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한나 - 융 심리학과 내면 여행 (한국심층심리연구소) 3장 - 후반기 삶에서의 퇴행 혹은 갱신 中 발췌.


p.80-

 ...그들을 훌륭하게, 아니면 어쨌든 간에 그럭저럭 지탱해준 세계관이 인생의 전반기를 지나면서 약해지게 될 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흥미나 즐거움이 더 이상 충족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묻기 시작한다.

 이런 위기는 수많은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며, 내가 설명하고 싶은 사례는 바로 이런 것 중 하나다.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집단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58세의 이 남자는 새롭고도 보다 폭넓은 세계관 및 매우 개인적인 측면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의 성격과 환경 때문에 삶이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그에게 독특한 문제였다. 모든 개개인이 기본적으로 다른 모든 사람과 비슷한 손을 가지고 있지만 딱 그 사람만이 그 지문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어떤 면에서 모든 사람의 운명은 기본적으로 비슷하지만 전적으로 다르고 굉장히 독특한 것이다.


p.85-

 우리의 사례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이런 알려져 있지 않은 측면을 의식하기 위해, 필요한 거의 초인적인 능력을 목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이 58세의 남자는 죽음이 엄습했을 때 이 문제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신체적인 면에서 그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이었다. 그는 원인 모르는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었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거기에는 어떤 징후가 있었다. 사실상 뒤돌아보면 무의식이 그에게 퇴행 혹은 갱신 중에서 선택의 기회를 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일이 일어나기 전에 깨닫기는 어려워도 일이 일어난 후에 깨닫기는 쉬운 법이다.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했던 것이 아주 분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자료를 사용해도 좋은지 그에게 허락을 구하는 것이 물론 불가능하지만 나는 그가 아주 특이할 정도로 인간을 사랑했기에 누가 그의 경험으로부터 유용한 것을 배울 수 있다면 기꺼이 기뻐하며 허락했을 것이라고 거의 확신한다.


p.86-

 그는 아들들만 있는 대가족 중에서 막내였으며 겨우 세살 때 그의 부모가 갈라섰다. 그의 형들은 아버지에게 갔지만 조지는 어머니에게 위안이 되려고-더 정확히 말하면 발바리를 남겨두듯이-어머니에게 남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조지 때문에 피곤해질 때마다 그녀는 그를 그의 아버지에게 보냈다. 거기서 그는 그의 형들에게, 특히 그들 중 하나에게 몹시 괴롭힘을 당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전혀 몰랐다고 나에게 말했다.

 스포츠... 남자다운 소년... 그는 그런 모습을 그의 어머니에게 비밀로 했다. ...그가 이룩한 것에 대한 즐거움이나 자랑스러움보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거역한 것에 훨씬 더 짜증을 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그들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어머니는 살면서 여러 남자친구들이 늘 있었다. 조지-당연히 그녀의 아름다운 어머니에게 많이 매여 있던-는 질투로 인한 번민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그녀가 다시 결혼을 할까봐 두려워했다. 그녀는 그가 18살이 되었을 때 다시 결혼을 했다.

 ...

 몇 년 후에, 아직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동안에 그는 굉장히 아름다운 여자를 만났다. 그는 그녀에게 깊이 끌렸다. 다른 남자들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그에게 강력하게 충고했지만-나중에야 그가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지만- 그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가 명백한 정신이상으로 요양원에 입양하게 되었을 때... 간단히 말하자면 결국 그는 그녀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p.89-

 50대 중반... 그 때 그의 하나님에 대한 어린애 같은 믿음-결국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어 주실 사랑의 하나님이라는-이 약해지는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분이 나같이 착한 녀석을 그런 식으로 다룬다면 하나님은 과연 정말 선하고 공정한 분이실까?” 아니면, “나는 정말 내가 설교하는 모든 것을 실제로 믿는가?” 처음에 그는 그런 생각을 단호하게 억압했다.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틀림없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확신했으며 선한 것은 모두 하나님께 돌리고 악한 것은 모두 자신에게 돌리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가 융 박사의 “욥에의 응답”을 우연히 접하게 된 것은 이런 갈등의 가운데 있을 때였다.

