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 - 보웬 - 가족체계 - 삼각관계

Posted 2018. 2. 17. 09:34, Filed under: structured thinking

M. E. Kerr, M. Bowen - 보웬의 가족치료이론 中 p.168-185 발췌.


-삼각관계의 기본 과정-


 삼각관계는 3인체계의 역동적인 균형을 말한다. 삼각관계의 활동에서 가장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안이다. 불안수준이 낮으면, 두 사람 간의 관계는 평온하고 편안해질 수 있다. 그러나 관계는 안과 밖으로부터의 정서적 힘에 의해서 쉽게 혼란에 빠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완전히 안정되게 매우 오랫동안 유지되지는 않는다. 불가피하게 관계의 균형을 방해하는 불안의 어떤 상승이 있다. 2인체계가 평온하면 그 체계는 오랫동안 안정적일 수 있지만, 안정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2인체계는 좀 더 정확하게는 불안정한 것으로 규정된다. 불안이 증가하면, 제3자는 두 사람의 긴장에 관여하게 되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제3자의 관여는 삼각관계를 통해 이자 간의 확산된 불안을 감소시킨다. 그 체계에는 불안의 이동을 허용하는 통로가 있기 때문에 3인의 상호 맞물린 관계형성은 세 개의 개별적인 관계에서보다 더 큰 불안을 내포할 수 있다. 이러한 이동은 어떤 하나의 관계가 정서적으로 ‘과열될’ 가능성을 감소시킨다. 더 많은 긴장이 내포될 뿐만 아니라 확산되고 이동되는 힘은 삼각관계가 2인체계보다 더 융통성있고 안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최소한 삼각관계는 가족 안에서 영원하다. 일단 삼각관계의 정서적 범위가 적절하면, 그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오래 유지된다. 만약 삼각관계에 있는 한 사람이 죽는다면, 보통 또 다른 사람이 그를 대신한다. 배우들은 바뀌지만, 그 연극은 세대를 거쳐 계속된다. 어린 자녀들에게서 증조부모의 결코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 표출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특정 삼각관계는 삼각관계에 현재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반드시 형성되는 것은 아니며, 불안의 상승과 감소를 새롭게 형성하거나 완전히 해결하지 않는다. 삼각관계는 해결보다는 오히려 불안수준의 변동에 보다 더 능동적이다. 특이하게도 삼각관계는 안정기엔 관계과정을 관찰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비활동적이다. 이상하게도 혼란기엔, 너무나 많은 삼각관계들이 너무 활발해져서 그 과정 내의 어떤 변화를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다. 혼동은 혼란형성인, 개별 삼각관계들을 불명확하게 한다. 삼각관계는 대부분 적당한 긴장기에 쉽게 관찰된다.

 삼각관계의 정서영역에서 불안수준이 낮으면, 두 사람(내부자)은 아무 불편 없이 친밀해지고 제3자는 다소 불편함을 느끼는 방관자가 된다. 이것은 정적인 체계가 아니다. 심지어 안정기에서조차도 끊임없는 변화를 보인다. 두 명의 내부자는 최소한 한 사람이 불편함을 느껴서 방관자와 연합하지 못하도록, 그들의 안락한 연합을 유지하려고 계속 조정한다. 방관자는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자의 한 명과 연합을 형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한다. 모든 참여자들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예측가능하게 움직인다.

 그 예는 다음과 같다. 부인과 큰딸 사이에서 방관자인 남편은 화가 나 있다. 부인은 남편에게 보다 더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이면서 그의 화남에 대해 예측가능한 반응을 한다. 자신과 부모 사이에서 방관자가 된 딸은 아버지를 지나치게 걱정한다. 남편과 딸 사이에서 방관자가 된 어머니는 딸의 외모를 헐뜯는다. 딸은 방어하게 되고, 딸과 어머니는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장시간 이야기를 한다. 그 체계는 결코 평온하지 않다. 그래서 안정기에, 내부자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려고 하고 방관자는 그것을 깨뜨리려고 한다.

