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독후감;;뭐시기에서 받아온 책이라며. 좋다고. 읽어 보라고 건네길래... 살짝 안 내켰지만. 굳이 반발 안 하고 고분고분 받아서 읽어보다.
(뭘 읽든 간에. 좋든 나쁘든. 거기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면 그건 좋은 독서..라고 생각하고 있다. 책이 중한 게 아니다.)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맑은 글, 따뜻한 글들을 올려 보자고 마음먹게 되었다.”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고 싶었다.”
크게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어귀들을 쭉 읽으면서. 뭔가 익숙한 센티멘탈리즘의 냄새가 난다...-_-
아름답고 나른하고 ‘고운’ 것에 초점을 두고. 이면의 불쾌한 것들을 외면하고 의식에서 밀어내는. 일종의 방어기제로서의 센티멘탈리즘...
혜민스님 글들이 그런 방어기제를 제안해오는 느낌이다. 말 그대로 ‘위로’의 글들. *고통을 잊게 만드는* 글들이다. 그게 외면이든 주의돌림이든 어쨌든.
물론 이게 마음 속 깊이 *진정으로* 된다면. 당장 위로가 될...수는 있겠고. 현실에서 좋은 것들만 골라 보면서 행복행복할지도.
but... 그런 시도들이 있음에도. ‘방어기제는 (옆에서 흡수될 수 있을지언정) 가르쳐지지 않는다.’


초반 혜민스님 글들은 말 그대로 공감. 감정적인 *위로*. 힐링. ‘기능서’로 걸러보면 큰 문제가 없고. 애초에 그 안에 큰 진리가 있을 필요도 없는데...
이게 무슨 보편적인. 현명한. 인문학적 진리인 양. -백색투사로-치켜세움받고 숭앙받는 건..-_- 그건 문제가 있다.
유아적인 다정다감함과. 뭐든 다 잘 될 거야. 하는 기운주는 말들. 거기에 끼인 ‘착한 건 좋은 거고 갈등은 나쁜 거에요.’ 수준의 한가한 ‘깨우침’들.
(어찌 보면. 내용 자체보다는. ‘고매하면서도 대중친화적인 현명한 스님’이란. 권위의 주체가 더 중요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당장의 위안과 위로를 얻고싶은 사람에겐 유효한 책일지도 모르지만. 진짜 *문제*를 다뤄내고 싶은 사람은 여기서 그걸 찾으면 안 된다.


(이런 조언이 보편적인. 현명한 무언가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조언이 ‘효과있는’ 사람도 분명 있다는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뭔가 PC...의 은유가 떠오른다. “괜찮아요. 끄고 잠시 쉬다가 다시 켜면 다시 잘 될 거에요.” 정도의 위로의 느낌이다.-_-)
(그냥 그런 위로가 필요할 일들엔 따뜻한 조언일 수 있지만. 메인보드가 나갔다든지.-_- 진짜 문제가 있을 경우 한가하기 짝이 없는 말들이다.)


그나마도. 초중반까진 위로의 말이었다가... 뒤로 갈수록. 뭔가.. 본인 에고. 지침. 판단을 강변하는-_- 느낌이 점점 강해진다.
“종교인의 이야기는 철저한 내부 성찰을 통해 본인을 탁마하는 이야기가 말씀으로 나왔을 때 감동을 줍니다.” 안그래도 딱 자기얘기하는 게 보인다;;
(어찌보면.. 스스로를. 이런. 센티멘탈리즘적인 사고로 ‘가다듬으려는’ (살짝 분열적인?) 기본 태도가 엿보이는 것 같다.)
스님들 사고방식이 다 이런진 모르겠는데.. 뭔가 글에서. 자연발생적인 자아. 에고의 기능을. 별것아닌 기만인 양... 대하는 뉘앙스가 자주 보인다.
실체가 없고. 모든 게 생각하기에 달렸으니 ‘좋은’ 쪽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식의. 센티멘탈리즘적 태도의 연장선에 있다. (권장할 태도는 아닌 것 같다..)


“누군가를 자꾸 설득하고 싶은 것은 사실 나 자신이 완벽하게 설득당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난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내가 남자라는 것을 믿으라고 떠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당연하니까요.”

(이 글귀를 보는 순간. 서문의 글과 겹쳐보이면서 뭔가 아이러니한 느낌이다.-_-) (여기 말고도 여기저기 모순이 보이는 게 인간적인 느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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