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Posted 2018. 8. 12. 17:46, Filed under: structured thinking/reviews

다른 영화 더 볼 거 없나 하고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설현 나왔다는 거 보고... 오랫만에 설현 보고 싶어서 보다-
뭔가.. 기억이 조각조각나고 의식기능이 파탄나가는데... 그 와중에 뭔가를 부여잡으려 아둥바둥하는... 그런 처절함?을 새삼 떠올렸던 것 같다...


처음에 폭력적인 막장 아버지 죽이고... ‘세상엔 꼭 필요한 살인이 존재한다’ 어쩌고 하는 건... 뭐 참작해서 그렇다 치고...
무슨 별별 악당들... ‘쓰레기’ ‘청소’ 어쩌고 하는 것까지도... 뭐... 그러려니... 봤는데...
나중에 문화센터 강사라든지. ‘두껍게 분칠한 여자들’ 어쩌고- *고작* 그 정도 갖고 얼굴 뚱-해갖고 예전 같으면 벌써 죽였니 어쩌니 하는 데서...
보자보자 하니까... 이 인간이 사람 죽이는 (죽여왔을) 기준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네...-_-
(위에 얼핏 그럴듯해 보이는 명분들조차도 죄다... 사실은 걍 지 혼자 관점에서 지 혼자 갖다붙인 합리화가 아니었을까-)
지가 깜냥이 안 돼서, 지 내면에서 해소 못 하는 갈등을 고대로 외재화해 버리는... 그림자 투사의 이미지다...
지가 지 관점에서 투사한 내용만 갖고... ‘놈의 역겨운 본질’을 궤뚫어보고 있다는 식의 인식... (인간은 *누구나* 어느 부분에서 어느 정도는 역겹지-)
분열끼가 철철 넘치고... 자기도취적인. 이상주의적 기질이 다분하다. 무슨 데스노트 라이토마냥- 지가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마냥-


(예전 라노베에서 봤던 그 대사 그대로 갖다써도 될 것 같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상대에게 품은 감정이, 자기가 다룰 수 있는 용량을 넘어버렸을 때겠지.”)


아버지를 악마화하고. 누나와 어머니가 이상화되는 데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극복 실패... 모성적인 아니마에 고착되는 뉘앙스가 느껴질락 말락...
딸 캐릭터도 뭔가... 알기 쉬운 느낌 아닌가. 순수하고 천진한- 맑은- ‘때묻지 않은’- obedient little girl- innocent little child-
직업이 수의사란 것도... 지 기준에 ‘쓸모없는’ 사람 목숨은 파리처럼 여기되 ‘순수한’ 동물 목숨은 또 애써 살린다는 것도 다 비슷한 맥락이다...
(어떤 정서에 사로잡혀 어떤 부류를 어떤 느낌으로 죽이고 다녔을지... 왠지... 알 만한 느낌이다.-_-)
+‘밤 늦게 다니는’ ‘헤픈 여자’의 모습이 덧씌워진 딸의 목을 조르다가 뒤늦게 정신차리고 화들짝 놀라는 장면... (Aㅏ...)


분열이 극단으로 치달아서... 자기랑 가장 가까운 사람들- 아내를 죽이고 그 딸마저 죽이려 들 정도로 파탄이 나고 나니...
제동을 걸듯- 마치 ‘더 이상 이렇게 가면 안 된다고’ 태클을 걸어오듯- 한 방에 뒤엎어 버리듯- 의식기능을 작살내 버린...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의식에서 살인충동과 살인의 기억들을 지워버리듯... 삶을 파탄내는 모든 괴로운 기억들을 치워버리듯... 마치 방어기제처럼...


“그렇게 계속 기억을 잃다 보면, 열다섯 살 이전으로 돌아갈 거 아냐. 착하고, 순진하기까지 했었던...”
“치매는 결국 나를 구원하지 못했다. 은희가 내 딸이 아니듯이...”


기억과 망상이 뒤죽박죽 뒤섞여서... 뭐가 제대로 된 기억인지 믿기 힘든 상황에서... 결국 남는 건 감정과 정서뿐인 것 같다...
(죽은 누나와 수녀원... 어쩌고 하는 데서... 이게 단순히 기억 잃고 기억 못 하고 이런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걸 새삼 와닿게 느꼈던 것 같다...)
“치매 걸리면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그러더라구. 기억하고 싶은 기억들만 퍼즐처럼 조합해가지고...”
결국 남은 거는... 어떤 이상화된 순수함... 자기 딸을 ‘통제하고’ 지키고자 하는 일념과...
살인충동... 거의 무력하게. 손쓸 수 없게. 일방적으로 휘둘리듯... 압도하듯 침습해 오는 어떤 강대한 면모에 대해서...
스스로의 ‘악마성’을 애써 부정하고... 민태주에게 자신의 살인충동과.. 온갖 사악하고 교활하고 비열한 면모들을 투사하는 느낌이 있다...
“이 새끼야. 내가 너 같은 살인잔 줄 알아?”
(꽁꽁 묶인 채로. 무력하게 놓여진... 아버지와 민태주의 이미지가 살짝 겹쳐 보이는 이미지...)


깊숙히 파묻어버렸던 불편한 기억들이 중간중간 스치듯 올라오면서... 현실과의 균열.. 자아이질감이 떠오를듯 말 듯 하다가도...
결국 다시 합리화가 가능할... 현실을 부정할. 스스로에게 위안을 줄 작은 꼬투리만 생겨도... 원래의 방어를 다시 굳혀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어설픈 방어들... 아득바득 발버둥이.. 뭔가... 좀 짠하고 안쓰러운 느낌이 있다...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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