 동시에 그는 그의 일에 곤경을 겪게 되었다. 교인들 상담... 그가 역전이의 위험을 피하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는 그에게 가장 힘든 사례들 중 하나였던, 그가 자신보다 30살이나 어렸던 매우 아름다운 처녀에게 매우 끌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마인 그녀는 삶 그 자체의 에너지를 나타냈기 때문에 그에게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그는 그 의미를 오해하고 그녀를 그가 삶에서 지나쳤던 모든 것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그녀에 대한 생각은 그 자신을 아직 그의 외적인 삶의 모든 문제들과 만날 수 있고, 또 그런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예전과 같은 젊은이로 간주하려는 유혹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조지의 주된 문제였다고 볼 수 있다. 비록 그가 58세였다는 것을 반복해서 뇌까렸지만 그는 자신이 인생의 전반기가 아닌 후반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실제로 깨닫지 못했다. 이것은 매우 흔히 있을 수 있는 태도이지만 사실 당혹스러운 일이다.


p.94-

 그가 젊은 시절에 놓쳤던 모든 것을 만회하기 위해 그가 인식했던 것보다 그의 역전이에서 더 큰 역할을 하려고 했었다는 것...


p.96-

 개인적 그림자... 조지의 분석의 첫 단계가 끝났다는 것... 그러나 보다 심각한 그의 문제가 결코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비록 그가 그 자신의 어두운 면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발견했지만 같은 것이 하나님에게 적용될 수는 없었다. 즉 하나님에게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전혀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를 깊은 곳으로 곧바로 내려가게 하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꿈을 꾸었다.


 “매우 큰 배가 얼마 전에 깊은 바다로 가라앉았으며 꿈꾼 사람은 그 배를 탐색하기 위해 잠수부처럼 내려가서 그가 발견할 수도 있는 어떤 귀중한 것을 가져오는 임무를 감당하게 되었다. 그는 또한 그 배가 다시 떠오를 수 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그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있었지만 -그의 임무를 마쳤을 때-그는 산소가 바닥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소는 일종의 본관本管에 들어 있었다. 그의 산소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산소도 거기 들어 있었다. 그가 수면에 도달하기까지는 산소가 충분했다. 하지만 그가 산소를 모두 소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다른 사람들이 아직 그 배에 있을 수도 있고 산소가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즉 그는 특히 그의 아이와 이 소녀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다가 그 시점에서 잠을 깼다.”


 큰 배를 그는 바다, 즉 무의식을 항해하던 이전에 가지고 있던 방식으로 연상했다. 그는 소년시절에 바닷가에 살았고 배를 많이 탔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 배가 젊은 시절 그를 안전하고 행복하게 데려다 주었으나 얼마 전에 가라앉은 교회라는 배일 수 있는 가능성을 흔쾌히 고려해 보았다. ...그는 그 배가 사람들을 위해 떠 있었던 것처럼 아직 계속 떠 있을지, 아니면 그들과 함께 죽을 것인지, 말하자면 그들이 산소를 공급받기보다는 그것을 전적으로 포기할지 상당히 불확실했다. 이 꿈에 드러나 있는 새로운 생각, 그리고 그에게 매우 유쾌하지 않았던 것은 그것을 그저 바다 밑에 남겨둘 수만은 없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가 엄청난 개인적인 모험을 무릅쓰고 그것을 탐색하라는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이 다시 뜨게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가 설교하고 믿었던 교리에 관련된 의심에 직면했던 거의 모든 신학자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하기를 바란다. 즉 손실을 줄이고 교회를 완전히 떠나든지, 아니면 그의 의심을 억압하고 목회를 계속하든지 말이다. 전반적인 여파를 불러오는 이런 문제를 기꺼이 숙고해서 해결하려고 하는 사제나 성직자는 매우 드물다. 이 꿈은 그 어떤 외적인 형식으로든 그 문제를 받아들이는 선택을 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신학자의 꿈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실질적인 갱신으로 이끌어 주는 큰 보상이 따를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퇴행에 이를 수도 있다. 그들이 퇴행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을 때는 정신적인 죽음이나 육체적인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p.98-

 우리는 같은 생각을 다음 꿈에서 발견한다.


