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포 선셋 Before Sunset

Posted 2019. 9. 14. 14:58, Filed under: structured thinking/reviews

비포 선라이즈에서 이어서 보다. 그때에서 9년 뒤 얘기고. 되게 어려 보이던 배우들 얼굴에서 확 세월이 느껴진다.
영화 전체가 어떤 감정적인 쪼로 푹 쩔여져 있는 느낌이다... 현실의 풍파를 때려맞고 제대로 꺾였지만 아직 미약하게 살아남은 낭만의 싹-
살짝 하루키 소설들도 연상될려 하고... (어떤 잃어버린. ‘잘라내어진’. 채워지지 않은. 고스란히 공백으로 남아버린 ‘상실’의 감각-)
반복해서 낡아버린 주가치와 ‘갱신’과 ‘재생’과 변환의 필요성의 상징들이 대두되는데. 보통은 그게 실제 환상처럼 저런 식으로 삶에 들어오진 않지.


뭔가 마냥 헬렐레하게 볼 수가 없고. 살짝 심적인 경계를 세우게 된다. 솔직히 스치는 인상은... 둘 다 되게 과거에 살고 있네.-_- 스런 느낌이다.
몇 년 전에 봤으면 되게 허하고 절절했을 거 같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이미 개인적으로 다뤄낸. 과거에 속하는 문제다...)


내가 낭만주의적이라고 쓸 때는... 그리 긍정적이기만 한 뜻으로 쓰는 단어는 아니다. (막 백퍼 부정적이지만도 않지만-)


얘네 둘... 레알로 말 엄청 많네.-_- 대사는 엄청 많은데. 지적으로 곱씹을 대화라기보다 대부분 어떤 감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제시. 요런 부류의 사람들한테는 어케 보면 예술 쪽으로 성공하는 게... 기존의 쪼를 세상과 (그나마) 덜 부딪칠 수 있는. 정체성적인 고난이 적은 길이지...
보면 아직도 그 때 그 정서를 그대로 품고 있듯... 그 순간을 붙잡아서 기념비처럼 박제하고픈 감각- (영화 향수랑도 이어지는-)
새 소설 아이디어라. 어떤 음악 안에 담겨질 듯한. 3-4분 정도의 시간에 한 장의 이미지처럼 담기는 어떤 무드-
겉보기엔 성공했지만 내적으로는 삶의 무의미와 피상적인 소통. 꿈의 상실. 단절의 감각을 갖고 쭉 만성적인 우울감에 시달리는 남자가...
문득 스스로의 ‘소년’으로서의 삶과. 어린 딸과 거기 겹쳐보이는 청소년 연인의 생기넘치는 춤을 겹쳐보면서. 어떤 ‘의미’와 기묘한 양가감정을 느끼는...
딱 어떤 갱신과 재탄생을 꿈꾸는 감각인데.. 아직 그 가능성은 굉장히 어리고 미숙한 채로 남아있는 상태다. (의식적인 돌봄이 필요하다...)


파리에서의 제시의 책사인회에 셀린이 (알고-) 찾아와서 이루어진 기적적인 재회-
근데 첫 만남 때랑 마찬가지로. 제한시간이 정해져 있는 짧은 만남이라... 뭔가 비일상적인 느낌을 갖고간다. 일상 대 일상의 만남의 느낌이 아니다.


근데... 여기서 셀린은 *굉장히* 불안정해 보이네.-_- “..You think I'm neurotic?” (ㅇㅇ.. 내가 볼 땐 좀 뉴로틱해 보인다.-_-)
그 때만 해도 로맨틱 끝판왕이었는데. 여기선 자기는 로맨틱한 거 별로 안 좋아한다고 먼저 선 긋듯- 딱 봐도 상처 많이 받았을 거 같은 느낌이네.
그 때 6개월 뒤에 비엔나에 왔었냐고- 물어보는 저 표정이랑 말투 보소.-_- 뭔가 툭 건드리면 봇물처럼 터질 거 같은 느낌이고...
뒤에 남자 말 끊어 가며 지 할 말만 일방적으로 쏟아붓는 거에선. 얘 뭐지...?싶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하는 궁금증도 살짝 올라온다.


