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양이를 키우기도 하고. 융 심리학도 관심있고... 예전부터 관심있게 목록에 놔뒀었다가... 요번에서야 도서관에서 읽다.
사실 처음에 막 엄청 큰 기대를 하면서 펴본 책은 아닌데... 다 읽고 나서 정말 읽길 잘 했다는 느낌이다.
어떤 루마니아 민담에 대한 융 심리학적 해석...
영웅담이 더 문화적이고 의식에 가깝다면. 민담은 훨씬 더 자연발생적이고. 날것의. 무의식적인. 어떤 원형상들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고...
민간전승과 민담이. ‘꿈 속의 삶’처럼. 의식적인 전통과 문명을 보상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는 거...
요런 민담해석이... 요새 내가 이런저런 리뷰쓰는 거랑도 살짝 일맥상통하는 느낌이 있고... 내 꿈 보는 거에도 상당한 인사이트를 주고 있다.
요런 책들 보는데 살짝 재미를 붙인 거 같다. 비슷한 류의 다른 책들 있으면 더 찾아볼 거 같다.


이런 민담이나 꿈을 다룰 때. 이야기 ‘그 자체’를 다루기보다 도식적. 환원적으로 어떤 결론을 내리려 드는 거에 대한 경고가 반복해서 나오는데...
보면서. 내가 완전 초창기 때 꿈을 다루던 기계적인. 환원적인 태도가 떠오른다...
그 때 내가 꿈 자체를 기록하기보다. 꿈에서 파생되는 어떤 결론만 적으려 들었던 기록들은... 지금 보면 레알로 아무 짝에도 쓸데가 없다.


“여러분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얼마나 깊이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감정적인 무게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민담에서 왕이나 황제는.. 상징적으로 왕국을. 전체를 하나로 통합하고 연합시키는. 어떤 ‘하나의 정신’- 지배원리를 암시한다.
왕국들이 낡아버리고 지배자들이 늙었다는 건. 자아통합이 무너지고. 지배원리가 무력해진 상황.... 더 이상 연합되지 않은. 갈래갈래 나뉘어진 집단정신...
“왕이 형편없는 모습이 되고 말았을 때, 반드시 희생되고 갱신될 필요에 직면해 있다.”
“왕의 아이는 항상 갱신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왕과 왕비가 오랫동안 아이를 못 낳는 상황... 아무 결실도 없고, 별 볼일 없는 일이 반복되는 상황...
의식적인 측면의 침체된. 공허한. 불모의 기간이 계속될수록. 무의식에 어떤 (흐르지 못한) 에너지가 ‘고이기’ 시작하고.. 결국 중요한 일이 일어나게 된다.
왕국의 후계자. 세 아들들... 누구에게 왕국을 물려줄지. 어떤 가치가 의식의 지배적인 중심을 물려받을지. 어떤 새로운 가치가 떠오를지...


“밤바다 여행... 바다는 괴물들과 신들로 가득한 곳이다. 또한 바다는 신들이나 마귀들이 사는 미지의 해안 혹은 미지의 섬으로 이끌어가기도 한다.”


‘아내가 죽고’ 술에 쩔어 있는 황제라... 내가 알코올 중독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 않은데... 굳이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고...
“알코올 중독... 대부분이 진정한 영과의 연관성을 잃어버린 것과 관계가 있고, 그래서 필사적으로 그것을 대신할 만한 어떤 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대개 중독에 빠지는 것은 삶이 울적하고, 무의미하고, 지루해질 때 황홀한 종교적인 상태를 갈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알코올 중독이 아니마의 저하deterioration과 관련되어 있다는 거...
황제가 요구하는 ‘극세’ 아마사(린넨 실-) 운운- 식물성의. 세속적이기보다 정신적인. 희고 순수하고 보드라운. ‘여성적인’ 고급 섬유-
딱 내가 innocent little girl이라고 부르는.. 어떤 이상화된 감각... 순수하고 순백의. 희고 담백하고 고결하고 깨끗한. 무해하고 ‘악에 물들지 않은’ 그런 감각-
황제가 일종의 아니마-사로잡힘 상태에 있고... 자식들에게 그 ‘낡은 가치’를 갱신될 지배원리로서 과제로 요구하지만...
막내아들이 ‘밤바다의 항해’- 어두운 바다 한가운데에서. 폭풍과 비바람을 뚫고. 숱한 고난 끝에 발견하는 건. 큰 성과 앙칼진 고양이-여인-공주-이다.


“그가 고양이 여인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곳마다 이 모든 고통스런 일들initiation tortures이 일어난다.”
“오 하나님, 누가 나를 이렇게 때리는 겁니까?” “나를 때리는 게 누구란 말인가? 당신은 누구요?” “내 적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요? 적과 싸우게 해 주시오.”

뭔가 안쓰런 마음이 확 오네.ㅠㅠ... 내가 과거에 무언가를 찾아 헤맬 때. 고통의 의미..를 모른 채로 고통받을 때를 보는 같은 요 느낌...


