어안고 사랑을 속삭였다.
남자의 몸엔 구더기가 기어나왔으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름답고 순수했던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녀는 광기어린 과학도에 불과했던 걸까...”


여자가 남자의 침투에 걸었던 ‘온전히 이해받음’의 욕구가 좌절되고. 경찰이 몰려오고. 시체는 동강나고. ‘유리정원’은 파손되고-
but. 그렇게 다 깽판난 이후에도. 남자는 여전히 ‘나무가 잉태한 아기들’의 그림을 보며 아련해하고 있다는 거.ㅠ
(아니마의 회귀적-파괴적인 측면을 대면하고 나서도. 여전히 거기에 얽매인 채 벗어나지 못한... 발전이 없는. 미성숙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결국 유리정원에 다시 찾아가서... 난장판. 함부로 널부러진 약병들. 말라버린 화초. 어릴적 사진이 든 깨진 액자... 등을 보다가...
푸드득 살아나 날아가는 새를 보고. 뭔가 회귀적인 숭고한. 아련한... 감성에 다시 젖고. (ㅠ)
그러다가 숲속에 구석에 웅크려 숨어 있던 그녀를 만나... 달아나는 그녀를 좇아 불러세워 결국 (다시) 대면한다.


“나무가 죽였어요. 물이 삼켰어요. 내가 기도했거든요. 영원히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달라고.”
내가 면전에서 이 말을 들었으면. 혹시 나도?싶어서 섬뜩했을 것 같다.ㅠ 쫄았을 것 같다.
“이 나무들 사람같지 않아요? 다 죽어서 나무가 된 거에요. 나도 나무가 될 거에요. 당신 소설에서처럼. 나 나무에서 태어났어요.”
우째 죽겠다는 얘기로 들리네.ㅠ 세상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상처받은 영혼이. 자폐적으로. 퇴행하듯. ‘포용적인’ 대자연으로 회귀하는... 이미지다.
“나무들은 가지를 뻗을 떄 서로 상처를 안 주려고 다른 방향으로 뻗어요. 근데 사람들은 안 그래. 서로를 죽여요.”
나무들의 치열한 햇살-양분쟁탈전을 봐야 정신차리지.ㅋㅋ 뭐 나무 운운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혐오가 있다는 게 요지겠지만...
붙잡는 그를 마다하고. “근데, 늦었어요.” 한마디 남기고. 숲 속으로. 안개 속으로 영영 사라지고. 나중에 그녀를 닮은 나무가 자라났다... 뭐 이런 얘기...


이런 류의. -분화되기 전의-무의식-모성-유년기로의 퇴행적인 회귀를 낭만적인 쪼로 다루는 걸. -지금의-내가 맘에 안 들어한다.ㅠ
이해 못 받고 상처받고 어쩌고..에서 열라 공격성이 묻어나는데도. 그걸 수동적으로 드러낼락말락 하는 -찝찝한-느낌에...
주변과의 조율에 소극적이고 경계없는 수용을 바라다가. 그게 안 되니 자폐적으로 닫아버리고. 무조건적 수용의 환상으로의 침잠. 회귀를 택하는 게...
이런 류의 회귀쪼의 감성이. 원형적인. 누구나 성장하며 겪는 분리과정의 핵심 뭐시기란 건 알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한테는 이런 과정적인 미성숙이 아니라... 뭔가 제대로 된. 다음 단계의 성숙의 드라마가 필요하다... (그런 걸 원한다...)
내 과거를 보는 거 같은 느낌이라 안쓰러우면서도. 동시에 내 과거를 보는 느낌이라 더더욱 동일시에 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


(이런 영화는... 이런 정서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뭔가 자기감정 언어화-‘상징화’가 안 된 사람들이 보고서 위로를 받아야 된다.) (-지금의-난 아니다...)


(영상이 전체적으로 이쁘고. 오랫만에 본 문근영도 이뻐서... 본 걸 후회는 안 한다. 잘 본 것 같다-)
문근영을 봐서... 감상을 (으레 쓸 것보다) 주절주절 길게. (딴엔;) 성의를 담아 쓰다. 내 딴엔 나름의 리스펙트다. (아이고 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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