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래저러스, 버니스 래저러스 - 감정과 이성 (문예출판사) p.98~p.104 사례에서 발췌.



- 수치심(shame) -


 에이브와 패니에게는 찰스라는 외아들이 있었다. 두 사람은 아들을 맹목적으로 사랑했다. 찰스는 늦게 본 자식이었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수치심에 대한 두 가지 에피소드가 생겼을 때 두 사람은 60대였다. 그들은 1세대 유대인들로, 뉴욕에서 태어났다. 친구들 대부분도 유대인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특별히 신앙심이 깊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뉴욕 시티의 수수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찰스는 잘생기고 키가 큰 젊은이로 성장했다.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했다. 대학에서는 공학을 전공했다. 부모는 아들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1930년대 초, 찰스가 대학 4학년일 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찰스가 공학 학사 학위를 받으며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그문제가 심하게 악화되었다. 찰스가 대학에서 감독파 신앙을 가진 부유한 가문의 처녀와 데이트를 시작했던 것이다. 처녀는 코네티컷의 부자 동네에 살고 있었다. 찰스는 그녀와 그녀 가족과 점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들의 컨트리 클럽에서 테니스를 치기도 했다.

 에이브와 패니가 수치심을 느꼈던 건 찰스가 점차 부모와 인연을 끊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반유대 감정이 아주 심했다. 유대인 엔지니어라고 하면 일자리 제안도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찰스는 유대인 취급을 받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했다. 찰스는 금발에 파란 눈을 가졌으며, 키가 크고, 균형 잡힌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찰스는 그 부유한 공동체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출신을 은폐함으로써, 자신의 부정적 유산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극복하려 했다. 여자 친구와 그녀의 가족은 찰스의 출신을 알고 있었으나, 그 문제는 절대 언급하지 않았다.

 찰스와 사교계 명사였던 그 여자는 결국 결혼을 하기로 했다. 여자의 아버지는 찰스에게 좋은 직장을 마련해주었다. 찰스는 부자 세계에서 빠르게 출세해나갔다. 찰스는 부모를 부끄러워했다. 그들이 자신의 새로운 공동체나 컨트리 클럽에 나타나지 않게 하려고 노심초사했다. 그런 일이 생기면 그가 새로 발견한 부와 사교적 명성이 훼손당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찰스는 감독파 신앙으로 개종했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적 배경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찰스는 부모가 자기 결혼식에 오는 걸 꺼렸다. 아내나 장인, 장모가 뉴욕의 부모를 찾아가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찰스의 부모들은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했고, 나중에 소식만 듣게 되었다. 이것은 에이브와 패니에게 큰 충격이었다.

 찰스는 에이브와 패니,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과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 가운데 몇몇의 영어에는 강한 유대인 악센트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찰스가 잊고 싶어하는 그의 출신을 드러냄으로써 그에게 수치심을 안겨줄 터였다. 이 시점부터 찰스는 부모와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찰스는 부모를 배신한 것에 대해 수치심과 죄책감 양쪽을 다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부모가 혹시라도 찾아올 경우 그것이 자신에게 안겨줄 수치를 훨씬 더 두려워했다. 찰스가 부모와 접촉을 끊은 것은, 사회적 편견에 의해 그의 내부에 만들어진 잠재적 수치심에 대처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고 파악할 수 있다.

 한편 아들이 부모와 의절을 한 것이나 다름없이 되어버리자 에이브와 패니는 친구들 앞에 나서기가 몹시 부끄러웠다. 에이브는 화가 나 아들을 심하게 꾸짖기도 했다. 패니가 남편보다 더 큰 상처를 받기는 했으나, 남편의 상처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이런 모욕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그것은 금기시되는 화제였다. 에이브와 패니는 가능한 한 그 고통스러운 비밀을 자기들끼리 간직하려 했다. 그래도 친구들은 다 알고 있었다.

 패니와 에이브의 수치심은 그들의 친구 가운데 하나가 딸의 결혼을 준비하게 되었을 때 강하게 자극을 받았다. 그것이 그들의 비극을 기억나게 했기 때문이다. 친구는 대화 중에도 결혼 계획 이야기만 했다. 에이브와 패니를 포함해 결혼식에 참석할 하객들 이야기도 했고, 결혼식과 관련된 모든 세부 사항들도 이야기했다. 그러나 에이브와 패니가 나타나면 이야기를 중단했다. 그들도 찰스와 그의 아내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에이브와 패니는 더 쓰라린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괴로움을 감추었다. 사람들은 보통 수치심을 개인적인 고통으로 남겨두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한 가족에게 나타난 두 가지 종류의 수치심의 사례를 보게 되었다. 한 가지는 아들이 겪은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아들의 부모가 겪은 것이다.


- 심리학적 분석 -


 찰스와 그의 부모의 이중의 경험에 나타난 개인적 의미는 그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실패를 했다는 것, 그리고 그 실패가 그들의 성격 가운데 부정적인 어떤 면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따지고 들어가면, 찰스의 개인적 의미와 에이브와 패니의 개인적 의미는 매우 다르다.