요 고양이에 대한 확충... 고양이의 양면성에 대해서는. 딱 내가 우리집 고양이 보면서 느끼는ㅋㅋ 그런 느낌들을 떠올리게 되네.
내가 내 고양이의 우다다닷과 자기주장..을 보면서. 어떤 ‘나 자신의’ 앙칼진ㅋㅋ 말 안듣고 제멋대로인. 귀욤귀욤한 동물적 측면을 생각하게 되는 거...
꿈에서도 종종 등장하고... 나한테 고양이와 (그 더욱 야생적인. 원초적인 바리에이션인) 흑표범...은 상당한 상징이다...


천상의 여신이자. ‘헌신적인’ 숭고한 어머니이자. *동시에* 대지와 죽음과 지하계의 여신이기도 한. 고대의 태모 여신 이시스의 이미지에서...
기독교적 문화로 넘어오면서... 성모 마리아가 밝고 고결한. ‘이상화된’ 면만 육화하고. 어두운 면은 억압되었다고-
기독교에서 이야기되는 어떤 여성원리가... 분명 순수하고 고결하고 자비롭고... 온갖 긍정적인 상징들로 고양됨에도... 어떤 전체성과는 괴리되어 있다.
“동정녀 마리아는 육체와 전혀 접촉이 없다. 그녀는 결코 벌거벗은 성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대지의 풍요성과 어두운 측면은 끝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but 이렇게 교리적으로. 의식적으로. 문화적으로 지워진 여성성의 면모가. 요런 민담이나 ‘검은 성모상’ 등에서 간접적으로 묻어난다고...


이시스의 딸- 고양이 머리를 한 여신 바스테트- 다른 모든 여신들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데메테르의 딸. 혹은 디오니소스의 딸이란 전승도 있는... 아르테미스. 헤카테. 프레이야와 동일시된. ‘황무지의 아르테미스’, ‘야생물의 왕’-
달과 예술과 사랑과 다산과 풍요와 축제와 사냥과 전쟁의 여신. 자연과 친화력을 지닌 야성적인 여신...
한 손에는 시스트럼(악기). 한 손에는 방패- “바스테트는 항상 매우 음악적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미지들이 죄다 한 점으로 수렴하는 느낌이다...)


파괴적이고 본능적인. 독립적인 앙칼진 여성성. 고양이와 ‘마녀’. 성모 마리아- 신의 어머니의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그림자. 어두운 측면...
“우리는 스스로 “성모 마리아와 마녀 박해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라고 물어보아야 한다.”
개인의 여성상이 집단적인 차원... 성모 마리아스런. 성스럽고 고결한 차원에‘만’ 남아.. 그 그림자 측면이 외면되고 분열되고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한...
여자들은 사회적으로 개인성을 억압받고. 남자들 역시 심혼의 개별성이 발달될 기회가 저해되고 내적인 성장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극세 아마사’스런. 이상화된 아니마-환상에 사로잡힌 알코올 중독 황제와 달리... 막내아들은 훨씬 천진난만하고. 본성적인 고양이-공주에 이끌린다.
“우리의 영웅은 매우 천진난만한 사람이기에 육체의 굶주림을 잘 참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아니마-환상이 주로 어떤 성적 환상과 육체적인 욕구로 나타남에도... 그 이면에는 늘 어떤 (얼핏 뚜렷하지 않은) 고양시키는. 정신적인 욕구가 함께 있다.
성적 형태를 띤.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매혹과 이끎 뒤에 있는 어떤 의미- 영적인. 거의 ‘종교적인’... 합일욕구- 성장욕구-
(성에서 영적. 정신적 차원을 배제하고. ‘그저’ 생물학적. ‘그저’ 육체적으로 환원할 때) “...그때 죽은 고기나 썩은 고기를 먹게 되고 마는 것이다.”


‘아마사’-환상에 사로잡힌 쇠락한 황제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밤바다의 항해 끝에. 심층적인 차원에서 ‘고양이 아니마’의 가치와 만난 막내아들...
이제 여기서. 고양이의 세계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지상-제국으로의 ‘필연적인’ ‘돌아감’의 주제가 나온다...
“알다시피,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심층으로 내려간 후에 누구든 낡은 현실, 즉 의식적인 현실과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무의식 속에서 일종의 무시간적인 꿈의 상태로 남게 된다. 누구든 새로운 자각이 날마다의 삶-현실-에서 일어나게 만들어야 한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새로운 어려움을 엄청나게 많이 만나게 된다.”
(오딧세이아-)