환경단체- 녹십자에서 일한다고- ‘부서져 가는 세계’를 고치고 땜질하고 유지보수하듯- 저번부터 쭉 보이던 이상주의적인 쪼를 그대로 가져가듯-
근데 여기서는.. 뭔가... 그 때 거기에서 *심하게* 극단적으로 한술 더 뜬 느낌이네.-_-
솔까 누가 내 앞에서 저렇게 고양된 쪼로 장광설을 늘어놓으면... 겉으로는 아 네... 받아주겠지만 속으론 좀 거리를 둬야겠다... 싶어질 거 같다.-_-
나 우째... 남자가 그때보다 되게 순해진 거 같지?-_- 오히려 셀린 상태가... 무슨 파이터 멘탈마냥 뭔가 속에서 펄펄 끓고 있는 느낌이다.


(셀린이 열변 토하는 데 제시가 농담 던지니-) 셀린: (손 들고. 손가락 문어마냥 꼬물꼬물 살랑살랑하며-) “Say stop-” 제시: (ㅇ_ㅇ?) “..??Stop...?”


저 할머니의 죽음 운운. 저건 몇 번째 얘기하는 거뇨- 이게 얘한테는 그 정도로 중요한가? (부모랑은 안 친해 보이던데...)
어케 보면. 부모 세대와 가치적으로 살짝 단절이 있고. 비포 선라이즈에서도 할머니 얘기 계속 꺼낼 정도로 정서적으로 융합해 있었는데... (흔한 양상...)
(제시와의 어긋남과 딱 겹친) 할머니의 죽음이. 딱 민담에서 긍정적인 어머니상의 죽음처럼. 얘의 기존 가치를 확 뒤흔들어놨을 거 같은 느낌이다.
(기존 가치가 ‘죽었지만’. 그걸 대체할 가치는 떠오르지 않은 채로. 어떤 재생과 갱신을 필요로 하지만 어디선가 꽉 틀어막힌...)
어찌 보면 셀린은. 예전의 그 나이브하고 이상주의적인 쪼에서 더 성숙하긴커녕. 더 씨니컬하게. 뉴로틱하게 배배 꼬이기만 한 느낌이고...
미디어 자본주의 소비 광기 운운- 얘는 지금 머릿속에 *마땅히 이래야 하는* 것들로 가득차서.. 상대하기 피곤한 상태다.-_-
저런 식으로 굴다 보면 결국 자기 삶이 씹창일 거고. 자기 정신세계가 어지간히 안 풀려 있는 상태겠지. 그게 외부로 다시 되먹임되듯 투사될 거고...


셀린한테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졸래 남 얘기 같지 않게 익숙하면서도ㅠ 굉장히 맘에 안 드는 이 쪼들...
세속적인 야망과 성공과 그런 거에 죄다 피상적superficial이고 허하고 의미없단 식으로 까내리고. ‘진짜’를 찾아 헤매면서도 정작 그게 뭔진 모르는...


동시에. 반복적으로 셀린한테서 보이는. 이전까진 어떤 ‘큰’ 의미를 갖던 낭만적인 감성을 정체성에서 ‘잘라내려는’ 냉소적인 느낌...
“I still have lots of dreams, but they're not in regard to my love life. It doesn't make me sad. It's just the way it is.”
“It's not so easy for me to be a romantic. You start off that way, and after you've been screwed over a few times, you forget about all your delusional ideas and you just take what comes into your life...”

잘라낸다는 건 동일시를 벗는다는 거고. 어떤 의미에선 더 높은 의식성과 성숙으로 나아가는 길일 수도 있지만... 저런 씨니컬한+체념적인 쪼론 아니다.
심리적인 의미를 통찰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 ‘미숙함’ 때문에 자꾸 엇나가니까 상처입기 싫어서 미해결인 상태로 치워버린 거 아닌가...


어케 보면. 말 그대로 이도저도 아닌 상태. 이것도 못 받아들이고 그 반대도 못 받아들일. 살짝 출구를 못 찾고 헤매는 느낌이다.. (ㅠㅠ)
“Thinking of how hopeful I was that summer and fall, and since then it's been kind of a...” (거의 울 것 같은-)
“Memory is a wonderful thing if you don't have to, deal with the past-” (과거를 제대로 다뤄내지 못하고 있다는 거지-)
뭔가 흐름이 막히고 길을 잃고 나서. 살짝 과거에 사는 느낌 있고. 어떤 감정이 살아있고 의미가 살아있던. 지나가버린. ‘좋았던 그 때’를 그리워하고 있고...
얘한테서 어떤 낡아버린 감정적인 원리가 갱신되어야 되는데... 거기에 마치 ‘소년’의 상징처럼 다시 나타난 제시...
솔까 내 기준에선 더 너머를 봐야 될 거 같지만.-_- 얘는 일단 미해결 상태로 ‘잘라내버린’ 낭만부터 다시 제대로 다루는 게 먼저일 것 같다...