 찰스는 그의 새로운 관계에서 수치심을 겪을 위험을 느꼈다. 자신이 부모나 그들의 민족적 생활 방식과 동일시될 경우에 느낄 수치심이었다. 또한 찰스는 부모와 의절을 한 것에 약간 죄책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좋은 사람들이고, 효도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서, 그의 죄책감은 자신의 출신이 탄로 나는 것으로 인한 수치심의 위협보다 약하게 작용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죄책감은 또한 그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출세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위협보다도 약하게 작용했다.

 에이브와 패니는 자기들이 기른 자식이 부모와 부모의 출신을 거부한 것이 형편없는 대접이라고 느꼈다. 거기서 그들의 수치심이 생겼다. 또한 친구들에게 자식이 저지른 짓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데서도 수치심이 생겼다. 수치스럽게 행동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냐고 자문하며 괴로워하는 경향이 있다. 에이브와 패니는 벌어진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자신이 어떤 말을 하거나 어떤 태도를 보였기에, 외아들이 자신의 출신을 거부하고, 심지어 길러준 부모까지 거부하게 되었는지 따져보았을 것이다.

 그들이 이런 괴로운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들에게 벌어진 일이 자기들 탓이라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아들에게 찰스라는 모호한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 이름만 가지고는 이름의 주인공이 이교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유대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들은 또 새로 오는 유대인 이민을 ‘풋내기’라고 헐뜯었다. 이 말은 유대인 사회에서는 영어를 잘 못하고, 본국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런 경멸은 이미 이주민으로 자리 잡은 사람들에게는 흔히 나타나는 태도다. 나아가 찰스가 성장할 때 부모는 그가 미국 문화 내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태도들이 찰스의 변절에 영향을 주었을지 안 주었을지 누가 알 수 있을까? 그러나 에이브와 패니는 당시의 인종적 편견 일부를 공유하고 있었던 만큼, 그들 비극의 원인이 그들 자신의 결함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그렇게 되면 수치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아들 편에서는 부모를 거부하는 것이 이미 이야기한 것들과는 다른 많은 이유에서 생긴 것일 수도 있다. 패니는 상냥한 여자였다. 에이브는 냉정하고, 공격적이고, 거만했다. 찰스는 에이브에게는 어느 정도 적대감을 느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지배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패니가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에 실망했다. 찰스는 수동적이고 귀가 얇은 패니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아마 자신을 돌보거나 이해해주지 않고 성공으로만 몰아간 공격적인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싶었을 것이다.

 수치심에서는, 일어난 사건과 스스로가 자신의 성격을 규정하는 방식을 떼어놓고 보는 것이 어렵다. 어떤 주어진 행동이 개인적 이상에 어긋나고, 또 다른 사람들의 경멸을 받게 될 때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자기규정에는 이런 행동을 포함시키지 않을 수 있다. 아마 찰스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출세하기 위해, 안정된 미래를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자신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있는 것에 부모들도 기뻐해야 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찰스는 부모와, 특히 아버지와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부모에게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고, 결혼 전에는 거의, 그리고 결혼 후에는 전혀 부모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것이 죄책감과 수치심을 더 강화해주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내와 처가 사람들이 자신의 부모와 교류하는 것을 권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부모의 인종적 출신과 동일시되는 수치를 피할 수 있었다.

 에이브와 패니는 죽음 전의 몇 년 동안 친구들을 중심으로 생활했다. 그리고 아들과의 찢어진 관계를 받아들이려고 최선을 다했다. 대부분의 상실과 마찬가지로, 이런 상실은 슬픔의 원천이었다. 또 분노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니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거의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패니의 경우가 에이브보다 상실감이 더 컸다. 에이브는 그런 상실에서 짜증을 느꼈다. 일어난 일을 자기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에이브가 패니보다 덜했을 것이다. 그러나 에이브는 친구들 눈을 생각하며 수치심을 느꼈다. 패니도 이런 수치심을 느꼈으나, 그녀의 수치심에는 자신이 어머니로서 실패했다는 생각도 포함되어 있었다. 패니는 아들에게 거부당하는 데 에이브보다 더 많은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아들이 자기가 한 일에 큰 대가를 치르고, 나중에 괴로워할 것이라는 걱정도 더 많이 했다. 패니는 남편과는 달리,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보다는 자신에게 돌리는 경향이 강한 사람이었다.

 한참 시간이 흐르자 둘 다 아들 일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또 대부분의 경우에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은 죽을 때, 남길 재산도 거의 없었지만, 그나마 남은 재산을 유대인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어차피 찰스한테야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찰스는 자기가 선택한 환경에서 잘 살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내적 삶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다. 찰스 부부는 네 자녀를 길렀다. 그들 모두 아이비리그에 진학했다. 그리고 각자 가정을 꾸려 독립해 나갔다. 에이브와 패니는 손자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우리는 찰스는 에이브와 패니만큼 수치심을 느끼지는 않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찰스의 행동에 분개하는 독자들에게는 언짢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찰스의 결혼은 성공적이었으며, 오래 지속되었다. 부모가 죽었을 때 찰스는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러나 에이브와 패니의 친구들에게 추방당했다. 그러나 이것은 찰스에게 거의 고통을 주지 않았다. 이미 골치 아픈 과거와 거리를 두는 방식을 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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