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밋첼, 마가렛 블랙 - 프로이트 이후 (한국심리치료연구소) p.63~p.68 항목에서 발췌.



- 안나 프로이트: 방어이론의 초석 -


 (전략...)


 ...구조 모델은 인간의 정신을 원본능, 자아, 초자아라는 세 가지 내적 대리자 사이의 갈등으로 조금 더 복잡하게 설명한다. 이 모델에 따르면, 신경증은 근본적으로 서로 적대적인 세 가지 세력, 즉 유아적 소원들을 충족시키려는 원본능, 도덕적으로 금지된 충족을 막으려는 초자아, 그리고 이 양자와 외부세계 간의 요구들을 중재하려는 자아 사이의 무의식적인 타협으로 형성된다. 원본능을 증후로 전치시킴으로써 자아는 부분적으로 본능의 만족을 허락하는 동시에 복잡한 방어체계를 통해 특정한 방식으로 만족을 얻게끔 교묘하게 유도한다. 자아는 원본능의 충동을 위장한다. 그럼으로써 사회적 비난을 막는 동시에 그 충동들을 주의 깊게 규제한다. 신경증 환자의 경우, 이러한 금지된 충동과 방어 사이의 타협은 (흔히 성적 억압과 성공적으로 일하거나 경쟁할 수 없는 무능력으로 나타나는) 정신 기능의 위축과 함께 복잡하고 불편한 증상들을 가져온다. 그들은 위장된 형태일지라도 사회가 허락하지 않는 유아적 소망들을 추구하는 데 따른 대가를 치른다. 이러한 내적 처벌은 초자아의 요구와 그 요구를 충족시키려는 자아의 타협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략...)


 자유연상을 하라는 분석자의 지시에 따라 환자의 자아는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모두 보고하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거부를 억제할 수 있다. 그런 한편, 자아는 또한 신경증적 타협을 위해 형성된 복잡한 무의식적 방어체계들과 억압된 충동들이 의식에 떠오르는 것을 막는다. 분석과정에서 무의식적인 원본능 충동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다. 반면 무의식적인 자아의 방어체계는 원본능 충동들이 드러나는 것을 막는다. 환자는 신중하고 매끄러운 자아의 방어를 전폭적으로 수용한다. 따라서 자아의 방어는 환자의 성격 조직의 중심적인 특질로서 기능하게 된다.

 자아가 용납할 수 없는 적대적인 충동들을 정반대의 것으로 전환함으로써 충동의 본래 의미를 모호하게 만드는 반동형성이라는 방어기제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화가 난 사람이 지나치게 점잖고 종종 끈질기게 도움을 베풀며 심지어는 질식하리만큼 친절해진다. 그는 아마도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공동체의 기둥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 환자에게 그의 상냥함이 불쾌함을 감추기 위한 교묘한 위장이라고 말하면서 그의 방어적 측면을 벗기는 것은 단지 자아의 방어적 억제로부터 원본능 충동들을 해방시켜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생활양식 전체를 위협하는 것이 된다. 투쟁하는 내적 대리자들 간에 평화를 유지하고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기능을 보장하는 과업을 감당해야 하는 자아는 비밀리에 일할 때 더욱 효과적이다. 정신분석가의 관심은 무의식적인 경험을 의식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때문에 분석가는 무의식적인 원본능 충동들에게는 오랫동안 기다려 온 해방자이겠지만, 그것들을 통제해 온 자아와 자아의 무의식적 방어들에게는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만일 정신분석을 이전처럼 전투에 비유한다면, 그것은 전선 너머의 포로들을 해방시키는 구출작전이라기보다는 한 문화 전체에 대항하는 전면전의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방어들을 잠시 멈추게 하는 것으로는 온전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프로이트는 최면술을 포기하였다. 방어 자체를 직접적으로 의식적으로 탐구해볼 필요가 있었다. 안나 프로이트의 자아에 대한 탐색은 이 방어작용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눈에 띄는 증상으로부터 성격 전체로 확대되어 갔다. 개인의 성격의 여러 기본 양상들은 방어에 뿌리를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안나는 이러한 무의식적인 방어과정들이 완벽하게 분석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분석 치료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원본능 충동을 의식에 떠오르게 하는 것은 냉전 시 동베를린 사람 몇 명을 구출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러한 구출이 이루어진다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장벽을 넘어오려는 몇몇 사람들을 구출한다고 동독 사람들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장벽을 지키는 보초들을 무장해제시켜야 하며 모든 방어 무기들을 해체해야 한다.

