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직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던, 거의 10년도 더 된 즈음의 일이다 - (아마 내가 중학생 때였나 - )
언젠가, 할아버지가 문득 집 너머 한구석에 철망 우리를 만들고 지푸라기를 깔고, 거기에 토끼 한 쌍을 들여와 기르기 시작했다 -
알다시피, 토끼는 번식력이 무척 뛰어난 동물이라-_ 개체수는 순식간에 불어나기 시작했고,
(꼬마) 사촌 동생들이 종종 시골에 놀러 올 때마다, 토끼가 귀엽다며 “꺅꺅 - ”거리며 쪼르르 우리로 몰려가서 구경하곤 했었지만 -
사실 처음부터 그 (귀여운) 토끼들은, 할아버지의 농가 ‘다각화’ 프로젝트의 일환인 ‘식용 토끼 양성 계획’에 불과했을 따름이었다는 것...-_
(할아버지는 6.25 시대 분이라 - 토끼 외에도 바구니에 뱀이 우글거린다든지 (...) 망태에 주먹만한 개구리가 가득하다든지 등등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 )
(독사가 나타나도, 외려 반가워하며 나무작대기를 꺾어와 무조건 망태에 잡아넣고 보는 (술담금용...-_ ) 시골 출신 인물들의 틱월한 사냥술 - )

p.s. 어렸을 때부터, 뭣도 모르고 뱀탕 (...) 국물을 주는 대로 넙죽넙죽 맛나게 받아먹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_

2.
손자들 중 맏이인 형과, 그 바로 아랫손인 나는 - 종종 할아버지의 토끼 도살 장면에 불려나가, 옆에서 보조 역할을 맡곤 했다
먼저 할아버지가 우리에서 꺼낸 토끼 뒤통수를 식칼 손잡이로 호되게 후려쳐 즉사시키는 것도 종종 봤고 -
우리가 피 빠진 토끼 시체를 옆에서 붙들고 있으면, 할아버지가 잘 드는 식칼로 토끼 가죽을 능숙하게 슥슥 벗겨내기 시작했다
뭔가 시체의 (불쾌하게) 물컹한 느낌과 핏줄들 및, 지방질을 쓱싹쓱싹 썰어내며 가죽을 벗겨내자 드러나는 토실토실한(...) 근육과 살코기들 -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금방이라도 툭 터질 듯 땡그란 눈알에 - 칼날이 스쳐가도 안 터지고, 탄력있게 탱글거린다는 사실이었다
가죽을 벗겨내고 이리저리 손질하고 나면, 유독 왜소하고 빈약해 보이는 (측은해 보이는) 토끼의 날것의 몸통 - (이미 날고기 - )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토끼의 살갖을 붙들고 있자면, 이게 ‘따스한 토끼의 피부’인지 ‘생고기‘인지 - 감각의 혼란이 일어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 )

p.s. 이 외에도, 종종 잡아온 산꿩이라든지 닭이라든지를 손질하는 걸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_ ) 옆에서 도울 일들이 종종 있었다 -

3.
할아버지의 야심찬 프로젝트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친척들은 토끼고기에 그리 기꺼이 손을 대진 않았다 -
(특히나 친척동생들의 경우 더욱 그랬다 - “불쌍한 우리 토순이...ㅠ”) 식량으로서의 가치는 갈수록 떨어지고, 기껏해야 어른들 술안주 정도로 쓰일 따름 -
(나야 비위가 강하기에 종종 먹곤 했지만 - 딱 닭가슴살 같은 육질에, 퍽퍽한 맛 - 굳이 찾아먹을 만한 메리트가 느껴지지 않았다 - )
(특히나 나보다 예민한 편인 (도살에도 참여했던) 우리 형의 경우에는, 토끼 고기가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아예 손을 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 )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나름대로 정성껏 키운 토끼고기를 잘 안 먹어 준다며 내심 서운해하시는 눈치셨고,
명절 때 다들 모였다가 돌아갈 때마다, 집집마다 갓 도살한 토끼고기를 성의껏 싸주려 하셨지만 - 대부분 정중히 거절하곤 했다...-_
(하도 싸주시려 하시길래, 우리 집도 몇 번 싸온 적이 있긴 한데 - 토끼고기가 다른 육류(돼지, 닭, 소 등등 - )에 비해 딱히 메리트가 있는 것 같진 않더라 - )

4.
어느 날, 키우던 토끼 한 마리가 - 도살하려고 꺼내는 도중에, 순식간에 뛰쳐나가 탈출한 적이 있었다
위에 말했다시피 토끼의 번식력은 엄청나기에 - 잘못 나가서 야생에서 번식했다가는 의외의 심각한 골칫거리(생태계 교란 - )가 될 수도 있기에,
결국 온 가족(할아버지와 아버지 및 삼촌들 - )이 총 출동하여, 각자 몽둥이를 하나씩 꼬나들고 토끼몰이에 나서게 되었다
(나와 형은 거기에 끼어들진 못하고, 여럿이서 진형을 구축하며 토끼를 구석으로 서서히 몰아 가는 장면을 그저 뒤에서 잠자코 지켜보다 - )
점점 포위망은 좁혀지고, 결국 구석의 수풀에 숨어 있다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후다닥 뛰쳐나온 토끼 -
어려서부터 노련한 사냥꾼이기도 한 아버지는, 순식간에 몽둥이를 휘둘러, 뛰쳐나온 토끼의 정수리를 정확히 가격하여 한 방에 때려눕히다 -
(포획이 좀 더 온건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거라고 (순진하게) 믿었던 나는 - 토끼의 죽음으로 이어진 가혹한 몽둥이질의 폭력에, 작은 혼란을 느꼈었다 - )

