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투어

Posted 2010. 12. 5. 17:42, Filed under: 카테고리 없음

비루한 자취생활 와중에 간혹 혼자서 맥주라도 한 병 들이키고 나면
뜬금없이 센치한 기분에 젖어 인터넷 구석구석을 무작정 뒤지게 되는 날들이 있다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구석진 블로그일수록 좋고 내면의 어두움이 실린 글일수록 더더욱 흥미롭다
몇 시간에 걸쳐 이글루스 티스토리 랜덤 블로그를 수백 번씩 넘나들기도 하고
아무런 개연성도 없이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단어들을 무작정 검색해 보기도 하고
생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처음 보는 블로그를 꼼꼼하게 뒤져 가며 사소한 일상들을 정독하기도 한다
가끔 마음이 동하면 그럴듯한 리플을 남기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은 흔적 없이 둘러보고 나오지만

몇 시간씩 하릴없이 블로그를 둘러보다 보면 느끼는 게 참 많다
따지고 보면 별 거 없는 일상을 참 맛깔나게 풀어놓는 나름 평범한 블로그에서부터 (이런 거 부럽다)
짧은 한두 줄짜리 포스팅을 수백 개씩 써갈겨서 내면의 흐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블로그라든지 (흠)
우울증에 시달리는 블로그에 올라오는 우울한 글들에서 가끔 삶에 대한 집착이 비치는 걸 감지한다든지 등등

모 글에서 표현했듯이 ‘실제로 만나면 오히려 보기 힘든 지점’ 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좋다

사실 몇 시간씩 돌아다녀도 정말 내가 찾던 그런 종류의 블로그를 발견하는 일은 몹시 드물다
이래저래 대책없이 시간만 잡아먹는 이 일은 대체로 몹시 비생산적이다 (물론 쓰잘데없이 시간 죽이기에는 제맛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째 결국 이 짓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인터넷에 누가 어디에 썼을지도 모를 글 한편에 담겼을지도 모를 조그만 영감을 얻기 위해서다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대어 털어놓는 내면의 이야기라 흥미롭지 않은가 뒤적거리다 보면 무얼 건질지 누가 알겠는가

칼 융 자서전에서 자기의 삶은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정신의 기록이라든가 아무튼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블로그를 통해 간접적으로밖에 볼 수 없는 이런 내면의 기록이야말로 진정 흥미로운 기록이라 생각한다
but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블로그에다가는 절대로 내 깊은 내면을 털어놓지는 못하겠다
머지 않은 미래에 인터넷은 지금의 어중간한 가상 현실이 아니라 진짜 현실의 일부분이 될 것이고 (뭔가 횡설수설 중)
깊숙한 내면을 쉽사리 드러내기엔 인터넷의 익명성이란 건 생각보다 훨씬 얄팍하니까
따라서 몇 년째 충실히 쓰고 있는 일기장과 이 블로그는 완전히 별개다 블로그 운영 철칙 1번 일기는 일기장에

p.s. 오지은 씨 홈페이지에서 얼추 비슷한 내용을 담은 글을 본 기억에 링크를 남겨둔다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진 사람의 블로그의 경우 아무래도 익명의 블로그에 비해서 깊은 내면을 엿보기는 힘들지만
어느 정도 외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같이 보고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쏠쏠한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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