“It's not even about you anymore. It's about that time, that moment in time that is forever gone. I don't know.”
졸래 씨니컬하던 셀린이. 제시를 다시 만나고부터 다시 뭔가가 올라오듯. 기타 그림 중국어 작곡 등- 예술적인 소녀감성을 다시 일깨우려 들고...


셀린 저 어린시절 엄마가 주입하던 경고- 섹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과 연결되고. 그 길에 나타나는 더러운 늙은 변태 노인의 환상과 이어지는 등-
뭔가 그림자적인 환상이고. 특유의 이상주의적 태도와 희한하게; 이어지고. 비포 선라이즈적 감성이 크리피하게 뒤틀린 느낌이고...


셀린의 저 나이먹는 악몽 운운- 자기인식과 정신성이 흐릿할수록 육체+외모의 젊음과 잃어버린 가능성에 집착할 거 같은 느낌이네.
셀린: “Apparently we don't renew our synapses after twenty, so it's downhill from then on. Oh, well.” (음...)
나 같으면... 당연히 스무 살때의 몸과 열린 가능성이 부럽지만... 지금 그나마ㅠ 이 정도 얻은 마음의 평화와 의미들에 비하면 걍 하잘것없게 느껴진다.


“You can never replace anyone. What is lost is lost. each relationship, when it ends, really damages me. I never fully recover.”
“You can never replace anyone because everyone is made of such beautiful, specific details.”
“...little things... I see in them little details, so specific to each of them that move me and that I miss and will always miss.”

왠지 하루키적 감성 연상되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 뭔가 특유의 나이브함과 ‘유치함’이 현실과 어긋나면서 되게 상처 많이 받은 거 같고...
비포 선라이즈에서 고대로 이어지는 낭만주의적인. ‘작은 것들을 위한 시’스런- 요것도 되게 융합적인 감성이 크고...
요런 얘기들 들을 때마다.. 게임에서 본. ‘아름다운 생명’들을 석화시켜 ‘예술품’으로 영구보존하려 드는. 도덕관념과 괴리된 (미친?)마법사가 연상된다.
얘 지금 뭔가 쪼가 위험한데... 요런 감성들을 내가 다뤄낸 거랑 별개로. 다른 사람들이 어케 다뤄내야 하느냐- 하면 뭐라 말을 못 하겠네...


점성술- ”You're a Scorpio, I'm a Sag. We get along.”


이 남자가 갑분 정신성 종교 운운 읊조리는 건... 왠지 예전이랑 안 어울리고.-_- 그때보다 살짝 매가리없어보이는 느낌이네.
더 어릴 때는 쭉 불안정한 존재였다면. 지금은 결혼한 상태에서 뭔가 대지에 옭매인 느낌처럼. 꿈의 상실에 시달리듯. commitment 문제를 겪고 있고...
남자는 묘하게 달관한 듯. 체념한 듯 평탄쪼를 갖고가면서도.. 그 기저에는 만연한 불만족과 잃어버린 꿈. 의미의 상실의 감각을 갖고간다.
삶이 서툴고 버겁고. 세상에 자기 자리가 없는 것 같고. 뭔가 현실에 묶이고 ‘발을 붙이고’ 짊어지는 게 내면의 ‘붕 뜨려는’ 뭔가를 훼손하는 듯한 감성...
얘가 이 여자 열정passion 운운 하던 게. 저런 ‘사회적인’ ‘활동가적인’ 무언가- ‘삶에 발을 붙인 듯’ 보이는 그런 면모였을 수도 있고...
“I think that's why I really admire what you're doing.” “You're not detached from life, you know? You're putting your passion into action.”


제시: “Do you think it's true that if, uh... if we never wanted anything we'd never be unhappy?”
부디스트 운운은. 결국 삶으로 향하는 흐름을 ‘자발적으로’ 희생하고 절제하고 그 에너지를 전환해서 더 높은 정신성의 추구로 돌리라는 건데...
저런 식으로. 자기가 무력하게 ‘잃어버린’ 거를. 희생한 거라고 뒤늦게 체념쪼로 끼워맞춰봤자 의미없고...
애초에 원래 자기가 ‘갖지’ 못한 건 희생할 수도 없다. (반대로 말하면. 진짜로 희생할라면 그 욕망을 ‘가져야’ 된다. 그 의미를 알아야 된다.)