 “조지는 먼 도시로 이사를 하고 있었으며 그의 책들을 처리하려고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가지고 있던 친구에게 주든지, 아니면 창고에 들여놓든지, 하여간 책을 포기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절망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튼튼하고 무거운 책장이 갑자기 접을 수 있게 되었고 그가 옮길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워졌다.”


 600여권이나 되는 그의 책은 주로 신학 책이었으며 그에게는 가치가 없어진 것들이었다. 그는 실제로 그 책들을 꿈에 나온 친구에게 빌려 주었었다. 분명히 이 꿈은 교회라는 배 안에 남아있던 가치에 대한 생각을 다루고 있다. 그 책들을 정말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그 문제를 솔직하게 따져본다면 기적이 일어나고 무겁고 다루기 힘든 것이 가벼워지고 문제가 갑자기 풀리게 된다. 다만 이전의 신앙을 저버리는 대신에, 그는 그것을 명확하게 숙고해서 해결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 새로운 기초, 즉 책꽂이를 준비해야 한다. 그 때 그는 다루기 힘든 모든 것들의 진수를 완전히 새로운 태도와 관점을 상징하는, 멀리 있는 새 도시로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p.102-

 이 시점에서 그는 그가 꾸었던 모든 꿈 중에서 가장 인상을 준 꿈을 꾸었다.


 “그는 친척의 파티에서 어떤 여자를 만났다. 그는 즉시 그녀가 자신이 늘 찾고 있었지만 바깥세상에서 결코 만날 수 없던 바로 그 여자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아름답고 육체적인 매력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그것 이상이었다. 그는 즉시 그녀가 관계의 진수이고 온전히 자족적이며 그에게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충분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디를 가든 그녀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으며, 그가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너무 제약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 완전히 자유롭고 자연스러웠다. 그들은 시내 상점으로 함께 갔으며 모든 순간이 즐거웠다.”

 ...

 원형적인 주제인 죽음은 우리를 죽음-측면을 지닌 아니마에게로, 독일어로는 죽음-결혼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데려간다.

 “무의식적인 정신이 종종 죽음을 대극의 결합으로, 즉 내적인 전체가 되는 것으로 묘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

 그가 항상 찾고 있었으나 외적인 삶에서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여성... 조지의 에로스는 아직 그의 모성 콤플렉스에 포함되어 있었다.

 ...

 죽음-결혼의 측면과 관련하여, 잠깐 동안 나는 아니마가 조지를 피안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아니마에 대해 입에 발린 말을 상당히 많이 했다. 물론 그녀가 정말 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실재였다는 것을 믿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죽음-결혼의 주제에 대해 더 많이 숙고해 보았어야만 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사건이 일어난 뒤 깨닫기는 쉽다.) 나는 아니마가 그를 시내로 데리고 갔다는 사실 때문에 안심했던 것 같고, 또 그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이것을 그녀가 그를 내적인 현실 그리고 어쩌면 외적인 현실에서도 새롭고 더 의미 있는 단계로 이끌려고 하고 있었다는 의미로 보기를 바랐던 것 같다. ...요컨대 이때에 그의 꿈이 실제적인 죽음에 대해 언급할 수도 있다는 나의 순간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직접적인 위험이 있다고 실제로 생각하지 않았다.


p.111-

 이제 우리는 조지가 마지막 꾼 꿈을 다룰 차례가 되었다. 이것은 그가 운명적인 휴가를 떠나기 전에 꾼 것이다.