 삼각관계는 안정기보다 긴장기에 다른 특성들을 보이게 된다. 불안이 증가하면(단기간이나 오랜 기간에 걸쳐), 내부자들의 관계의 편안함은 조금씩 파괴된다. 전형적으로, 불편함은 다른 사람보다 한 사람에 의해 훨씬 더 잘 느껴진다. 여전히 편안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대체로 다른 사람의 불행(두 사람이 긴장을 처리하는 방식의 산물)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불편한 사람은 처음에 다른 내부자와의 편안한 균형을 회복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불안수준이 더 높아질수록, 모든 것이 평온했을 때보다 안락한 항상성을 회복하는 것이 더 어렵다. 항상성을 회복하는 데 실패하면, 불편한 사람은 방관자와의 연합을 시도할 것이다. 이것을 열망하는 방관자는 그 초대에 쉽게 응한다. 안정된 정서영역에서 내부자들은 방관자를 배제하려고 한다. 적절한 불안상태에서, 방관자는 관계에 보다 많이 관여하여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두 사람이 제3자를 긴장 속으로 합병시킬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불편한 내부자 A는 제3자 C를 다른 내부자 B에 대해 그에게 불평함으로써 방관자 C를 그 상황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C가 A의 편을 들면서 공감하면, A와 C 사이에는 편안한 친밀함(동질성에 기초한)이 형성된다. B는 새로운 방관자가 된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편들기다. A와 C는 A와 B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B를 비난한다.

 이자관계는 또한 단순히 제3자를 가까운 곳에 둠으로써 갈등 안에 그를 끌어들일 수 있다. 그 문제가 그에게로 ‘옮겨진다.’ 아니면 제3자가 이자 간의 문제에 자기를 끌어들이도록 매우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수련’ 기간을 통해, 그러한 사람은 ‘초대’가 실제로 확대되는지 아닌지를 고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부조화에 끌리는 것을 배운다. 분화가 잘되지 않은 아동은 종종 그의 부모가 가진 이러한 종류의 지위에 빠진다. 그는 예측가능하게도 부모 사이의 긴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마다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부모 중 어느 한쪽이나 양쪽 모두의 관심을 그에게 끌어들임으로써 그들 사이의 긴장을 완화시킨다.

 적절한 긴장수준에서, 삼각관계의 이러한 이동과정의 결과는 하나의 불편 또는 갈등적인 관계와 두 개의 매우 편안한 관계로 나타난다. 불편과 긴장은 관계로부터 관계로 이동할 수 있으나, 적당한 수준의 긴장상태에서는 보통 하나의 관계 내에 포함될 수 있다. 앞의 예에서, A와 B 사이의 불편함은 C가 B에게 화를 내고 A의 불행에 대해서 B를 비난하는 것을 기초로 C와 B에게로 이동할 수 있다. C가 B에게 화를 내는 기능을 떠맡으면, A는 B를 더 편안하게 느끼게 된다.

 이런 유형은 가족 내에서 매우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큰딸과 아버지가 오랫동안 불화를 겪고 있을 때, 부모 간 그리고 딸과 어머니 간에는 조화가 유지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작용한다. 어머니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의 의견을 따른다. 그것은 부부관계의 조화를 유지시켜 준다. 딸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쓰레기’ 취급하는 것에 대해 어머니의 처지를 동정한다. 동정은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조화롭게 유지시켜 준다. 그러나 부부간의 긴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아버지와 딸 간의 갈등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삼각관계에는 여전히 두 개의 긍정적인 편과 하나의 부정적인 편이 남게 된다. 안정된 이자관계(모녀 또는 부부)는, 다른 말로 하면, 삼각관계의 평온한 쪽일 수 있다. 평온함은 삼각관계의 또 다른 쪽에 있는 부정적인 관계(부녀)의 대가로 유지된다.

 상당한 스트레스 기간 동안에, 삼각관계의 정서과정은 새로운 특징을 나타낸다. 이제 방관자의 지위는 가장 안락하고 더 바랄 나위가 없이 평온하다. 과도하게 긴장된 두 사람은 각각 그 관계의 긴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삼각관계의 방관자적 지위를 획득하려고 한다. 아들과 심한 갈등을 겪는 어머니는 아들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버지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아버지가 그렇게 하면, 갈등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폭발하게 되고 어머니는 뒤로 물러난다. 아들은 부모 간의 갈등을 촉진시키려는 의도로 이러한 움직임에 반발한다. 그는 어머니에게 ‘엄한’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불안이 가라앉으면, 어머니와 아들은 다시 친해지고 아버지는 그들의 연합에서 제외된다. 또 다른 예로는 어머니와의 연합을 방해하는 싸움을 피하려고 하는 남편을 들 수 있다. 그는 부인에게 어머니에 대해서 불평함으로써 고부간의 갈등을 촉발시킨다. 따라서 부인과 어머니 간의 관계가 ‘문제’로 대두된다. 남편에 의해 부인과 어머니가 비참하게 되는 이러한 악순환적 도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종종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아채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난다. 긴장이 감소하면, 부인은 다시 어머니와 아들 관계의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 따라서 그녀는 “당신은 나보다 당신 어머니에게 더 신경을 쓰지!”라고 하면서 내부 지위를 얻기 위한 예측가능한 행동을 한다.

