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였던 메모들

Posted 2013. 9. 17. 20:25, Filed under: 카테고리 없음
1.
“넓이는 깊이를 이길 수 없다.” TV였던가 책이었던가. 처음 이 말을 접했을 때 뭔가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항상 넓이만을 추구했지, 한 번도 깊이를 추구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최대한 많은 걸 접하고, 다양한 걸 할 줄 알길 바랬지만 그 중 하나에라도 얽매이길 바래본 적이 없다
뭔가를 접해 봤다는, 할 줄 안다는 그 느낌을 좋아하지만, 진심으로 잘하기를 (professional해지기를) 바래본 적이 없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 나는 (보통 사람들이 잘 모를 법한) 상당히 매니악한 분야도 얄팍하게나마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어떤 (레어한) 주제가 나올 때, 얄팍하게나마 한두 마디 더 얹는 것만으로 급 관심을 얻을 때가 있으니까 (‘동지’로 보는 건가?)
하지만, 정작 진짜 매니아들과 만나면 (그쪽 기대와는 달리..) 대화가 겉핥기 이상으로 진행되기가 어렵다
100% 문외한인 사람들보다 한 마디라도 더 얹을 순 있겠지만. 결국 깊이가, 열정이 없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사실 (내가 봐도) 넓이는 그냥 자기만족에 가깝다. 살아가는 데는 (일반적으로) 넓이보다 깊이가 훨씬 도움되는 거 같다
깊이는 넓이와 달리, 확실한 자기만의 집중된 힘이 있다. ‘넓이’ 자체도 때때로 힘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초점이 퍼지고 날카로움이 없다
넓이에 집중하는 건, 세부적으로는 뭘 해도 깊이보다 뒤쳐질 수밖에 없다. 큰 그림에서는 뭔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잘 모르겠다
다재다능한 융합형 인재니 뭐니 떠들어대지만, 일반적인 경우라기보다 결국 특수한 케이스-필요에 의한 거 같다. 적어도 (아직) 메인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뭔가 하나에 몰빵하고 헌신하는 거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드는 건, 성공이나 성취 지향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다
그걸 알면서도 계속 매사에 이러고 있는 건,-_ 그냥 이렇게 생겨먹은 거지.
아마 어려서부터 꾸준히 접해 온 精神一到何事不成식 의지만능형 사고, 뭐든지 할 수 있고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식의 강박서사와 관련있지 싶다
뭐든지 될 수 있다는 건 바꿔서 말하면 이도저도 안될 수도 있다는 거다. 좀더 깊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2.
최근에 또다른 extraordinary. abnormal 블로그들을 새롭게 발견하다 (보통 이런 건 잉여로울 때만 가능한 건데...)
인터넷 구석구석 묻힌. 기존 통념과 어긋나는 은밀한 내면의 이야기를 보는 걸 즐긴다. 현재까지 블로그는 이런 걸 접하기에 최적화된 도구다
(블로그가 그 노출성, 개방성과 별개로 개인 일기장의 연장이라는 식의 패러다임에 발을 걸치고 있는 한...)
최대한 판단을 배제한 상태에서 보려고 한다. 애초에 판단 자체가 의미가 없다. 어떤 (일반적 기준으로) 미친 소리가 나오든 간에 오히려 반가울 따름이다

나랑 전혀 다른 사고구조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겉으로는 절대 대놓고 얘기 안 할 속 이야기를 엿보는 게 즐겁다.
그리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통념에서 벗어난. 그 사람들 제각각은 또 얼마나 서로 이질적인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나 있을지. 몹시 흥미롭다
“광기란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는 것이며, 그것을 어느 정도로 내면화하고 있는지. 제어하는지. 표출하는지의 차이일 뿐이다.”

이러다 보니, 점점 내면의 기준이 옅어지고. (뭐 애초부터 별로 없었지만;;) 매사에 ‘그럴 수도 있지’ 식의 사고가 강해지는 게 느껴진다
좋게 말하면 오픈마인드고, 나쁘게 말하면 줏대가 없다. 대부분의 ‘-주의’들에 회의적이 된 듯하다. 다 될 대로 되라지
...애초에 매사에 까다롭게 살아온 부류의 사람이라면 이런 식의 태도가 약간은 도움될지도 모르겠지만.
나처럼 오랫동안 내 욕망에 무심하게. 충실치 못하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오히려 이런 게 더더욱 독이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3.
영화「설국열차」보고 오다. 볼거리도 많고 중간에 질질 끄는 것도 없이 재미있게 잘 만든 영화였다
대부분의 메타포야 너무 뻔해서 내가 굳이 더 말할 것도 없을 것 같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많이 다뤘으니...)
내가 가볍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영화가 성립하게 만드는 대전제 중 하나인 인구압 문제에 대해서다

나는 예전부터 인구 문제에 쭉 관심이 있었다 (그닥 지대한 관심은 아니었지만,-_ )
가볍게는 인구 고령화 관련 이슈부터. 더 나아가면 인구 성장이 멈추는 건 재앙이며 경제가 완전히 붕괴될 거라는 식의 극단적인 믿음까지.
내가 볼 때는 그저 사람이 많아서 일어날 뿐인-_ 수많은 문제들을, 굳이 회피하며 다른 쪽으로만 해법을 찾으려는 듯한 움직임들.
(맬서스 이론 등에 대해.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고 인구학 수업까지 찾아들었지만. 애초에 개론수준 수업에서 이런 데까지 들어갈 리가 없지..-_ )

