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만에 몰아 적는 일상

Posted 2010. 12. 1. 21:46, Filed under: 카테고리 없음
1.
트럭에 물건 싣고 와서 파는 사람들 보면 지나가다가도 왠지 하나씩 사주게 된다
오늘도 병원 다녀오는데 트럭에 왠 냄비를 가득 싣고 와서 죽치고 있는 아저씨 딱 봐도 장사 안될 게 뻔하다
원래는 내일 마트 가는 김에 살 예정이었지만 아저씨 표정을 보니 왠지 사주고 싶어진다
제일 작은 체 하나를 들고 가서 물었다
얼마에요? 반색을 하며 삼천원
제길 비싸다 하지만 어느 정도 비쌀 건 알고 있었으니까
싸주면서 급방긋 표정으로 아저씨가 말씀하신다
고마워요 요즘 장사가 너무 안 돼서 하하 아 예
딱 봐도 안될 거 같아 보였다고 말은 못하고 멋쩍게 웃으니 한 마디 더 하신다
에이 부모님 말 잘 들었어야 되는데
그저 웃을 수밖에 내가 허허 웃으니까 장난스럽게 한 마디 덧붙이신다
부모님 말 안 들었어도 마누라 말이라도 잘 들었어야 되는데 그것도 안 들어서 에잉
마지막에 애교 섞인 한 마디 에잉이라니 왠지 귀여운 아저씨다

2.
수업 다녀와서 컴퓨터를 켰는데 왠 연평도 사건이라고 인터넷이 떠들썩하다
동영상만 보면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진짜 전쟁이 나도 이상할 게 없을 분위기다
지난번 천안함 사건부터 계속 분위기가 뒤숭숭한 게 왠지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전쟁 준비의 일환으로 모아둔 쿠폰을 털어서 한 달 전부터 꾹 참아 오던 치킨부터 시켰다 전쟁 나면 치킨이고 나발이고 없겠지
치킨을 뜯으면서 집에 안부전화도 드리고 군복 군화 위치도 확인하고
전쟁 안 날 거라고 믿고 있다가 혹시라도 진짜로 전쟁 터지고 나서 우왕좌왕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전쟁이 날 거라고 각오하고 있다가 전쟁이 안 났을 때 안도하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복무는 나름 특수 병과로 했는데, 전쟁 나면 그딴 거 없고 그냥 총알받이로 가겠지 아마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다 여태까지처럼 각오로만 끝났으면 좋겠다

3.
기말 리포트 팀플 조장 선출하는 시간
아무도 하겠다는 사람이 없고 서로 슬금슬금 눈치만 보길래
경험상 가만히 있다가는 학번 높은 사람 시키자고 분위기가 몰릴 것 같아서 (복학생의 비애-_ )
가위바위보로 정하자고 내가 먼저 잽싸게 제안했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동의했다 역시 누군가가 먼저 나서야 일이 빨리 풀린다
근데 무려 열두 명이서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일부러 지려고 해도 못 질 거 같은데-_ 그 희박한 확률을 뚫고
하필이면 내가 걸릴 줄이야-_
나 빼고 다들 함박웃음-_ 내가 제안해 놓고 내 꾀에 내가 넘어간 느낌이다 제길
지난 학기에는 수많은 가위바위보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는데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다-_ )
나도 이제 초심자의 행운이 다한 건가 몸조심해야겠다-_

4.
교수님이 내가 여태껏 수강한 과목 및 성적을 전부 조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내 담당 교수시기도 한 어떤 교수님이 (담당 교수를 왜 정해주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_ )
질문하시거나 할 떄 유독 내 쪽을 자꾸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는데 (물론 나만의 착각일 수도-_ )
혹시라도 내 성적을 조회해 보셨다면야 납득이 갈 거 같기도 하다
1학년은 학고를 겨우 면할 정도로 개판친 주제에 복학 후 첫 학기에 전액 장학금을 탔으니까-_
(게다가 지난 학기 그 교수님 수업에서 중간고사 때 평균 점수의 두 배 점수로 1등 후 결국 A+ 획득-_ 너무 내 자랑인가)
하지만 이번 학기에는 벌써 결석 6번에-_ (1주일에 2번 수업) 중간고사도 죽을 쒔으니 나로서는 면목이 없다
p.s. 온라인의 익명성은 사람을 다소 뻔뻔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웹상에서의 실체 자체가 불분명한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자랑이 정말 내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가

5.
처음에 길고양이를 선뜻 집에 들일 때는 혼자인 것보다 고양이를 키우면 마냥 좋을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반 년 넘게 키우다 보니 집에 반려동물을 들이는 게 그리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는 걸 실감한다
특히 지금은 새끼 고양이 말썽 때문에 골머리를 단단히 앓고 있는데
왠지 나중에 결혼해서 애 키울 때 느낄 만한 감정들을 미리 체험하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다
평소에는 정말 애교도 많고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새끼 고양이인데도
여기저기 오줌 싸고 쓰레기봉지 다 뜯어 놓고 정리한 거 뒤집어 엎을 때면 정말 주체하기 힘든 짜증이 치솟는다
(울음소리가 짜증나서 아기를 집어던졌다는 불량 엄마들의 심정을 알 것도 모를 것도 같다-_ )
이게 남 얘기였다면 고양이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당장 내다 버리라고 단단히 충고했겠지만
얘는 내가 출산부터 지켜본데다가 어미가 안 돌봐서 비실비실하는 걸 지극정성으로 살려놓은 애라서 차마 내쫓질 못하겠다
(그리고 나중에 애 키울 때는 더 심할 텐데 이 정도도 못 버틸 거면 애 키울 때는 어쩔 거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런 건 어디서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하나 오줌만이라도 안 싸줬으면 소원이 없겠다 제발 절실하다

6.
수업 끝나고 팀플 조원들끼리 작업 분담하는 시간
과제 제출 기간이 아직 여유가 있는 탓인지 팀장인 나 빼고는 아무도 과제에 관심이 없다 제길
아무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대충 내 마음대로 업무를 나눠 놓고
일일히 생각해 가면서 업무 할당하다가는 또 한 세월 걸릴 게 뻔하기에
또다시 가위바위보-_ 로 원하는 걸 하나씩 고르자고 곧바로 제안했다 역시나 다들 기꺼이 동의
지난 번 결과를 생각하면 가위바위보는 가급적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_ 내가 왜 그랬을까
한 방에 꼴찌 당첨-_ 어떻게 나 빼고 짠 듯이 다 똑같은 걸 낼 수 있냐고-_ 이게 말이 돼냐고 @#$!#!%@#
덕분에 가장 시간 많이 잡아먹고 번거로운 작업인 인터뷰-_ 작업을 맡게 되었다
뭐 사실 이런 종류의 인터뷰는 대학 와서 처음 해보는 거니까 좋은 경험#@$!%@# 으로 삼아야겠다
그리고 이번 학기 동안 가위바위보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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