 “한 남자-꿈을 꾸는 사람 혹은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처형될 예정이었고 꿈을 꾸는 사람은 기꺼이 사형 집행인이 되겠다고 나섰다. 그는 그 사람이 무고하다고 믿었기에 그 남자의 생명을 구해주려는 희망으로 그렇게 했다. 그는 손에 날카로운 사냥칼을 들고 있었고 마치 그를 베어 죽이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왜냐하면 그가 그 피해자를 살려주려고 했던 것이 발각되면 그 자신이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허리뼈를 따라 벤 다음에 그를 엎어놓았다. 그가 이렇게 하자 뼈들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으므로 그는 너무 깊이 벤 것은 아닌가 걱정했다. 그는 그가 그 아가씨를 성적으로 전혀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강렬한 느낌-비록 그녀가 꿈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진 않았지만-이 들어 잠에서 깨어났다.”


 이 꿈에 대한 다음과 같은 그의 연상이 매우 중요하다. 가장 친한 친구는 그가 학생이었을 때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가씨와 약혼을 했었던 사람이다. 그는 그 여자와 결혼하면 바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약혼을 파기했고,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기 위해 몇 달 동안 유럽에 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녀를 다시 만났고, 명백한 현실과 이치를 무시하고 그녀와 결혼했다. 그 결혼은 비참할 정도로 불행했다. 결국 아내가 술에 취해 침대에 불을 질러서 불에 타 죽고 말았다.

 그 칼은 조지가 결혼할 당시 매우 충실한 친구가 준, 그가 매우 아끼는 물건이었다. 그것은 매우 날카로워서 그것으로 면도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주로 사냥과 낚시를 하러 가서 잡은 동물이나 물고기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때 사용했다.

 가장 친한 친구에 대한 연상을 보면-또한 잠을 깨면서 그 아가씨에 대해 짜증이 난 것을 보면- 그 꿈은 마치 그가 이따금씩 아직 젊었을 때처럼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그 자신 안에 있는 학생을 죽일 것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그는 심지어 그가 아직 한창 젊었을 때 했던 첫 번째 결혼의 실수를 어쩌면 되풀이하게 될 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몇 번이고 망설였다. 마치 그의 친구가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 그것이 치명적인 실수였음을 알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 칼이 부상당한 사슴에게 여러 번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던 것이라는 사실은 그가 이제 분명히 이전의 실수를 되풀이하기를 바라는 그 자신 안에 있는 너무나도 젊은 그 남자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기 위한 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그가 이런 어리석음을 끝장내지 않는다면 그는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친구의 비극적인 결혼은 젊은이 특유의 해결책으로는 다만 재앙이 예상될 수밖에 없다는 분명한 경고였던 것이다. 그러나 꿈에서 그는 그것에 대해 매우 미온적이었다. 다시 말해 분명히 그는 실제로 그 젊은이의 생명을 구해주기를 원한다.


 조지의 꿈이 단지 개인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 그 어떤 종교도 기독교보다 고난과 희생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은 없다.

 ...그는 다만 그 자신의 너무나 어린 부분을 희생하도록 요구되었다. 더욱이 그가 칼을 사냥할 동안 동물들, 특히 사슴을 죽이는 데 사용되는 것으로 연상했기 때문에 우리는 죽임을 당해야 하는 사람은 일종의 동물이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그의 태도는 계속 너무 어린, 무의식적인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것이 계속해서 희생되지 않으면 육체적인 리비도는 늘 오래된 강바닥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그런 상태를 다시 발견하게 될 것이다.

 희생되어야 하는 친구는 왜곡된 이미지(이미 희망이 없는 술주정뱅이였던 아가씨)와 사랑에 빠져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조지 자신의 이미지가 왜곡되어 있었다는 것, 즉 그것이 본능적인 층, 말하자면 도道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그의 모성 콤플렉스는 그가 어릴 적 태도를 완강하게 고수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런 관점에서 조지의 운명이 조지를 본성에 반反하여 투사된 아니마 상황으로 인도했던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그가 의식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아직 그는 너무나 어린 그의 관점과 마지막 기회에 살아내지 못한 모든 삶을 만회하기 위한 그의 순진한 소원을 희생하는 것이 필요했던 그의 내적인 발달 단계에 놓여 있었다.