 따라서 삼각관계의 기본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안정적인 이자관계는 제3자가 추가되면서 동요될 수 있다. 예컨대, 평온한 결혼생활은 아이가 태어난 후에 갈등을 겪게 될 수 있다. 그들 관계의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부모의 능력은 아이가 요구하는 시간과 에너지의 투자 때문에 손상된다.

 (2) 안정적인 이자관계는 제3자가 사라짐으로써 불안정해질 수 있다. 예컨대, 부부간의 부조화는 아이가 집을 가출한 후에 고조될 수 있다. 일단 아이가 빠진 상태에서, 부모는 더 이상 삼각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

 (3) 불안정한 이자관계는 제3자가 추가되면서 안정적일 수 있다. 예컨대, 갈등이 심한 결혼은 자녀의 탄생 이후 보다 더 조화로울 수 있다. 부모는 그들의 불안의 초점을 부부에게서 자녀에게로 옮긴다.

 (4) 불안정한 이자관계는 제3자가 사라짐으로써 안정적일 수 있다. 예컨대, 이자 간의 갈등은, 만약 두 사람이 어떤 문제에 있어서 계속적으로 한쪽 편을 드는 제3자를 피한다면, 줄어들 수 있다. 정서적으로 양극화된 문제에 의한 갈등은 편들기를 조장한다.

 삼각관계과정의 강도는 가족에 따라 다르고 동일 가족에서도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삼각관계는 인간과정의 미분화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가족분화수준이 낮을수록, 정서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삼각관계의 역할은 더욱 더 중요해진다. 불안이 매우 낮으면, 잘 분화되지 않은 가족에서도 삼각관계의 세 구성원들이 정서적으로 분리된 개인으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잘 분화되지 않은 가족에서는, 그에 대한 스트레스가 매우 낮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갈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불안을 야기하고 불안은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삼각관계는 더욱 활발해질 수 있다. 극단적으로 잘 분화된 체계에서, 사람들은 매우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도 그들의 정서적 분리를 유지할 수 있다. 구성원들이 그들의 정서적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삼각관계는 최소화되고 체계의 안정성은 그것에 의존하지 않게 된다.


-상호 맞물린 삼각관계-


 사람이 삼각관계에서 힘을 이동시키는 것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것이 불가능할 때, 불안은 상호 맞물린 방식으로 다른 삼각관계를 전개한다. 예를 들어, 그들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아들과의 관계에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부인의 노력에 대해서 아버지는 뒤로 물러설 수 있다. 이것은 어머니와 아들 간의 긴장을 악화시킨다. 따라서 어머니는 자신의 불안과 좌절을 다른 자녀에게 이야기하여 그를 긴장 속으로 끌어들인다. 삼각관계에 있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삼각관계에 관여하도록 ‘행동’할 때, 형제간에 갈등이 폭발한다. 그 동안 어머니는 방관자적 지위를 획득한다. 따라서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의 삼각관계가 유용하지 못할 때, 긴장은 또 다른 삼각관계로 넘어간다.

 상호 맞물린 삼각관계의 또 다른 시나리오에서는 부인의 고통에 반응하여 아들과 갈등을 겪는 아버지가 등장할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 간에 긴장이 심화되면, 부인은 뒤로 물러선다. 부인이 현재 일시적으로 그 삼각관계에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 과정 내 다른 자녀를 끌어들이게 된다. 따라서 갈등은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서 형제간의 갈등으로 옮아간다.

