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의 반란

Posted 2011. 7. 13. 00:03, Filed under: 카테고리 없음
예예-전 블로그에 썼던 글 백업용이다 (확실히 이건 그냥 지워버리기엔 뭔가 아까운 기억이다...-_ )

1.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때까지 살던 집에는 개미가 은근히 많았다
(아버지가 식물을 워낙 좋아하시는지라, 화분도 많고 이래저래 집안에 식물들을 많이 들여놓아서일 수도 있다)
종종 놔두고 깜빡한 음식물에 개미가 꼬인다든지-_ 하는 일상의 사소한 충돌이 있긴 했지만
개미는 개미 나름대로, 우리 가족은 우리 나름대로 - 거의 별개의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게 평화로운 일종의 소강 상태가 지속되던 어느 날 -

시골 할머니 댁에 평소보다 조금 더 길게 다녀오느라, 꽤 오랜 기간 동안 집을 비운 적이 있었다
한동안 비워둔 집에 오랫만에 돌아와서, (내가 제일 먼저) 현관문을 열고 발을 들여놓으려는 순간-_ 그야말로 할 말을 잃었다
온 집안에-_ 개미 떼가-_ 무슨 아마존에라도 온 양-_ 바글바글거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
평소보다 오래 집을 비우긴 했지만, 그 동안 빈 집이 된 줄 알고 본격적인 자기들 소굴로 삼아 버린 걸까 -
(그런 장면을, 설마 다큐멘터리 말고 현실에서 (그것도 우리 집에서...orz) 직접 보게 될 줄이라고는-_ 전혀 상상도 못 했었다...orz)

가족들 모두 잠시 패닉 상태에 빠져 어버버거리다가-_ 각자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는 모기약을 (...) 마구 뿌려대시고-_ 어머니는 밖으로 도피하시고-_ 형은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나고-_ (성격들이 드러난다 이런...-_ )
나는 보풀 떼는 데 쓰는 테이프를 들고 와서-_ 개미들을 집단학살하기 시작했다 (...)
개미떼들 역시 갑작스런 습격에 혼비백산해서 흩어지고-_ 달아나는 개미들을 테이프를 들고 추적하는, 천진난만한 초딩 한 마리...-_
(테이프를 대체 몇 뭉치나 썼는지 모르겠다-_ 그 때 이후로 벌레라든지 등등을 잡을 때는 언제나 테이프를 애용한다-_ )

분명히 내가 잡은 것보다는 개미가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은데 (반의 반의 반도 채 못 잡았다는 느낌인데-_ )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많던 개미들이 다들 어디론가 은근슬쩍 사라져 버렸다-_
(대부분의 개미가 살아서 도망갔다는 게 오히려 더 큰 공포였다 - 차라리 다 잡았으면 마음이라도 편하지...-_ )
개미들의 대대적인 대륙 진출 야욕을 꺾고 (...) 세력을 한풀 꺾어놓긴 했지만,
정작 대부분의 개미들은 멀쩡히 살아서 도망갔을 뿐이고... 결국 놈들의 근원지는 아직 그대로라는 거-_ ;

개미들의 반란 및 점거와, 대량 학살로 이어진 잔혹한 진압 작전이 끝나고 나서-_ 모든 건 다시 평소대로 돌아왔다
다만, 그 사건 이후로는 아무래도 드문드문 지나다니는 개미들이 그리 곱게 보이지가 않았다-_
그 전까지는 개미 두어 마리 지나다니는 것쯤은 거의 신경도 안 쓰고 살았었는데,
나중에는 한 마리만 언뜻 보여도-_ 신경이 확 날카로워지면서, 바로 달려가서 한 방에 때려잡게 되더라-_

...이 일이 있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다 (물론 이 사건 때문은 아니었다...-_ )

