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개인적인 메모들

Posted 2015. 10. 7. 23:33, Filed under: 카테고리 없음

1. 

지난 5년간 노트에 기록해온 600여개의 꿈들을 시기별로 모아 텍스트로 정리 중이다.

휘갈겨적은 메모 몇 줄만으로, 마치 오늘 꾼 꿈처럼 기록에 없는 세부사항과 당시의 느낌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경우가 많다.

(과거 꿈의 기억들이 실제 있었던 일의 기억들과 머릿속에서 준 동급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시기별로 모아놓고 한꺼번에 보니 더 큰 그림이 보이는 것 같다. 꿈꿀 당시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반복되는 패턴들이 조금씩 보인다. 

최근에는 (형태를 바꿔 가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꿈 속의 인격들에게 그럴 듯한 타이틀을 붙여주는 중이다.

naughty boy. avatar of mediocrity. lover. innocent little girl. sapientina. artistica. (predator.) harsh-punitive supervisor. 기타 등등.

(이름이 있어야 그 안에 구체성을 담아둘 수 있다. 구체적인 특질을 이름에 몰아넣고, 한 걸음 물러나서 큰 그림을 바라볼 수 있다.)


2.

“...힐만은 감정을 여성성으로, 사고를 남성성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라고 지적한다. 에로스와 로고스를 각각 남성성의 원리와 여성성의 원리로 구분하는 것 또한 무리라고 지적하는데 실제로 그리스 신화에서 에로스는 여신이 아니라 남신임을 근거로 들기도 했다. ...나아가 힐만은 원형이란 인류 보편적인 것이기에, 융이 주장하듯 아니마는 남성에게만 있고 아니무스는 여성에게만 있다면 이는 이미 원형의 정의에 위배된다고 지적한다. 힐만의 결론은 남성의 내면에도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있고 여성의 내면에도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있다는 것이다.” - 고혜경의「나의 꿈 사용법」


아니마와 아니무스(이부영)를 읽고 나서도 온전히 수긍하기 힘든 부분이었기에, 전통적인 설명보다는 개인적으로 이 주장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3.

법륜스님 즉문즉설을 쭉 훑어 듣다. 듣다 보면 굉장히 동어반복적인데.-_- 걸러 듣다 보면, 분명히 그 안에 새겨들을 부분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편은 이거(링크)다. (제 155회 -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성격 때문에 힘듭니다)

(내가 가치관의 아노미ㅠ 상태에서 혼란스러워하던 당시 주위와 비슷한 갈등을 종종 겪었었기에, 들으면서도 남 일 같지가 않다.)

(주위 사람들이 온갖 평가적 기준을 들이미는 것과 별개로, 내가 평가적이고 비판적이라는. 부정적인 투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라는 이야기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에 관한 이야기. “가만히 얘기 들어주는 게 뭐가 어려워? ...자기가 이건 아닌데, 저건 아닌데 자꾸 판단을 하니까 그렇지.”

최근의 주요 주제 중 하나가. 상대가 나에게 ‘어떤’ 식의 자기노출을 해도 괜찮다고 느끼도록 만들기다. 판단을 내려놓기가 쉽지만은 않다...


...또다른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수련과 정진에 대한 이야기였다.

올바른 방법을 알고 나면, 그저 될 때까지 할 뿐이라고. 100번을 해서 안 되면 101번을 하고, 1000번을 해서 안 되면 1001번을 할 뿐이라고.
올바른 길을 알았으면. 그저 될 때까지 계속 정진할 뿐이라고. 쉬운 길은, 지름길은 없다고. ...투사를 다루든. 불안을 다루든. 왜곡된 기저신념을 다루든.

그걸 들으면서. 사실 내가 이제껏 노력에 대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불신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뭔가 슬픈 감정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매사에 애매한 순간을 못 견디고 그 상황을 어떻게든 조기 타개하거나. 손쉽게 회피하려 드는 전략을 써 왔던 것 같다.
노력 자체를 은근히 회피해왔다는 말이 더 맞겠다. 손쉽게 체리피킹이 가능한 것들이 유난히 내 손에는 더욱 쉽게 굴러들어왔다.

(그런 태도가. 한 분야를 꾸준히 깊게 파기보다 문어발식으로 잡다한 분야에 발을 담그길 선호하는 습성으로 나타난다.)

큰 노력 없이도 잘 뻗은 길만 걸어온 것이 지금까지는 운이 좋다고 여겼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삶의 필수과제를 다 회피해왔던 게 아닌가 싶다.


