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성공적 삶의 심리학...에서 잠깐 언급된 걸 보고. 뭔가 살짝.. 덜 풀리는 게 있어서 일부러 찾아본 고전영화다.

저자의 평가가 너무 편파적인 거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확실히 책에서 봤던 거랑 비슷한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아마 십 년 전에 봤더라면 나도 ‘고상하고 감수성 있는’ 블랑쉬 쪽에 더 이입하면서 봤을 것 같지만. 지금은 아니다.

코왈스키가 비록 무례하고 거칠고 -단순하고- 공격적일지라도. 기본적으로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은 현실적이고 직접적이고 솔직하다. (왜곡이 없다)

블랑쉬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중적이고. 히스테리컬하기 짝이 없고. 진솔해 보이는 언행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코왈스키가 -보통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공격성을 더 노골적으로 표출하긴 하지만.. 그가 특출나게 더 악의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라디오를 부수는 것도. 코왈스키가 너무 난폭하게 구는 거 아닌가..식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좀 참지.. 하는 느낌이긴 하지만-

나한테는. 블랑쉬가 굳이 라디오를 틀면서 코왈스키의 신경을 슬슬 긁는 게 먼저 보인다... -코왈스키가 한 번 참고. 두 번째 트니까 부수는 거다...-

사실 난 오히려... 코왈스키가 난폭한 이미지에 비해서는 생각보다 많이 참는다고 느꼈다.-_-

까놓고 말해서. 아무리 동생이라고 해도 남의 집에 들이닥쳐 신세질거면 알아서 몸 사리고 서글서글 둥글둥글하게 구는 게 현명할 텐데...

혼자 고고한 척은 다 하고. ‘낮게’ 보는 메타메세지를 은연중 뿌려대고. 거기다 뒷담화하는 것까지 걸리면 어느 누가 좋게 볼까.

출산을 앞둔 스텔라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단둘이 있을 때. 기분 업돼서 나름 젠틀하게 구는 코왈스키한테 먼저 기분 잡치는 소리를 던진 것도 블랑쉬고.

블랑쉬가 투사적 망상..으로 대놓고 코왈스키를 경계하지 않았다면. 아마 코왈스키도 강간까진 생각이 미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단지 공격성이 ‘천하지’ 않아 보이게 ‘위장되어’ 있을 뿐. 블랑쉬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주위 모두에게 미묘한-수동적인- 공격성을 흩뿌려대고 있다


카드게임-라디오 부순-다음 날. 스텔라를 붙잡고 헤어지라며 구구절절 떠드는 내용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우리가 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사람처럼 되긴 멀었지만 그래도 발전이 있었잖아. ...아름다운 감정들은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하는 기본적인 거야...”

그러니까. 공격성과 ‘야만적인’ 감정들을 억누르고. 고상하고 아름다운 감정들만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건데...

허울은 그럴듯하지만. 당장 블랑쉬의 언행만 봐도-_- 그렇게 억누른 ‘야만적인’ 공격성들을 배배 꼬인 형태로 -자기도 모르게- 사방에 표출하고 있다

(방어기제로 보면 투사. -반동형성?- 해리...쯤 될 것 같고. 나중 가면 망상적 투사. 부정. 왜곡 등 정신병적 기제로 퇴행한다)

공격성이 -리비도. 융합환상과 반대로- 자기를 주장하고 타인과의 -자아-경계를 형성하는 본능적인 힘...이라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공격성은 소위 ‘사랑’...을 통해서 ‘중립화’되고 다듬어지는 것이지, 억누르고 없앤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러니저러니 부정적으로 써놨지만. 나는 블랑쉬를 -지지하진 않지만-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실제로 -약한 동일시와-연민을 느끼고 있다.

(노골적인 공격성과 어떤 ‘야만성’에 강한 거부감을 가진. 혹은 과거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코왈스키가 솔직하고 현실적임에도.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관대함과 어떤 ‘감수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심적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코왈스키가 공감을 배우는 게 블랑쉬가 현실에 발을 붙이는 것보다는 더 쉬우리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영화 엔딩의 뉘앙스가. 코왈스키에게 은연중에 적대적이라는 -블랑쉬에게 은근히 호의적이라는- 느낌이다.

스텔라가. 코왈스키에게 다신 돌아가지 않겠다며. 고작 넘어지면 코 닿을 2층으로-_- 올라가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뭔가 눈가리고 아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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