5.
겨울철이면, 개울에서 돌멩이를 들춰 가며 겨울잠 자는 (통통한) 개구리를 잡아다가 구워 먹는 게 소소한 간식거리였다 -
(확실히 개구리 뒷다리살은 (근육이라) 쫄깃쫄깃한 게, 여느 육류에 비해서도 그리 꿀릴 게 없다 - )
보통은 바닥에 호되게 내리쳐 기절시킨 뒤 - 은박지로 둘둘 말아, 숯불에 묻어 놓고 적당히 구워지길 기다리긴 하지만 -
언젠가 한 번, 호기심에 생불 위에 석쇠로 (기절시킨) 개구리들을 구워본 적이 있다 -
...개구리의 피부가 점점 빨갛게 달아오르며, 팔다리가 점점 (오징어 굽듯 - ) 오그라들고, 마치 ‘미라화’되듯이 팔다리가 서서히 말라 가는 과정 -
일종의 ‘죽음’과 ‘노화’의 과정을 지켜보는 기분이랄까? (신기해서 디카로 동영상도 찍어놨는데 - 엄마가 징그럽다고 지워 버렸다,-_ )
어쨌든 개구리(특히 뒷다리 - )는 식용으로 그리 나쁘지 않다 (맛있다 - ) 국민의 인식이 바뀐다면, 황소개구리의 식용화도 다시 꾀해볼 여지가 있을지도?

p.s. 사람들이 ‘식품’에 대한 (은연중에 가진) 편견과 선입관을 버린다면, 현재 제3세계의 식량난은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본다 -

6.
겨울이 가고 봄이 올 즈음이면, 한창 개울에서는 가재잡이가 시작될 무렵이다 -
초청정 1급수를 자랑하는 우리 고향 시골 마을에는 (시냇물을 생수로 바로 사용한다 - ) 언제나 가재가 떼거지로 서식하곤 했다 (요즘은?)
개울에서 돌맹이 뒤집어 가며 가재 포획하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고, (종종 도룡뇽도 보이는데, 재빨라서 잡기가 쉽지 않다 - )
잡은 가재는, 바구니에 담아 집에 가져가서, 따로 양념 같은 거 안 하고, 그냥 기름에 달달 볶아서 소금 뿌려 먹으면 -
사실 맛은 그리 확 와닿지는 않지만-_ 적어도 그 고소한 냄새만큼은 그야말로 끝내 준다 (국에 한두마리씩 넣어 먹어도, 특유의 고소한 향이 확 사는 듯?)
(알이 잔뜩 달린 상태의 암컷을 포획한 경우 - 알알이 톡톡 터지는 재미가 쏠쏠하다 - 아무래도 수컷보다 암컷이 인기가 많다 - )
고향에는 여름 가재는 못 먹는다는 (흐물흐물 - ) 속설이 있어서, 가재잡이는 초봄 - 초여름까지가 제철이고, 이후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7.
여름은 바야흐로 낚시의 계절이다 -
유능한 (덫) 사냥꾼이자 약초채집꾼이자 낚시의 달인인 (...) 아버지는 각종 낚시도구를 들고 이리저리 싸돌아다니시곤 하고 -
나나 친척들 같은 꼬맹이들의 경우, 장롱에서 바늘이랑 실 갖다가 수제 낚싯대를 만들어, 개울에서 돌 뒤져 가며 벌레 잡아다가 미끼로 삼아서 -
집 아랫쪽에 흐르는 하천 다리 가장자리에 엎드려, 다리 밑으로 하염없이 낚싯대를 드리운 채 오후를 보내곤 했었다
사실 고기가 그리 멍청한 것도 아니고-_ 꼬맹이가 하루 죙일 잡고 있어 봐야 기껏 서너 마리 잡할 따름인데,
노련한 아버지는, 된장미끼통(...)의 이용으로, 같은 자리에서 하룻밤만에 고기 수십 마리를 통에 가득 (바글바글...) 담아 오시곤 하셨다-_
손가락만한 송사리들 및 기타 잡고기들로 끓이는 매콤한 수제비매운탕의 맛 - (혹은 숯불로 구워서 조심스럽게 발라 먹거나 - )

p.s. 열매나 버섯, 식물 채집은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_ 굳이 안 집어넣었다 (그리 딱히 인상깊은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_ )
p.s.2. 베어 그릴스 Man vs. Wild를 꼭 한 번 체험해보고 싶다-_ (스스로를 위험으로 몰아넣고 싶다는 불가해한 충동?) 오지여행 한 번 꼭 가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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