...고로 최근의 테마 중 하나는. 애매함-모호함-을 견디는 능력 기르기다. 애매한 상황에 스스로를 끝까지 놔두기. 그 불편함을 회피하지 말기.

당장 성과가 없더라도 노력 들이기를 섣불리 포기하지 말기. 당장 눈앞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기. 그저 정진할 뿐이다.


법륜스님의 어휘가 물론 불교적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분히 심리학적이다. (노이로제니 하는 게 불교랑 상관있을리가.-_-)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분별심이니, 카르마니 하는 어휘들도. 불교적 어휘지만 어지간히 심리학적 뉘앙스가 강하다.

아마도 종교의 미래는 심리학을 교리로서 점진 흡수하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불교는 분석심리학과 죽이 잘 맞는 것 같다.


4.
‘내 안의 신을 쫓아낸 자리에 나는 무엇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라는 중이병스럽지만 절박한 메모를 끄적이던 게 불과 올해 초다. 더 이상은 가치관의 아노미 상태에 예전처럼 시달리지 않는다(고 느낀다).

내게 철학은 구체적인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내 안의 신을 몰아낸 그 시점에서 이미 철학은 그 역할을 다했다고 느낀다.

사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무엇이 진리이든 사물의 이치든 내 알 바 아니다. 유일한 유의미한 목적은 나 자신의 안위와 평온이다.

지금 그 수단으로써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심리학이다. 무너진 가치관의 빈 자리를 (임시로) 심리학이 채우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특히나 ‘온전한 인간’에 대해 말하는 분석심리학은. 그 자체로 가치관과 윤리의 역할까지 포괄하며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는 느낌이다.


5.
추리물이나 퀴즈, 지니어스나 크라임씬 등 머리를 굴리고 치열한 두뇌싸움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거의 사라진 것 같다.

(비슷한 종류의 프로그램을 안 본지 꽤 됐다. 거의 흥미가 느껴지질 않는다.)

내게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에만 머리를 굴리기에도 모자라다는 느낌이다. 개인적 과제와 동떨어진 머리싸움은 영 부질없다.

...무엇보다도, -어릴 때와는 달리- 내 정체성에 ‘머리좋음’이 포함되지 않더라도 아무런 상관없다는 느낌이다. 나는 머리가 좋을 필요가 없다.

(무언가의 쓸데없는 원리를 따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특히 대화할 때 -대화의 속뜻을 해석하느라- 골머리 썩이는 건 질색이다.)

가끔 내게 주지적인 뭔가를 들이대는 사람에게. 나는 머리쓰는 걸 싫어하니 나를 쓸데없이 생각하게 만들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 들어서 가끔 하는 생각 중 하나는. 생각은 정리하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거다.

물 흐르듯 흘러갈 생각들을 억지로 잡아놓고 체계를 갖추려 드는 것도 강박이다. 우리가 하는 생각 중 굳이 그래야 할 정도로 중요한 생각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번뇌는-그리고 불면은- (뻘)생각을 자꾸만 곱씹는 데서 온다. 생각을 비운다는 건 마음에 잠시 휴식을 주는 거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아무리 생각을 정리하려 들어 봤자 죽도 안 된다. 생각을 버리고 머릿속을 싹 비워야 비로소 다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생각 비우기 수단으로서의 명상의 중요성... 보통 똑바로 정자세로 하라고들 가르치지만. 나는 주로 잠드는 데 애용한다.-_-)


6.

최근 가장 자주 읊조리는 일종의 주문-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스스로를 애써 방어하려 들지 마라. do not defend yourself.

자신을 굳이 증명할 필요 없다. 구구절절 해명할 필요 없다. 자신에 대해서 타인을 이해시키는 데 연연하지 마라.

어찌 보면 방어기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둥바둥 자기 딴에는 스스로를 보호하겠다고 꺼내드는 그 칼날을 내려놓아라. 마음을 열어라.

예수님의 왼뺨을 맞거든 오른뺨도 내주어라, 라는 말 역시 비슷한 맥락일 거라고 여겨진다. 아마도.

방어기제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상처받을 것을 감수한다는 거다. 내가 상처받는 한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삶에 대해서 열린 태도를 견지하겠다는 거다.

상처받을지도 모를 상황에 스스로를 끝까지 내버려두는 거다. premature하게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들지 않는다는 거다.

이것도 최근의 개인적인 주요 테마 중 하나다. 나는 나 자신의 방어기제를. 어디까지 인식하고 어디까지 의식적으로 내려놓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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