 우리는 이 꿈 또한 실지로 종교에 대한 새로운 태도, 가라앉은 배와 책에 대한 꿈의 주제와 동일한 주제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지가 늘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했던 바로 그것... 즉 후자가 조지 안에 있는 “너무 어린” 남자의 소원에 아주 반대되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조지는 그 꿈에서 젊은이를 죽이라는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 위험할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대해 매우 양면적이다.

 “불일치와 마음의 분열... 그는 원하기도 하고 또 원하지 않기도 한다. 이런 갈등은 영웅이 희생하는 자이기도 하고 희생되는 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 남자를 처형하는 것이 불복할 수 없는 높은 사람의 명령이었다는 것을 꿈에서 인식했지만 그가 그 남자의 생명을 구하고 싶어한다는 사실...

 그가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는 데 실패하면 그의 나머지 생의 전체 의미와 가치, 요컨대 그의 개성화 과정의 기회를 놓치게 될 것 같았다는 것을 내가 그에게 경고했지만 그는 그 당시 이 꿈이 전해 준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만약 그가 그 남자를 구해주었다면 그 자신의 생명을 잃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이 꿈을 꾸고 정확하게 한 달 뒤에 죽었다.


 그의 마지막 두 주 동안, 그는 자신에게 거의 어떤 재앙이 일어날 것처럼 여러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이따금씩 부정적인 느낌이 불쑥불쑥 일어났다”고 털어놓기도 했던 것 같다. ...조지의 운이 다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의 개인적 그림자에 대한 용감한 통찰은 그가 이 세상에서 갱신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우리는 다만 무의식이 그의 꿈에서 이 주제에 관해 낯설고 모호한 언어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를 시내에 있는 백화점으로 데려가는 아름다운 여자는 그를 돌이킬 수 없는 지하 세계에 있는 죽음-결혼으로 데려가는 죽음 측면을 지닌 아니마일 수 있다. 아니면, 그녀는 새로운 가치로 풍부한 감정과 에로스 영역으로 나 있는 문을 열어주는, 지금까지 그가 경험하지 못했던 삶으로 그를 인도하는 살아 있는 아니마일 수도 있다. 다만 마지막 꿈은 아주 분명하다. 즉 그는 퇴행적인, 어린 친구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 이것은 어린애 같은 욕구를 완전히 희생하고 그의 개인적인 삶의 의미를 찾는 새로운 어른의 태도를 의미한다.

 이 꿈은 실제로 인생의 전반기에서 후반기로의 변화의 진수를 담고 있다.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사이에는 그 어떤 규칙도 없다. 우리는 무엇이 포기되어야 하고 무엇이 유지되어야 하는지 미리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정반대의 희생이 조지에게 요구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거기에는 다만 다음과 같은 하나의 규칙이 있는 것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는 제멋대로 처신하는 자아의 어린애 같은 어리석음을 받아줄 여유가 없어질 수 있다. 우리는 다만 “내가 원하는” 것, “내가 가져야 하는” 것 등에 대해 더 이상 걱정할 여유가 없다. 그런 방식은 당연히 퇴행으로 이어지게 된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그는 모든 비참함은 자신의 개인적인 방식을 원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거듭 주장하였다. ...조지가 그의 마지막 꿈에서 너무나 어린 친구를 죽이라고 명령을 받은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어린 자아의 일방적이고 근시안적인 소망을 희생하기 전까지, 우리 자신의 이런 부분을 죽이기 전까지, 우리는 결코 자기Self-그것이 수세기를 보낸 것처럼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의 일부인-를 경험하거나 자기와 같이 일할 수 없다.

 융이 자기Self-인식은 자아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미지의 자기의 실현을 말하는 것이라고...

 내가 살펴본 대로, 이것은 조지가 가라앉은 배로부터 구해내야 했던 종교적 태도의 핵심이었다. 젊었을 때에 우리를 안전하게 데려다주던 집단적, 종교적 운송수단이 가라앉아서 바다 밑에 남아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 안에 들어있던 것의 진수를 잃어버릴 수가 없다. 이것은 확실히 “미지의 것”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노년에 새로워질 수 있는 필수조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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