2.
그 이후 몇몇 집을 거쳐서 이사가게 된 아파트 -
아버지는 여전히 식물을 좋아하시고-_ 화분도 많고 이래저래 집안에 식물들을 많이 들여놓고 있었다
그런데-_ 그 집에도 예전에 살던 집에서와 똑같이 생긴 개미들이 살고 있는 듯했다
물론 몇 년 전의 악몽은 거의 잊혀진 상태였지만-_ 가끔 한두 마리씩 나타나는 개미들이 영 거슬리곤 했다
가령, 시리얼을 열어놓고 하루 방치했더니 개미들이 꼬여 있다거나... (비위가 센 편이라, 그냥 우유 쭉 붓고 떠오르는 것만 건져내고 먹어치워 버렸다-_ )

어느 한적한 휴일, 잉여롭게 잉여잉여 - 울며 방바닥을 뒹굴거리던 어느 날,
우연히 개미 스무 마리 정도가 (많은 거다-_ ) 줄을 지어 벽에 붙어 어디론가 기어가는 걸 목격했다-_
호기심에 따라갔더니, 주르르륵 책장 뒤로 줄지어 들어가는 걸 목격했다
넘쳐나는 시간과 잉여력과 호기심과 지적 탐구심에-_ 책장에 있는 책을 다 뺴고 그 큰 책장을 들어내기에 이르렀다-_
결국 방 가장 구석자리에서 개미들이 장판 밑으로 줄지어 들어가는 걸 목격하기에 이르렀고 -

결국 장판까지 들어내자-_ 또다시 아마존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광경이 눈 앞에 나타나고야 말았다...-_
어마어마한 개미떼들이-_ 장판 밑 바닥 전역에 걸쳐-_ 바글바글대고 있는 것이었다 (...)
(우리가 살던 세계 바로 아래에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또다른 세계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orz)
문득 예전 집에서의 악몽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며-_ 또다시 순간적인 패닉 상태에 빠졌다가 -
정신을 차리고, 다시 스카치 테이프를 들고 와서-_ 본격적인 개미 본거지 소탕 작전에 들어갔다 (어머님은 또다시 밖으로 도피...-_ )

개미떼는 혼비백산해서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가기 시작했고 -
나는 이번 기회에 제대로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무자비하게 테이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무려 한 시간 남짓 걸려서-_ 일단 보이는 개미란 개미는 모조리 잡아 버리고 난 뒤에,
혹시나 해서-_ 작정하고 온 집안의 장판을 죄다 들어내기에 이르렀지만, 다른 장판 밑에는 개미가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자기들끼리 소식을 전해듣고 대피한 듯 싶다-_ 집안 전체에서 개미가 (한꺼번에) 싸그리 사라졌다는 느낌?)

그 때의 대학살 사건 이후로 (...) 한동안 개미들의 출현 빈도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
(예전에는 개미들이 먼저 반란을 일으켰지만 (점거...) 이번에는 내가 먼저 본거지(아지트)를 습격(기습-_ )한 셈이다 - )
그 이후로, 가끔 개미가 한두 마리 보일 때마다-_ 녀석들이 어디로 가는지 나도 모르게 집요하게 감시하게 되고,
뭔가 불안한 마음에 하루에도 두 번 이상씩 장판 밑을 들춰보는 습관이 생겼었다 (...)

(...한 달 정도 지나자, 별로 신경이 안 쓰이게 되었다 - 비슷한 시기에 개미들이 슬슬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도 같다...orz)

3.
부모님은 아직도 그 집에 살고 계시고-_ 가끔 집에 돌아가면 여전히 개미들이 보인다
아버지는 심심할 때마다, 지나가는 개미들을 잡으면서 시간을 때우시고 (...)
어머님은 개미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시며-_ 개미 따위는 집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_ (자기암시...-_ ) 생활하고 계신다
(사실 집에 개미가 좀 있다고 해서, 인간의 삶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건 아니니까...-_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orz))

위의 두 사건들로 인해서, (물론 소설 ‘개미’의 영향이 적지 않을 거다-_ ) 개미들에게 지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심증이 더욱 굳어졌다-_
서로 대화만 통한다면,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고 충분히 공존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린 안될거야, 아마.
그 때 이후로는 (일부러-굳이?) 장판은 한 번도 들춰본 적이 없다-_ (무심코 들췄다가 혹여나 아마존이 재현될까 두렵다...-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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