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내려간 김에. 집에 있던 거. 예전에 (어릴 때) 읽었던 거 다시 꺼내서 읽어보다.
‘쥐 3부작’이라... 예전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읽었던 건 거의 기억 안난다. 거진 이거랑 비슷한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p.24-
“몇 번이나 야간 열차에 탄 꿈을 꾸었다. 언제나 똑같은 꿈이었다. 담배 연기와 화장실 냄새와 사람들의 훈김으로 후텁지근한 야간 열차였다.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혼잡하고, 좌석에는 오래 전에 누군가가 토한 것이 말라붙어 있었다. 나는 참다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의 역에 내렸다. 그 곳은 인가의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역원의 모습조차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고장이었다. 시계도 열차 시간표도 아무것도 없는, 그런 꿈이었다.”


...딱 요런 느낌. 주인공은 내내 이런 상태(였)고. ‘그녀’의 도움과 자극을 받아. 미묘한 단서들을 쫓아 구원을 추구할락 말락 하는...
(하루키가 확실히 글을 잘 쓴다. 글만 보고도 이미지가 바로바로 떠오르는. 묘사가 직관에 닿아 있는 느낌이다.)
(내가 비슷한 분위기의 꿈들을 한때 반복해서 꾸던 걸 생각하면. 아마 이것도 하루키 본인의 실제 꿈에서 따오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하고나 자는 애’라는 건. (도덕적-윤리적 뭐시기를 갖다 버리고 나면) 뭔가 집시적인 마력...의 이미지로 연결되는 느낌이다.


책 전체적으로 온갖 회귀적인 이미지가 가득하다. 과거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변화하지 못한 채) 과거와 같이 죽어가는 느낌이다.
소설 전체에서. 주인공보다 더한 (주인공이 상대적으로 멀쩡해보일 정도로 망가져가는. but 본질적으론 같은...) 인간상들이 넘쳐난다.
대낮부터 위스키 까는 친구라든지. 42년째 틀어박혀 잃어버린 양에 대해서 파고 있는 양 박사라든지...
친구와의 대면. 열라 쿨하고 니힐니힐하네.ㅋㅋ
친구가 대놓고 회귀적이고. 주인공이 그걸 만류하는 것 같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점에선 도찐개찐이다. (주인공도 완전히 벗어난 게 아니다)
목표를 잃은 회귀본능을 특유의 니힐리즘으로 누르고 있긴 한데. 근본적으로는 아직 아무 것도 해결이 안 된 것 같은 느낌...


“특별히 마음을 닫고 있겠다는 생각은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 자신도 아직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뿐이야.”
예전에 읽을 때는 내가 쭉 주인공한테 이입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왠지 상대방-그 여자애. 주변인들 입장에 좀더 가깝게 이입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남자가 질문에 대답하는 꼴이 뭔가 깝깝하단 느낌을 받는다.-_-+ (왠지 익숙한 느낌...)
뭔가가 어느 지점에서 틀어막힌 듯. 자기 속마음도 잘 모르고. 말 그대로 ‘평행선’. ‘함께 있어도 아무데도 갈 수 없는’ 그런 느낌...


그녀. ‘심리학 통신 교육’을 받은. 평범한 외모에 신비한 능력-귀-을 가진. 상담자마냥 현명하게 문제를 짚어주고. 자극하고. 이끌어주는 존재...
미묘한 메타포를 불러일으키고. 주인공의 아련한 무언가를 자극하고. 모험-자기성찰-으로 이끄는 존재. (‘아니마’ 그 자체다...)


p.234-
“그렇다면 가령, 의식을 완전히 포기하고 어딘가에 꽉 고정되었다고 하면, 내게도 훌륭한 이름이 붙을까요?”
“고정이라니요?”
“말하자면 냉동되어 버린다든가, 뭐 그런 거지요. 잠자는 숲 속의 미녀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에게는 이미 이름이 있지 않습니까?”

은연중에 (미묘하게) 묻어나는. 뭔가 ‘낭만주의적’ 자살사고와도 겹치는. (회귀본능과도 통하는) 이 특유의 감각... (계속 반복되는...)


양은. 뭔가. 여럿의 과거와 얽혀 있는. 회귀본능의 메타포의 중심에 있는 궁극의 키워드다. 안간힘을 써서라도 (되)찾아야 할 그 무언가다.
‘사로잡는’. ‘마성(마나)’을 가진. 어떤 목적성을 가진 듯. 숙주에 숙주를 이어 살아남는 관념. 자율적 컴플렉스...
(보통 사람마다 돌아가고픈 이상향이 다르겠지만. 여기서의 회귀본능에는 뭔가 관념적인. 사상적인 뭔가가 포함되어 있다는 건 알 것 같다.)
단서를 따라. 온갖 미묘한 메타포들 가운데로. 파고 들어가고 들어가. 그 근원에 닿는... 그런 과정들...
회귀본능은 단순히 무시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파헤쳐지고. 확인되고. 성찰되고. 의식적으로 버릴 수 있어야 된다.


but. ‘그녀’가. 애초에 주인공이 이리로 오도록. 자극을. 영향을 준 존재임에도. 왜 그녀는 여기에 오면 안 되는 거였고. 사라질 수밖에 없었나.
“양을 한 마리 찾아내면 되는 거죠?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만약 당신이 저를 데려가 주면, 틀림없이 당신에게 도움이 될 텐데요.”
“나도 그 양이 보고 싶으니까요.”
“아마 당신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는 (찾으러 가는) 게 좋을 거에요. 그리고 양은 꼭 찾을 수 있을 테고요.”
“우리 양을 찾아요. 양을 찾아내면 모든 일이 잘 될 테니까요.”

뭔가. 대사들을 나열하면 할수록... 뭔가. 자율적 컴플렉스의. 회귀본능에 대한. ‘끌어들이는’ 느낌...과 연결되는 느낌이 있다.
뭔가. (분화되기 전의) 아니마는. 항상 회귀본능이랑 강력히 엮여 있지 않던가. 회귀본능 자체에. 그녀가 포함되어 있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결국. 그녀는 떠났고... 이런저런 과거. 회귀본능에 대해서. (‘쥐’의 입을 빌려) “끝난 거야.” 라고 명백하게 선언하는. 관짝에 못을 박는 느낌이다.
책 전체에 걸쳐 반복되던 수렁 같은 회귀의 이미지에. 돌이킬 수 없는. ‘명백한’. 결론. ‘선고’를 내린 느낌이다...
(주인공은. 아직 그걸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느낌이지만. 어쩔 수 없다.ㅠ 현실이 그렇고. 주인공은 그걸 회피할 수 없다...)
but. 미련둘 수도. 돌아갈 수도 없이. 모든 과거가. ‘명백하게’. 완전히 끝났지만. so what?
아직 거기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답을 주지 않는다. 아노미 상태- 사라져 버린 ‘그녀’를 포함해서. 아직 미해결된 과제들이 남아 있다는 느낌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그 다음작. 댄스댄스댄스까지 봐야 답이 나올 것 같다...)


Respon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