 하나의 삼각관계 내에 포함될 수 없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또 다른 삼각관계로 옮아가는 불안의 이러한 과정을 상호 맞물린 삼각관계(interlocking triangle)라고 한다. 안정된 가족 내에서, 불안은 대부분 하나의 핵심적인 삼각관계 안에 내재되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스트레스 상황에서, 불안은 다른 가족의 삼각관계 혹은 직장과 사회체계와 같은 가족 이외의 삼각관계들로 확산된다.

 상호 맞물린 삼각관계는 가족의 중심적인 삼각관계의 불안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예는 정신건강센터에서 자주 발생한다. 부모가 치료를 받기 위해 골치덩어리 사춘기 자녀를 센터에 데리고 온다. 한 명의 치료자가 사춘기 자녀와 상담을 하고 다른 한 명은 부모와 상담을 한다. 각 치료자에게는 수련감독자가 있다. 사춘기 자녀의 치료자는 불공평하게 대우받고 오해를 받고 있는 아들이라는 사춘기 자녀의 견해에 공감하면서 그 문제 속으로 삼각관계에 빠질 수 있다. 부모의 치료자는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들이라는 부모의 견해를 수용함으로써 부모와 삼각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두 치료자가 이 가족의 문제를 논의하려고 할 때, 그들은 부모가 충분히 사랑하고 이해를 하는지 혹은 자녀가 이기적이고 요구적인지에 대해 열띤 논쟁을 펼치게 된다. 양극화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각 치료자들은 자신의 수련감독자와 삼각관계를 맺는다. 두 명의 수련감독자는 이 어려운 사례를 논의하기 위해 점심식사를 같이하고, 수련감독을 얼마나 잘했는지 누가 아냐며 소리 높여 싸운다. 센터가 점점 더 소란해질수록 부모와 아들은 더 침착해지고 사이가 좋아진다!

 정신건강 및 다른 조력전문가들은 감정이입뿐만 아니라 객관적일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한다. 치료하려고 하는 가족들의 문제가 합리적으로 통제가능할 때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더욱 혼란한 상황에서 전문가들의 분화가 종종 이루어지지 않아 불안이 문제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상호 맞물린 삼각관계를 통해 산불처럼 번지기도 한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치료자와 치료진의 불안은 신중하게 고려된 치료적 원칙보다 치료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핵심 삼각관계의 불안은 상호 맞물린 삼각관계 체계로 확산되면서 초기에는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불안이 더 큰 체계(정신건강센터, 서비스기관, 법정)로 전이되면, 그것은 종종 증폭되고(도움을 주는 전문가들의 감정반응을 통해) 가족체계로 관심이 되돌아간다. 이러한 ‘조력자’들의 불안이 가족 내의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조력자들은 기본적으로 도움이 된다. 그들의 참여는 불안과 증상을 완화시킨다. 그러나 불안을 야기하는 분화의 상실과 삼각관계과정이 조력자를 가족문제의 주요 요소가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


-삼각관계와 기능적 지위-


 삼각관계와 상호 맞물린 삼각관계과정에 대한 이해는 기능적 지위(functioning position)로서 삼각관계의 각 축을 이해하는 것에 달려 있다. 한 개인이 사고하고, 느끼고, 말하고, 그리고 행동하는 것은 어느 정도(분화수준과 불안수준에 따라) 삼각관계 내 그의 기능적 지위의 산물이다. 또한 한 개인이 사고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분화수준과 불안수준에 따라) 삼각관계과정을 촉진시키는 하나의 기능을 담당한다. 기능적 지위와 심리내적 상태 간의 상호작용의 예는 한 개인이 삼각관계의 외부에서 내부 지위로 이동하여 그의 안녕감이 현저히 증진되고 자살 공상과 불안에 시달리는 꿈을 적게 꾸는 경우다.

 심리내적 상태와 행동이 삼각관계과정에서 가질 수 있는 기능의 예는 다음과 같다. 만약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화가 나 있다는 것을 C에게 표현하면, 이러한 의사소통은 A와 C 간의 연합수준을 증가시키는 기능을 한다. 만약 C가 언어적으로 또는 비언어적으로 A에게 공감하는 반응을 보인다면, 그 반응 또한 A와 C 간의 연합성을 증가시키는 기능을 한다. 게다가, B에 대한 A의 분노는 A와 B 간의 거리를 유지하는 기능을 하고, 결국 A와 C 간의 연합성을 강화시킨다.

