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Richard Seaford - Dionysos

Posted 2019. 6. 28. 23:07, Filed under: structured thinking/reviews

디오니소스에 대해 따로 더 찾아볼라고 보다가. 인터넷 백과 가지고는 뭔가 만족이 안 돼서... 혹시 도서관에 관련 책 있나 보다가 발견하다.
근데 한글 책이 도서관에 없어서-_-... 보니까 150쪽 정도.. 아주 길진 않아서...걍 영어로 정주행해 버리다.


보면서... 내가 그리스-로마 신화를 나름 봐왔음에도.. 디오니소스에 대해 생각보다 많이 모르고 있었다는 걸 새삼 느끼다.-_-...
(나중에 내가 다시 볼라고... 쓸데없이 글이 길어지네-)


이리저리 짤막짤막하게 다루는 건 많은데.. 걍 (내가 이해한) 요점부터 쓰자면...
인류가 (특히 기원전 8-6세기? 그쯤 무렵의-) 폭발적인 정신적 발달을 겪으면서. 개인의 소외와. 의식과 본성-무의식의 분열을 필연적으로 낳게 되고...
그 결과로 그 전보다 훨씬 강한 어떤 단절감과 상실감을 불러오게 되고... (마치 실락원. 에덴의 추방처럼...)
그 감각과 새로운 필요가 투사된 게. 자연과 인간. 개인과 타인과의 (재)합일감을 되살리는. 초월기능의 힘이 디오니소스에게 투사되어 있고...
결국 디오니소스가. 인간 정신 발달에 따라 비교적 후기에 발달한 새로운. 낯선 신이고. 다른 신들과 달리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embody하는 신격이고-
과거엔 신이었지만. 그 ‘신성’을 잃은 지금에도 일종의 정신 상태- 혹은 최소한 그 정신 상태를 불러오는 무언가로서...
“(The god) Dionysos has become the (mental state) Dionysiac.”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의 파편화fragmentation와 어떤 합일감의 상실... 개인의 고립에 대한. 어떤 초월의 상징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디오니소스의 정신이 현대인에게도 어떤 의미를 갖고 뭔가를 말해줄 수 있다...고 하면서. 디오니소스에 대해 얘기한다.


디오니소스의 정신에서 핵심인 게 모순contradiction이라고- 뚜렷한 의식적인 정의로 따져선 양립 불가능한 것들을 하나로 뒤섞는 감각-
단순히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굉장히 낯설고 상호파괴적이고 침범적인 ‘타자성’으로 다가오는 모든 대립을 초월하는. 어케 보면 ‘비이성적인’ 어떤 감각-
(두 양립불가능한 것들이 합쳐져서 새로운 제3의 것을 이루거나. 혹은 두 양립불가능한 것들이 어케 그대로 공존해지거나-)
“Dionysos ‘transcends *all* forms and evades *all* definitions; he assumes *all* aspects without confining himself to any one’.”
우리의 제한된 인식-사고-언어의 결과로 만들어진 온갖 (관습적인-) 구분들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고. ‘차이를 파괴하는 원리’로서 기능한다고-
(의식적으로-) 구분지어진 경계를 흐리고. 분열을 ‘치유’하고. ‘질서와 혼돈이 공존하면서’ 원초적 합일감primal unity으로 나아가는 감각-


디오니소스 축제 Anthesteria에서는... 여자 노예 어린이 구분없이 전 폴리스가 참여해서 같이 와인 먹고. 죄수들이 풀려나거나 노역이 면제되고-
남자가 염소가죽을 입고 (사티로스-) 여자처럼/이방인처럼 꾸민 남자랑 서로 짝을 짓고-
대외적으로는 폴리스의 지배층과 하층민까지 *모든* 거주자가 함께 참여하면서도. 그 안에서는 또 여자들끼리만 참여하는 비밀 의식이 치뤄지고-
(흔히 알려졌듯) 마냥 방탕하기만 한 축제가 아니라. 그 안에 꼭 죽음과 희생과 변환의 제의가 포함되고-
(인류 최초로 와인을 만들어서 이웃에게 나눠줬다가. 처음 느끼는 취한-낯선-공포스런 감각에 중독됐다는 오해를 받고 살해된 이카리오스의 제의-)
human-animal. male-female. child-adult. Greek-foreigner. public-secret. order-disorder. life-death- 수많은 대립쌍들의 뒤섞임-