 자아의 복합성과 방어에 대한 안나 프로이트의 연구는 치료과정에서의 분석가의 역할과 분석의 입장을 재정의하게 만들었다. 전에는 순진하게 언제나 유용한 직접적인 분석 수단으로 여겨졌던 자유연상은 이제는 점점 더 처음부터 불가피한 타협 활동으로 간주되었으며 기껏해야 분석과정의 한 요소로 인식되었다. 환자가 자아의 태도와 의식적인 반대를 억제하는 동안에도, 무의식적 자아의 방어와 그것을 지지하는 무의식적 초자아 태도는 환자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항상 작용하고 있다. 이렇게 무의식적인 정신적 활동에 대한 이해가 수정됨에 따라 분석가의 역할도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안나 프로이트는 분석가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재개념화하였다.


 “어느 정신구조에 속한 무의식적인 내용이든, 분석가는 그것을 의식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는 이 세 구조 속의 무의식적인 요소들에 균등하고 객관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 무의식을 통찰하기 위해 분석가는 원본능과 자아와 초자아 모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1936, p.28).”


 따라서 자아의 방어기제에 대한 탐색은 환자가 더 이상 자유연상을 하지 못하는 지점을 찾아 그 밑바닥에 깔린 원본능의 내용을 해석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분석가는 좀더 적극적으로 연상들 속에서 연상들을 왜곡하고 절충하는 방어작용을 분별해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분석의 초점은 원본능 충동들이 아니라 자아의 자각되지 않는 활동들에 맞추어져야 한다. 그렇지만 방어된 의사소통과 그렇지 않은 의사소통을 구별해내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안나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무엇인가가 (방어적으로) 누락되었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다음에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감정의 고립(isolation of effect)이라는 방어를 예로 들어보자. 이 경우 갈등을 일으키는 생각들은 주지화된 형태로 의식되지만 그와 관련된 불쾌한 감정들은 차단된다. 자아는 ‘자유로운’ 연상들처럼 보이는 사고들이 의식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은 허락한다. 그러나 자아는 그 사고들에서 감정들을 분리시킨다. 예컨대 환자는 강렬했던 성적 경험들을 초연하고 냉담한 투로 이야기할 수 있다. 만약 환자가 투사 방어를 사용한다면 환자는 자신의 분노를 부정하겠지만 자기 주변 사람들의 분노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환자는 ‘자유롭게’ 말하는 것 같지만 그러한 말의 밑바닥에는 본능적 압력과 함께 강력한 무의식적인 방어가 개입되어 있다.

 안나 프로이트는 자신의 저서 「자아와 방어기제」(Ego and Mechanisms of Defence, 1936)에서 이러한 문제들에 부분적인 답을 제시하고 있다. 훗날 정신분석 전문가들의 핸드북이 되어버린 이 책은 자아의 다양한 방어전략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 덕분에 임상가들은 환자의 방어기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간파할 수 있게 되었다. 안나 프로이트는 원본능 파생물들을 추적하기보다 중립적으로 원본능, 자아, 초자아 세 구조 모두에 관심을 갖는 쪽이 보다 적합한 분석 태도라고 주장했다.


 (중략...)


 ... 구조적 모델의 조망에서 보면 신경증은 원본능, 자아, 초자아라는 정신적 대리자들이 오랜 기간의 타협에 걸쳐 형성해낸 결과이다. 분석과정은 이 삼자를 협상 테이블로 초대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분석가는 (안나 프로이트가 ‘중립성’이라 부른 것처럼) 세 명 모두의 요구를 공평하게 들으면서 환자가 이들의 요구를 유익한 쪽으로 조정하도록 돕는다. ...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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