임신 때문에 결혼했고. 사랑도 미래도 없지만 아들 하나 보고 살고. 그러면서도 늘 잃어버린 꿈. 의미의 상실. 만성적인 공허에 시달리고...
저런 꿈 운운- 나라면 저런 공허하고 소외된 상실쪼의 꿈들은 일종의 심리적인 위험신호로 보겠네. (어떤 아노미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듯...)
“I feel like if somebody were to touch me, I would dissolve into molecules...” (해체...)


셀린. 어릴 떄 일기 운운- 어쩌다 펴서 읽었는데. 지금이랑 그 때랑 감성의 핵심이 똑같아서 놀랬다고. 스스로가 변한 게 없단 걸 깨달았다고-
거기다가 제시는 (일반론적으로-) 누구나 다 그렇다고. 누구든 타고난 셋-포인트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고... (but 내가 볼 때 다 그런 건 아니다...)
어케 보면 아무도 자기의 결정적인 태도를 희생하지 않았고. 그대로 그 쪼 그대로 가져갈라고 드느라 공허하고 허무한 거지-
상실의 감각이고. 어릴 때 유리구슬을 생각하듯- 어떤 변환과 희생과 새로운 흐름이 필요한데. 쭉 잃어버린 것만 붙들면서 과거에 살고 있지 않나...


셀린... 암만 사귀어도 자기 쪽에서 아무런 설렘도 없고- 피상적인 관계들- 아무도 자기한텐 결혼하잔 얘기도 안 하고- 사랑이 뭔지도 모르겠고-
어떤 순덕순덕한 감성이 있었대도 그 때 그 순간처럼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고- 그저 안정으로 가고 싶지만 요원할 뿐이라고-
감정적으로 죽어가듯- 무감각과 무의미의 극치라고- 거의 울 듯이. 열불내듯 쏟아내는데... 저 셀린은 갈수록 점점 히스테릭해지네.-_-
에단 호크는 그런 셀린을 보면서 오히려 *더* 애틋하게 받아주고 감싸주려 드는데. 나라면 정신 차리고- 내 자아경계를 딱 세우려 들었을 거 같다.-_-
(내가 저런 ‘상처입은 이성’에 대해 애잔하게 이끌리는. 연민적인. 구원자적인 감각은 거의 버린 거 같네...)


“We're not real anyway, right? We're just characters in that old lady's dream. She's on her deathbed, fantasizing about her youth-”
“So, of course we had to meet again.”


제시: “Oh, God- why weren't you there in Vienna? Our lives might have been so much different-”
요 절절하고 허한 감각. 어떤 잃어버린 무언가에 대한 ‘상실’의 감각- 회귀욕구와도 상통하는...
그럼에도. 내가 내 첫사랑은 지금 기회가 주어진대도 오히려 안 만날 거라는 걸 생각하면... 이 둘 사이에선 뭔가가 더 많이 다뤄져야 된다고 느낀다.
애초에 삶에서 (서로 상대방으로 상징되는-) 어떤 에너지가 제대로 흘렀다면. 9년이나 지난 하룻밤에 아직까지 연연할 이유가 있을까-


비행기 시간의 한계까지- 미루고 미루고 미루듯- 결국 여자 집까지 같이 가서. 침대에 앉고. 노래를 연주해달라고-
노래를 불러주는 건 감정이고. 특히 지금껏 막혀갖고 흐르지 못했던 에너지의 흐름과 쭉 소외된 감정들- 일종의 열등기능이고. ‘아이’의 형상이고...
저 고양이도. 매일 모든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게’ 보고 천진하게 뛰어다니는. 어떤 ‘갱신’의 감각. 어린이 원형스런 감각을 갖고가고...
어린 시절 사진들과 할머니와 찍은 사진들- 노래 틀어놓고 설렁설렁 춤추고- 노래하고- 요런 회귀적인. 고양되는 감각-
오래 전에 잘라냈던 그 시절의 감성을 제시와 함께 되일깨우듯... 셀린 맨 등 살랑살랑 보이는 게 무슨 유혹처럼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고...
서로에게서 각자 잃어버린 삶의 뭐시기를 다시 보고. 생의 어떤 잊혀졌던 흐름을 다시 일으킬 듯한 설렘설렘한 감성이지만...
but 어케 보면.. 비포 선라이즈 때나 지금이나 구체적인 무언가로는 아직 *하나도* 드간 게 없다. (어케 보면 이제서야 겨우 시작이라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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