 사람들은 종종 삼각관계에서 꽤 변하지 않는 ‘역할’ 혹은 기능적 지위를 지닌다. 이러한 지위에 기초해서, 그들의 행동은 때때로 쉽게 특성화될 수 있는 예측가능한 특징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사람은 불안 ‘발생인’의 특성을 가지고, 두 번째 사람은 불안 ‘증폭인’으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세 번째 사람은 불안 ‘억제인’으로서의 특성을 가지는 삼각관계들이 있다. 발생인은 전형적으로 삼각관계(그리고 가족)에서 정서적 색채를 띤 비난을 받는다. 다른 사람들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발생인이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넌지시 암시한다. 발생인이 잠재적인 문제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최초의 사람일 수 있지만, 삼각관계에서 순환하는 불안의 근원은 아니다. 증폭인은 발생인이 불안해할 때 침착하게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문제를 가중시킨다. 증폭인은 상황의 ‘절망’에 반응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과장한다. 억제인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반응성을 조절하기 위해 정서적 거리를 사용한다. 그러나 일정 수준의 긴장상태에서 그는 모든 것을 정리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려고 한다. 예측가능한 이러한 기능을 함으로써, 억제인은 증상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관계과정(삼각관계)을 강화한다. 압력이 계속적으로 이동하면, 삼각관계에 있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불안을 처리하는 데 책임을 지지 않는다. ...


- 삼각관계와 증상발달-


 가족체계치료의 기본과정은 이자 간의 긴장은 그 둘 중 한 명이 정서적으로 이탈되어 있는 3인체계를 형성하면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연합성이 반대의 결과를 촉진할지라도, 두 사람 간의 문제는 그것을 ‘고치려고’ 하는 제3자의 잘 ‘의도된’ 노력 없이도 해결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제3자가 다른 두 사람과 적절한 정서적 접촉을 하여 그들을 정서적으로 분리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접촉을 하고 정서적으로 분리되는 과정을 ‘탈삼각관계(detriangling)’라고 한다. 만약 이자가 분리되지 않은 제4자와 삼각관계를 만들지 않고, 대신 분리된 제3자와 주로 지속적으로 관계를 한다면, 이자는 그들의 관계를 균형상태로 되돌려 놓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증상발달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증상이 있는 2인체계에서 탈삼각관계의 영향은, 고립된 관계를 조사함으로써 증상발달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이탈된 제3자의 존재로 이자가 정서적 항상성을 다시 회복한다면, 관계에서 발생하는 증상은 그 관계가 정서적으로 이탈되지 않은 한 명이나 혹은 더 많은 다른 사람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불안이 이자 간에 형성되면, 그 관계는 자동적으로 제3자와 연루될 것이다. 제3자가 이자와 접촉하지만 삼각관계를 깨뜨린다면, 이자 간의 항상성이 회복될 것이고 쉽게 불안이 증상발달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증상이 발달하면, 한 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이자와 삼각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비교적 분화가 잘 된 이자 간의 관계는 증상발달에서 삼각관계의 역할을 잘 설명해 준다. 그 관계의 초기단계에서, 두 사람은 불안이 낮고 삼각관계를 위해 제3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충분한 정서적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의 내적 그리고/혹은 외적 스트레스에 기초해서, 불안이 증가한 두 사람은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갈등, 거리, 그리고 조화를 유지하기 위한 적응과 같은 이자의 이러한 불안을 유발하는 기제가 상당히 촉진될 것이다. 게다가, 불편함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둘 중 불편함을 더 느끼는 쪽이 제3자를 긴장 속으로 끌어들일 것이다. 이 제3자가 불편해하는 사람에게 제공하는 정서적 지지(정서적 융합에 기초한 지지)는 원래의 이자 간의 거리를 더욱 멀게 할 것이다. 불편한 사람은 그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도움을 받는다.’ 이것은 원래의 두 사람의 특징을 변화시키고 이전에 편안한 구성원을 매우 불편한 방관자의 지위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는다. 그는 이 시점에서 증상을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

 증상발달에 내재된 정서과정은 기술한 대로 그리 간단하지 않다. 많은 과정이 서로 뒤엉켜 있다.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결혼생활에서 초기 긴장이 형성된다. 조화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부인은 불안을 내면화하고 두 사람 관계에서 불편한 구성원이 된다. 그러나 그녀의 고통은 마침내 너무 심각해져서 갈등을 회피하려는 자동적 충동은 무시되고, 부인은 남편에게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부인이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 그 시점에, 그녀와 남편은 모두 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 흥분해 있고 반발한다. 이러한 비생산적 교류는 점차 두 사람에게 ‘불쾌한’ 주제를 거론하지 못하게 만든다.

