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연초에) 서점 가서 둘러보다가 발견하고. 쭉 훑어 읽다가 결국 지른 책이다.
꿈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내가 느낀 거랑 비슷하다는. 내가 생각해오던 것들을 다시 짚어주는 느낌이라.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샀다.


“1장은 기초적인 배경지식을 정리한 것으로서 잘 아는 독자는 건너뛰어도 된다.”
사실 REM수면이니 NREM수면이니 어쩌니가. 내 수면건강을 다루는 데는 의미가 있겠지만. 꿈을 다루는 데는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진 않다.-_-
REM 꿈과 NREM 꿈이 구분이 된다는 건 알겠는데. but 둘을 왜 구분해야 되는 건데. 무슨 의미가 있는 건데.
나는 뭔가 뇌과학엔 큰 관심이 안 간다... 내가 소화기랑 배설 기전을 공부한다고 해서 내가 배고프고 똥싸는 거에 큰 영향이 없을 거랑 마찬가지로.


“소변은 우리 몸에 쓸모가 없어서 내어보내지는 단순 분해 산물이지만, 소변의 화학적 조성이 의사의 진단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처럼...”


꿈 억압과 꿈 기억에 대해서-
내가 2천개에 가까운 꿈을. 기록만 보고도 대부분 갓 꾼 꿈처럼. 정황과 이미지까지 기억해내고 부연까지 줄줄이 할 수 있다는 거랑...
잠에서 깬 당시엔 증발하듯 사라진. 기록도 못한 꿈을. 종종 그날 저녁. 혹은 심지어 며칠 뒤에. 플래시백처럼 ‘팟-’ 하는 걸 캐치해낼 때가 있다는 데서...
(그걸 캐치해내면 며칠 지난 꿈도 다시 기록하는 거고. 보통은 빤히 보고도 구체적인 뭔가로 못 만들어내고 사라져버리게 놔둘 때가 많다-)
꿈이 기억 못한다고 ‘사라져버리는’ 게 아니라. 머릿속의 ‘연결’이 ‘끊겨버리는’ 것뿐 아닌가. 책에서 나온 것 이상의 뭔가가 있을 거라는 느낌이다.


꿈 위장과 소망충족 등등에 대해서 길게 얘기하면서. 프로이트와 소위 (정신)분석가들을 후려까는ㅋㅋ 데 지면을 꽤 길게 쓰는데...
굳이 길게 볼 필요가 없어서.ㅋㅋㅋ 후루룩 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뻔한 얘기를 답습 안하고 선을 긋는다는 데서 어떤 믿음을 준 듯.


근친욕망에 대한 얘기 쿨하게 꺼내는 거.ㅋㅋㅋ 솔직해서 좋네. 글도 은근 sarcastic하게.ㅋㅋ 돌려까는 유머가 여기저기 섞여 있는 느낌이고.
“감정이 억압된 채로 남아 있는 것보다 자각하여 의식하게 되면 훨씬 덜 위험하기 때문이다.”
내 경우를 갖고 볼 때. 근친과 오이디푸스적인 뭔가까지 내려가지 못하면. 뭔가 저항이 가로막고 있는 거다- (그 저항을 굳이 뚫어야 하는가는 논외로-)


“한 장의 그림을 보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꿈에 나오는 영상을 보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요게 요즘 내가 갖고 있는 꿈에 대한 태도에 거의 가깝다. (이거 보고 나서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림뿐만 아니라. 영화나 소설. 음악 등. 모든 예술작품이 다 마찬가지다.) (요즘 내가 뭘 보고 나면 리뷰를 굳이 남기려 드는 이유기도 하고...)
“꿈은 어떤 것에 대한 진실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려 주는 영상일 뿐이다.”
“홀은 누구든지 꿈을 백 번 꾼 뒤에 그 꿈속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들을 살펴보면 마침내는 ‘나 자신에 대한 나의 견해’를 주제로 작은 논문을 한 편 쓸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꿈 해석 방법 운운... 예전엔 내 꿈을 다루려 그런 방법적인 것들을 깊게 생각했다면.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책에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카페트에 소변을 봤다는 것이 전부다.”란 꿈에서. 해석하려 이런저런 ‘대화기법’ 운운을 쓰지만...
만약 그 순간의 지배적인 정서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면. 굳이 긴 ‘번역’작업이 필요없을 거라는 게 요즘의 내 생각이다.
(특히 자기 꿈일 경우. 자기 감정에 어느 정도 깨어 있다는 전제 하에.) (이미지고 뭐고 없이도. 강렬한 정서 자체가 이미 또렷한 의미를 담고 있으니까...)
(해석작업이라는 게. 정서와 -부당하게-분리된 이미지를 anchor삼아. 원래의 정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임신하는 꿈을 꿨을 때. 융이라면 새로운 탄생을 의미할 텐데 어쩌고. 하다가. 결국 피임약을 안 먹었을 뿐이라는 식의 에피소드는...
융적으로 말하면. 누미노스가 원형에서 *부당하게* 분리되었을 때 오는. ‘모든 것이 모든 것을 의미하게 되는’ 상황의 예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꿈에서 임신했을 때 철렁이라든지. 숭고한 감정이나. 절망. 환희. 등등. 이런 정서를 배제하고. 딱 아기를 임신했네...만 갖고서 꿈을 다루면...
실제 일상의 이모저모를 면밀히 따져 비교분석하지 않는 이상. 눈에 걸면 눈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게 당연하단 느낌이다.