여기서 나오는 융 얘기...ㅠㅠ
“...적나라하게 자신의 경험들에 대해 말한다면, 그는 정신없는 신비주의자, 미친 사람 등으로 불릴 게 틀림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여러 해 동안 큰 고통 속에 살았다. 그의 경험들을 어떻게 깊이 깨닫게 하고, 그의 경험들을 삶과 다시 연결시키는 방법을 몰랐기에 말이다.”
“그는 그것을 집단에 전달해 주기 위해서는 어떤 형식을 발견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융이 발견한 게 연금술- 물질에 투사된 정신. 정신적 질료의 ‘내면의 황금’으로의 ‘영적인 변환’. ‘현자의 돌’을 찾기 위한 내적 탐구들-
자신의 경험이 ‘그저 개인적인’ 붕 뜬 무언가가 아니라. 이미 고대부터 다루어져 온. 역사가 있는. 인류 보편적인 무언가라는 어떤 위안- 자기확신- 신념-
융: “나는 개인적인 내적 경험들을 연금술의 용어로 계속 쏟아놓을 수 있다. 왜냐하면 연금술에서는 같은 문제들이 논의되어 왔기 때문이다.”
딱 요런 게... 지금의 나한테는 심리학... 그 중에서도 특히 융 심리학 아닌가.
내가 해 온 고민들. 이전까진 정체도 모르고 언어화하지 못하던 것들을... 진리든 아니든. 내가 융 심리학적 언어를 갖고는 쭉쭉 말할 수 있다는 거-


고양이와 함께 제국으로 돌아온 뒤에. 머리와 꼬리를 자름으로써 고양이에서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
“그는 그녀가 고양이 상태에 있는 것을 너무나 사랑한다.”
미분화된 아니마가. 무의식이. 의식을 자극하고. 이끌고. 스스로 의식화되기를 원하는 것- (어떤 성장욕구-) “신성한 충동이 육화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동물적인 것은 신성하고 압도적이고 매혹적이지만. 의식적인. 소통하는. 인간적인 관계는 맺을 수 없다고... 숭배되거나. ‘사냥’되거나...
결국 자른다는 건 어떤 동일시에서 떼어낸다는. 분화한다는 의미다... ‘동물적인’ 꼬리를 자르고. 정신적인 머리를 자르고...
딱 이 꼬리만 잘라낸. 머리만 고양이인 여신의 형상이 바스테트의 형상이고... (이를테면.. 좀 다르긴 하지만... 어떤 감각에서는 ‘홍대 여신’ 같은 거다)
“바스테트는 생각을 할까? 우리가 바스테트에 대해 언급했던 것, 바스테트가 축제, 풍요, 음악, 마술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머리와 꼬리를 자름으로서 그들, 말하자면 아니마의 인간 이하의subhuman 측면이나 초인적인superhuman 측면을 자르게 된다.” (분화-)
(이 ‘잘라냄’의 테마에 대해서는 내가 할 말이 많지 않나...) (ㅠㅠ)
“...철저히 기존의 인습과 ‘사로잡힘’에 거슬러야만 하고, 그러고 나서 그것을 ‘살아있는’ 단계에서, 또한 자신의 개인적인 단계에서 재습득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일단 잘라내는 게 먼저고. 그렇게 잘라낸 거에서 끝이 아니라. 잘라낸 걸 개인적인 단계에서 제대로 재습득해야 한다-
(어찌 보면 기독교적인 ‘의식의 신’이. 기존의 본성적인 ‘동물 신’들과 이교도의 신들을 ‘잘라냈던’ 게 비슷한 맥락일 수도 있다..) (다시 습득되어야 하고-)
“그의 입장을 철저히 두 번 변화시키고 나서야...” => 딱 요게... 지금의 나한테 필요한 태도다...


황제: “너는 내 후계자가 되고, 모든 제국을 소유해야 한다.”
막내아들: 아니오. 아버지. 그럴 수 없습니다. 전 제 왕국이 있습니다. 아버지 건 큰형에게 주십시오.
고양이: “당신 형들을 조심해야 해요. 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해요.”


아들의 아내를 탐하는 늙은 황제-아버지라... 나 요거 뭔 느낌인지 알 거 같냐...
여전히 낡은 채로. 어떤 쇄신과 변화 없이. 진정한 혁신 없이.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어떤 새로운 가치를 탐내는. 열매만 날로 먹고픈 어떤 감각...
“나는 그녀가 낡은 원리를 극복하기 위한 정당성을 얻기 위해 낡은 원리에 도전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새로운 것은 은근슬쩍 낡은 습관에 끼워 넣어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낡은 병 속에 든 새 포도주’ 말고... 늙은 왕을 몰아내고.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된다는. 결국 낡은 가치와 영웅 사이에 투쟁이 있어야 된다는...
(어떤 지나간. 낡아빠진. 쇄신되어야 할 과거의 가치에 대한 도드라진 적대... 어떤 측면에선 ‘잘라냄’과 마찬가지다...)


“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오시리스다. 그는 오르페우스이며 우리의 디오니소스다. 우리는 저 고통받고 찢겨진 신을 오래전부터 알고 사랑한다.”
“아니다. 비록 그리스도가 오시리스, 디오니소스나 오르페우스 등과 비슷한 것이었을지라도, 그분은 다른 분이시다.”
그것은 무언가 새로운 것이며 새로운 소명이다. 그것은 또 다른 삶의 방식이다. 그것은 그저 이미 알려진 (오래된. 낡은) 것의 변이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과거와 단절하고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제 마무리됐다. 이제 끝났다.””
“늙은 황제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 과거에서 벗어나야 한다.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이 치르게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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