 결혼생활에서 정서적 거리가 긴장을 쉽게 촉진시키지는 않지만, 부인의 기본적인 불편함을 경감시키지는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불행을 친정어머니에게 말하기 시작하고, 친정어머니가 동정적으로 반응할 때, 친정어머니에게 의존하여 더욱더 정서적 지지를 구하려고 한다. 친정어머니는 남편이 ‘냉담하고’, ‘관심이 없다’는 딸의 말에 동감한다. 사위에 대한 친정어머니의 분노는 딸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정서적 거리를 두라고 권하고, 거리감을 두는 딸의 행동을 부추긴다. 친정어머니의 반응이 그런 결과를 낳을지 몰라도, 친정어머니는 딸의 결혼생활의 분열을 꼭 ‘바란’ 것은 아니다. 동기가 삼각관계 내의 누군가의 행동에 부여될 때마다, 개인의 동기를 초월하는 과정에 대한 인식은 소멸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딸이 친정어머니와의 관계에 더 많은 정서적 에너지를 쏟아붓고 남편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질수록, 원래 부부간의 소원함에 신경쓰지 않던 남편은 현재 지각되는 ‘지나친’ 거리감에 대해 민감해진다. 그는 부인에게 자신에게 더 신경을 쓰라고 압력을 가한다. 왜냐면 정서적으로 고립되어 이제 부인보다 더 비통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지나치게 요구를 많이 할수록, 부인은 더 멀어져 가게 된다. 안락한 연합성 수준을 회복하기 위한 그의 시도가 성공하지 못함에 따라, 남편은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된다. 어느 정도의 술은 이러한 관계의 딜레마를 해결해 주고 안정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술이 남편의 기능을 손상시키기 시작하면, 그것은 심각할 정도로 부인을 위협한다. 부인이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기능의 실제적 혹은 걱정스러운 손상에 따라 부인은 점점 불안해진다.

 남편의 증상에 대한 부인의 불안은 그녀의 많은 에너지를 부부관계에 쏟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부부간의 거리와 증상발달이 증가하기 전과는 다른 종류의 관심이다. 그것은 이제 연합성에 초점이 맞추어진 증상이며, 잠재적인 관계 딜레마는 대부분 가려져 있는 상태다. 남편은 전반적인 악순환을 강화시키는 정서적 고립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한 부인의 불안한 관심에 반응한다. 부인은 남편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불안유발 압력이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되돌리려고 한다. 그러나 친정어머니와 계속 상의할수록, 아버지가 ‘과도한 음주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친정어머니의 불안이 딸에게 전염되어, 남편의 문제에 대해 ‘무언가’ 해야 할 필요성과 의무감이 생기게 한다.

 만약 부인이 부부문제에 제3자를 연루시키는 것을 불편해했다면, 그녀는 객관적이고 정서적으로 이탈된 누군가를 만났을 것이고, 그 결과는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몰입된 의사소통에서도 자신의 분화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제3자는 그 문제를 관계로부터 벗어나 삼각관계되도록 하지 않는다. 관여는 되어 있으나 ‘삼각관계되지 않은’ 제3자는 부부 각자가 문제에 대해 더 큰 책임을 갖고 그들 간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에 대한 책임감의 수용, 그리고 직면한 관계 안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동기는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감정과 주관의 성향을 넘어설 수 있는 필수요소다.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삼각관계와 탈삼각관계의 인식은 사람들이 그들의 문제를 다른 이들에게 말 ‘해서는 안 되는’ 혹은 치료자들과 같은 제3의 인물이 함께 머물러서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있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삼각관계는 다양한 효과를 가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어떤 하나의 효과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림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 또한 분화와 관련된 문제다. 두 사람 간의 문제에서 관계의 분화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은 예측할 수 있는 결과를 낳는다. 그것을 유지할 수 없다면 다른 예측가능한 결과가 나타난다. 체계사고는 무엇‘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분화는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것은 ‘정확한’ 혹은 ‘최고의’ 선택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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