요런 디오니소스적 추종자들의 반대항은. 당연히 (계급과 사회질서를 구분짓는-) 기존 지배세력- 전제 군주autocrat고...
디오니소스 신화들이 박해로 점철된 게. 그저 외부에서 유래한 신이라서가 아니라.. 신격 자체가 기존 질서의 해체..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겠고-
but 사회적인 분열과 갈등은 공동체의 ‘질병’으로 표현되고. 디오니소스는 ‘외부에서 도래한’ 정화자이자 치유자로 나타난다.
(알렉산더 등 도시의 정복자들이 디오니소스의 이름을 빌기를 좋아했던 이유기도 하고-) (기존 질서를 전복하는 아웃사이더 구원자로서의 정체성-)


박카이Bacchae에 나오는 (예전에 얼핏 봤던) 펜테우스 신화가 생각보다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진다...
테베의 왕 펜테우스가 디오니소스를 가두려는 시도가 실패하고. 집=감옥=자아가 뒤흔들리고. ‘어둠 속의 빛’을 공격하다가 결국 검을 떨어뜨리고-
요 펜테우스는 디오니소스적 합일감에 저항하는 완고한 에고이자. 사실상 그 자체가 비의에 참여했던 주저하는 입문 후보자이기도 하다.
입문자처럼 꾸미고 몰래 입회 장소에 숨어들었다가. (이전엔 보지 못했던) 신을 ‘보게’ 되고. 박카이들(+아가우에-어머니)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는...
(나중에 제정신이 돌아온 어머니의. 아들의 찢겨진 몸을 그러모은 비탄- 피에타-)


인간적 미침unritualised madness을 음악적으로 통제된 트랜스- ‘신들림’ 상태로- 광기를 주면서 동시에 광기를 (‘바르게’ 미치도록-) 치유하는 존재-
디오니소스는 epiphany의 신- (epiphany = 신을 느끼는 것-) ‘신성한 만취’. 황홀감. 엑스터시. ‘신들림possession’의 감각-
모든 올림포스의 신 중에서 가장 인간에 가까웠던 신이고. 지상을 거닐고. 지상에서 고통받기도 하고. 가장 인간들 사이에 많이 나타난 신이라고-
거기다 불사의 존재로 여겨지는 신조차 (인간처럼-) 죽었었단 거에서. 일종의 human-deity의 대립항의 섞임의 뉘앙스가 묻어난다.


데메테르가 우리를 (육체를) 드라이 푸드로 먹이고. 디오니소스가 우리를 (정신을) 와인으로 먹인다고- (엘레우시스 비의와 디오니소스 비의-)


디오니소스의 신격 중에 제일 비중있게 다뤄지는 게. 가장 ‘인간에 가까운’ 신으로서. 죽음과 저승에 대한 일종의 중보자 역할을 한다는 거-
제우스의 아들이자 간혹 하데스(=어둠의 제우스)..와 동일시되기도 한. (삼위일체?) 페르세포네의 아들로서 (성모?) 명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다고-
(지상의 풍요로운 삶과 가장 관련깊은 신이. 동시에 (하데스-페르세포네 빼고) 지하계와 가장 관련깊은 신이라는-)
디오니소스가 지하로 내려간 신화에선. 지옥의 어둠과 공포가 흥청망청한 춤과 웃음에 밀려나고. 중간에 소녀를 만나 놀기도 하고-
포도덩쿨이 피어나고- 케르베로스가 막 아양을 떨고- 디오니소스가 지옥을 ‘바꾼다’는 이미지- 그런 디오니소스의 가호로 내세에 ‘구원받았다’는 감각-
죽음에 대해 디오니소스가 갖는 이런 권능이 그를 ‘구원자’이자 절대자로 여겨지게 만들고. 세속의 권력과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고-


