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기억나는 최초의 음악

Posted 2011. 4. 20. 23:33, Filed under: 카테고리 없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한테는 일종의 샤방샤방(*-_ ) 문학소녀 삘이 있었던 것 같다
시골 중에 깡촌 출신임에도 소도시로 나와 고등학교까지 졸업하셨으니 (그 당시 그 동네에는 중학교쯤이 보통이었다고)
나 어릴 때 식탁에 각종 시들을 옮겨적어 각종 색색깔 종이로 샤방샤방(*-_ ) 꾸며놓으셨던 것도 기억나고
전원생활 류의 잡지에 짧은 글들을 내 사진과 함께-_ 기고해서 몇 번 실렸던 걸 식탁 유리 사이에 자랑스럽게 끼워두셨던 것도 기억난다
(근데 언젠가부터 아름다운 싯구 대신 별 감흥도 뭣도 없는 밋밋한 성경 문구를 붙여놓기 시작하셨다-_ 엄마가 확실히 변했다)

엄마의 반짝 문학소녀 기질의 연장선에서 생각해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 집에 각종 동화책 읽어주는 테이프가 네 세트인가 (씩이나-_ ) 있었고 (전래동화 서양동화 각각 두 세트씩)
각종 아동용 소설이랑 교육만화 세트도 당시 그 동네 가정 치고는 꽤 여러 개 있었고 (대신 옆집에는 게임기가 있었다-_ )
심지어 유명한 동화 중 집에 없는 것 몇 개는 엄마가 손으로 일일히 필사해서-_ 진열해 놓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_ )
단칸방에서 네 가족이 살았던 기억이 지금도 어렴풋이 나는데 그 때도 집에 책이 상당히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그 동화 테이프 하나가 끝날 때마다 어머님께 운운 하면서 작품 해설이랑 같이 나오던 구슬픈 음악이 있다
(정확하진 않은데 금성출판사 명작 서양 동화 뭐시기였던 것 같다 얄팍한 하드커버 만화 일러스트)
안 그래도 동화의 끝은 대부분 허무하잖은가 -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낭랑한 그 한 마디에 왜 그렇게 마음이 아려오던지
허무함을 한껏 돋우는 음악과 테이프 다 돌아가는 소리 “툭” 이후에 흐르는 정적까지 (아 지금 생각해도 공허함이 밀려온다-_ )
이 감정이야말로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 빠질 수 없는 절대적인 테마 중 하나이고
최초의 기억의 어렴풋한 느낌부터 지금까지 쭉 꾸어 온 어린 시절의 꿈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세지다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일관적인 회색의 느낌이다 엄마는 왜 테이프만 틀어놓고 나를 혼자 방치해두었던가-_ )

p.s. 곡명은 Johannes Brahms, Waltz, opus 35 no.15 a.k.a. 브람스의 왈츠 그나마 어릴 때랑 비슷한 느낌 나는 버전으로 골랐다
p.s.2. 그냥 아무 상관없이 생각나서 적는 건데, 우리 집에 장난감이라고는 설명서 없는 잡레고 한 박스뿐이었다 (로보트나 다른 장난감은 없었다-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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