‘인구과잉으로 인한 문제들은, 그로 인한 경제성장(및 과학발전)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낙관적인 (그닥 와닿지는 않는) 전망들.
맬서스 이론이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한 식량생산 폭증을 염두에 두지 못해서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 기본 인식조차 부정해버리는 태도들.
(심지어 어떤 게임에서는 맬서스주의자는 사전 설명도 없이. 그냥 지독한 악의 세력으로 나온다.-_ 이거 뭐야)
http://delliny.tistory.com/34 이 뻘글도 사실 그런 인구과잉에 대한 낙관적 전망들을 비아냥대고 싶었던 게 없잖아 있고.

뭐. 어쩌다 보니 내 주위에서만. 인구 증가를 (거진) 신성시하고. 인구 과잉 문제를 회피하려는 태도가 자주 보였던 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인구압에 대한 작품들이 자꾸 나오는 게 왠지 반갑다. 진격의 거인. 설국열차 등. 인구과잉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없이는 성립이 안 되는 작품들.
개인적으로는 인류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인구가 지금보다도 훨씬 더 줄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입장이다

4.
소위 좌파적 당위...들이 내 도덕적 엄숙주의에 일조한 바가 크기에, 지금으로선 그 쪽 사고방식은 거의 혐오하는 수준에 가깝다
사실, 좌파니 우파니 하는 범주 자체가 역겹게 느껴지는 게, 지금의 나는 어떤 형태의 당위와 연결된다는 것 자체에 혐오감을 느끼는 것 같다
but, 그렇다고 진보적 가치판단의 틀을 아주 놓지는 않은 것 같다 (굳이 억지로 놓고 싶은 생각이 없다)
당위, 도덕, 정치적 올바름 등의 절대적 권위를 믿지 않지만, 가치판단에 있어서는 소위 ‘진보적 범주’에 속하는 가치들이 자연스럽게 우위에 놓인다

과거 스스로를 진보, 좌파로 포지셔닝하길 ‘당연히 여기던’ 나에 비하면, 거의 과거와의 정체성의 단절이라 해도 좋을 정도인 것 같다
아직 내 주위에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내게 이런 부류의 열정을 드러낼 때마다 불편하다
어찌 보면, 단지 인터넷의 폐해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의 주류 의견을 따라 이런 사고를 갖게 된 가까운 사례를 몇 알고 있다
최근에는 일베 쪽이 좀 강세인 것 같으니 오히려 그쪽을 경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흐름이 좌파 도덕주의자보다 훨씬 맘에 안 든다

뭔가 예전부터 믿어오던 사고방식, 체계 자체가 흔들릴 때,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거 같다
기존의 정체성을 부여잡든지, 정체성의 혼란과 함께 멘붕, 방황하든지, 아니면 그냥 새로운 정체성을 맹신하고 갈아타든지. 기타 등등...
기존의 틀을 너무 한 번에 깨려고 드는 것도, 지나친 공백 상태를 만드는 것도, 공백 상태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정체성을 허겁지겁 받아들이는 것도.
뭐든지 차근차근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어떤 경우에서든 나는 차라리 우유부단할지언정 극단을 택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다

5.
이글루스가 스팸블로그를 대놓고 방조하는 듯한 느낌이다. 최근 들어 블로그의 스팸화가 더욱 심해졌다
즐겨찾기한 블로그가 어느 순간부터 스팸 블로그로 변해 있는 걸 보는 건 정말 씁쓸하다. 제각기 애착이 있기에 rss 피드를 지우기도 주저된다
이미 문 닫고 사라졌던 블로그가, 주소가 그대로 살아남아; 좀비 블로그로 되살아나는 경우도 자주 보인다.-_ (좀비화,-_ )
종종 꽤나 유니크해 보이는 주소가 좀비화되는 경우가 있는데... 혹시라도 당사자가 알게 된다면 꽤나 어처구니없고 열받을 거 같다

...이런저런 연유로 스팸블로그 글 패턴을 자주 보게 되는데, 과거에 비해서 뭔가 지능적으로 바뀌고 있다는-_ 느낌을 받았다
과거처럼 단순히 대놓고 스팸 수준이 아니라, 확실히 실제 개인 블로그 같은 첫인상을 주려고 애쓰는 듯한 모습이다
실제 광고글들도 예전처럼 덕지덕지가 아니라 깔끔하고 심플하게 바뀐 경우가 많으며 (실제 블로그 포스팅처럼)
광고 관련 건수가 전혀 없어 보이는, 초딩수준 어법의 잡담(유머, 고민상담?;; 등등) 같은 게 광고글 사이사이 끼어 있는 게 보인다,-_

결국 구글검색이나 이것저것이 말해주듯이, (하위검색결과로 내려갈수록...) 가면 갈수록 스팸블로그의 입지는 점점 커져만 갈 거다
게다가 블로그 자체는 트위터나 기타 등등에 밀려 점점 수그러드는 분위기다. 반면 스팸블로그는 점점 지능화되면서 수도 늘어나고 있으니 말 다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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