“(융이 말하던) ‘보상적인 꿈’이란, 우리가 지나치게 많은 행복을 누릴 자격도 없지만, 공정한 몫의 양보다 더 많은 불행으로 고통받는 것을 허용해서도 안 된다는 내적 감정이다.”
(이거는 뭔가 일리있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만일 꿈이 무의식적인 유아적 소망과 비슷해 보이는 것을 드러낸다면, 이 소망이 우리의 현재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검토해야만 한다.”


‘천리안 꿈’과 ‘예지적인 꿈’... 나도 이런 류의. (나중에서야. 뒤늦게) 생각해보면 일종의 (사소한) 예언과도 같았던 꿈들이 몇 개 있긴 한데...
이걸 갖고 현실에서 뭔가를 (미리) 예측하느니 (미리) 대비하느니 하는 식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일상적인 판단력을 기본으로 약간의 보조적인 통찰을 줄 수 있을지언정. 거기에 과도하게 휘둘리는 건 위험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일방적인 투사가 종종 정확성을 띄고 극도로 예리하게 ‘궤뚫어보듯’ 작용하는 경우가 있을지언정. 보통 파괴적인 편집증으로 귀결되는 것처럼...)
“...대개는 잠재의식이 ‘탐정 활동’을 한 결과로 잘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의학적 진단이나 일기예보 정도의 예언에 지나지 않으며, 단지 예상되는 가능성들의 조합일 뿐이다.”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이런 것들을 투사로 본다는 게. (이 책에서 반복하듯) 객관적인 측면과 배타적이라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투사가 분명 그 안에 명백한 객관적 진실을 포함할 수(도) 있지만. 그것조차 결국... 애초에 개인이 지각하는 모든 게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다.
나한테 투사는 (상대가 책임질 필요가 없는. 책임을 내가 지는) 열려 있는 가능성의 문제다-


게슈탈트 치료와 그림자 작업... 꿈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융의 ‘그림자’ 개념을 아예 빼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느낌이다.
내가 그림자 작업의 일환으로 계속해오던. ‘꿈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기’...가 게슈탈트 치료의 맥락에서 계속 제시된다.
“인격 속의 잃어버렸거나 소외된 여러 측면을 회복하는 데 꿈을 사용하는 것...”
각각의 (내면의 여러 측면들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에게 ‘말을 걸어서’. 각각에 이입해서 스스로를 위해 이야기하게 하는 작업들...
책 중반 이후로 뒤쪽에 길게 분량을 할양해서. 게슈탈트 꿈작업의 각종 예시를. 알기 쉽게. 길게 보여주고 있다. (이게 본문이란 느낌이다...)
(꿈 기저에 깔려있는 -모호할 수 있는-정서를 찝어내고 증폭시키는 데 확실히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하고 골몰하는 식으로. 익숙치 않으면 뜬구름잡는 느낌일 수 있는-_- 방식보단. 훨씬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것 같다-)


(보통 융 관련 꿈 관련 운운에서 빠짐없이 나오는 아니마 아니무스 문제는. 소챕터 하나로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간다-)
(사실 아니마 아니무스 운운은. 좀더 깊은 성찰에 가까운 뭔가를 요구하는 느낌이라... 이런 책에 길게 실리기엔 적절한 단계는 아니라는 느낌이다.)


이게 1972년도 (40년 넘은) 책인데... 우째 나온지 얼마 안된 책들이랑 다루는 내용이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이 들까...-_-


꿈 관련 책들을 이것저것 모으려 들던. 아직 뭔가 부족하단 느낌이 강하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굳이 뭐가 더 없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뭔가. 내가 알 거 다 알았다기보다... 그 동안의 과정을 통해 절박하지 않을 수준까진 도달했다는 느낌에 가까운 것 같다.
앞으로도 서점 들르거나 할 때 꿈 책 관련 코너를 한번씩 둘러보긴 하겠지만. 뭔가를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열렬히 구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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