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꿈에서 ‘신통기’ 단어가 등장해서... 이거 뭐냐 하고 검색해보고 도서관에서 빌려보다.
그리스 신들의 계보- 완전 고전 중의 고전이고. (기원전 7세기...) 이쪽에서는 가장 ‘체계적이고’ (정리되어 있고) 신뢰할 수 있는 문헌이라고-
내가 그쪽 (그리스. 이집트. 근동 등 쪽) 고대 인격신들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꿈에 나온 것도 있고. 은근 기대가 있었는데...
원전의 한계도 있고. 이미 대충 아는 내용이기도 하고. 이야기보단 이름 나열이 많다 보니 생각보단 지루해서-_- 꾸벅꾸벅 졸면서 보다...


신들 각각이 정서적-내적 내러티브로 구분 가능한 어떤 가치들. 이미지들. ‘힘’들. 일종의 원형상들처럼 다가온다.
쉰 명의 네레이드라든지 요런 거 이름 일일히 붙인 거 봐도. 제각기 다 어떤 가치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일일히 따져볼 의욕은 안 생기네.-_-)
신들끼리 동침해서 낳고. 인간과 동침하기도 하고. ‘어느 누구와도 눕지 않고’ 자기 혼자서 낳기도 하고 운운-
미분화된 한 덩어리의 혼돈으로부터 점점 가치들이 잘게잘게 쪼개지고 분화되는 느낌일 수도 있고... 혹은 어떤 섞임과 변환을 암시하듯-
(신들과 괴물들을 구분짓는 게 부모나 출생의 차이라기보다 어떤 가치편향의 문제에 더 가깝다...) (비범하단 점에선 같고...)


가이아와 우라노스-크로노스-제우스로 이어지는 요 흐름이 그나마 젤 의미있게 다가오는 거 같다...
가이아가 자신의 *모든* 아이들을 사랑하고 끌어안고 포용하려 하는데. ‘아버지들’이 그 ‘무서운 자식들’을 분별하고 나누고 가두려는 데서 오는 갈등...
‘모든 것을 성장하게 하는 모성적인 근원적 의지’ vs. 평가하고 판단하고 가치의 위계를 나누는 의식의 느낌이고...
세대교체 때마다 전 세대에서 억압했던 것들을 아랫세대가 풀어주고. 한편으론 다른 쪽에서 또다른 억압을 만드는 식으로 돌아갔단 느낌이다...
(그 와중에 한결같이 일관적인 가이아...) (신들의 어머니이자 괴물들의 어머니...)


크로노스도 제우스도. 아버지(기성 질서)를 몰아내고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는 자식들은 다 (아버지와 연결이 약한. 어머니와 융합한) 막내들이네-
‘가장 무서운, 음모를 꾸미는 위대한 크로노스’‘지략이 뛰어나신 제우스’라-
요런 음모와 계략과 술수 (머리씀. 잔머리. 꼼수-) 등등이. 인간을 동물과 구분짓는 정신적인 가치. 인간의식의 (초기)분화를 나타낸단 느낌이다.
구약성경에서도 그렇고. 여타 판타지 게임 같은 데서도. 요런 류의 가치를 표방하는 신들은 대개 인간에 가까운 ‘인간의 신’들이다..


“나와 사악한 아버지의 자식들이여, 너희들이 내게 시키는 대로 하겠다면 우리는 너희 아버지의 사악하고 수치스런 짓을 복수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 이 일은 제가 맡아 완수할게요.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우리 아버지가 두렵지 않아요. 그분이 먼저 못된 짓을 꾀했으니까요.”


크로노스 본인이 아버지를 꺾고 지배적인 가치를 차지했음에도. 같은 전철을 안 밟으려. 꾸역꾸역 틀어막듯. 어떤 강박적인 쪼가 느껴지듯...
경직된 통제와 규율과 완벽과 영원함에 집착할수록. 크로노스가 자식을 삼키듯이. 현상유지를 추구하고 새로운 가치의 갱신을 억압하게 된단 느낌이다...
아기 제우스의 탄생은.. 기존의 어둠의 세력에 의해 위협받는 새로운 가치의 탄생처럼 살짝 고양되는 쪼가 있다.
다른 갱신의 가능성들이 죄다 기존 원리에 삼켜졌음에도. 막내인 제우스는 삼켜지지 않았고-
레아가 크로노스의 눈을 피해 밤의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는 긴박한 쪼와. 신성한 대지의 동굴에서의 출산과. 크로노스를 돌로 속여넘기는 것까지-


크로노스의 폭압적인 권모술수의 느낌과는 달리. 제우스한테서는 지략이면서도 원칙. 법도. 명예. 정의의 테마가 반복해서 강조된다.
크로노스가 지하에 파묻었던 우라노스의 아들들을 풀어주어 햇빛 속으로 데리고 돌아오고. ‘명예를 그대로 유지하도록’ 의식의 가치에 포섭하는 등-
요런 신들의 세대교체가. 인간 의식의 발달에 따른 가치평가의 갱신. 재배열...과도 닿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제우스가 권위를 잡고 나서도. 여전히 남은 크로노스의 티탄신족과 계속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 했다는 데서도 뭔가 오는 느낌이 있네...)


p.s. 요 ‘자식을 삼키는 크로노스’의 테마가 내가 이 책을 봐야 했던 이유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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