인간이 자그레우스를 먹은 티탄의 재로 이루어졌기에. 인간 영혼의 구원은 디오니소스에게 달렸고. 티탄의 재가 인간에게 일종의 ‘원죄’처럼 남아 있고...
우리에게 내재된 (신을 죽인. 잔혹한-) 티탄의 본성을 극복하고. (육체에 ‘갇힌’) 영혼의 디오니소스의 신적인 층위로 초월하는 것...


요 디오니소스교 신비주의mystery-cult가 죽음의 고통과 일종의 임사체험을 동반한. ‘정체성의 변환’을 내포한 통과의례라는 거-
디오니소스를 어떤 영적 거듭남의 모범으로 삼듯. 디오니소스가 보여준 (육체적이기보다도 정신적인psychic-) 해체-죽음과 부활의 길을 뒤따르듯-
‘신의 피’로서 와인... 만취가 일종의 ‘의식의 해체’를 암시하기도 하고. ‘신의 조각난 육체’로서 날고기를 먹고... (신의 통합-)
무력한 개인을 압도하는. ‘무지’를 걷어내는 고문과. ‘저승처럼’ 캄캄한 지하 동굴- 현실과의 단절. 공포. 고독 끝에 나타난 ‘구원자’로서의 어둠 속의 빛-
죽음의 공포에서 충만한 환희로의 변환- 영혼의 해체에 저항하게 만드는 어둠 속의 빛- 내적 중심의 현신- 구원을 가져다주는 신의 이미지-


‘Hail you who have suffered what you had never suffered before. You became a god instead of a mortal.’
‘Tell Persephone that Bakchios himself freed you.’


디오니소스교든 기독교든. 미트라교든. 걍 뜬금없이 나온 갑툭튀가 아니라 여기저기 물밑에서 계속 발전되어온 인간 관념이 맺은 결실이라고-
볼수록 디오니소스교와 기독교 사이에 (그 핵심 방향-본질에선 다름에도. 표현적 측면에서-) *굉장히* 유사성이 많이 보이는데...
어찌 보면 디오니소스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정신적 발달로 제기된 같은 문제에 대응하는 서로 다른 두 영적인 해결책..이란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히려 닮아 있는 게 *당연하다는* 느낌이다.) (당연히 유대인들은+사도 바울은 디오니소스에 대해 졸래 잘 알고 있었고...)


결국 예수가 인류의 ‘구원자’가 되었고. 타종교에서 (의미적으로 겹치는-) 수많은 제의들과 상징들을 받아들였음에도. 그 핵심 정신의 차이는 뚜렷하다.
어찌 보면.. 포스트모던?적인 디오니소스의 경계흐림과 합일보다. 예수의 어떤.. 의식적으로 고도화된. 거듭난 ‘사랑의 신’의 관념이 승리했고...
그런 더욱 ‘둘로 갈라져’ 안정화된 기독교 신 관념이 추후 유럽 정신의 고도화된 발달에 (but 어찌 보면 더욱 멀어진 본성과의 분열에-) 원동력이 되었고-
이후 프로테스탄트적 청교도적 경직된 뭐시기..가 지나가고... 유럽정신의 탐욕과 폭주와 광기를 부작용처럼 겪는 등...
신이교주의가 대두되고 니체 등등이 다시 디오니소스를 끌어오는 등. 그 때 디오니소스를 낳게 했던 인간 정신의 분열의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제 와서 디오니소스 신앙을 되살리는 건 넌센스고 (불가능하고-) 어떤 살아있는 정신이 빠진 신이교주의는 공허하지만...
그 정신에 무의미하게 되씌이려 들지 않고서도. 지금의 우리 현대인에게 여전히 의미있는 뭔가를 잘 가져와볼 순 있을 거란... 식의 얘기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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