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

Posted 2011. 1. 23. 02:59, Filed under: 카테고리 없음
집에서 놀고 먹으며 할 짓 없이 보낸지도 벌써 여러 날이 흘렀다
새삼스레 느끼는 거지만 정신은 몸의 습관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것 같다
방학하고 나서 몸이 게을러지니 정신 상태도 따라서 한없이 나태해지는 게 눈에 띄게 느껴진다

내일은 친척 결혼식에 얼굴 비추러 가야 하는데 별로 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어릴 때 잠깐 보고 거의 이십 년을 남처럼 살아온 서먹한 친척 누나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지금은 집 밖에 나가서 사람들 만나는 일 자체가 귀찮다

나는 어째서 변화하지 못하는가?

이것저것 할 일은 많았던 것 같은데 그걸 하는 게 그다지 중요한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마치 마음만 먹으면 당장 할 수 있는 사소한 일들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직접 해결하려 하면 그 사소한 필요성에 비해 과정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사소하고 귀찮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걸 자각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하고 무의미할지라도 무엇이든 부지런히 흔적을 남겨야 한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는 대충 안다 군대에서부터 쭉 세워온 허접하지만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다 (물론 확신은 없다)
하지만 제대하고 벌써 일년 반이 지났는데도 눈에 띄게 이룬 게 없다는 건 확실히 문제가 있다

오랫만에 블로그에 글을 쓰려니 평소엔 자각 못하던 내 현재 상황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내가 삼 일째 설거지를 미루고 있는 이유는 멀쩡히 있던 수세미가 삼 일전부터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일 엄마가 서울 올라와서 방에 들를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다

(마음먹은 김에 잠시 한 시간쯤 걸려서 설거지 및 싱크대 가스레인지 기름때 제거까지 끝내고 돌아와서 다시 쓴다)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지만 아무리 청소를 해도 고양이 등쌀에 오래가지 못한다
나는 성인군자도 고양이 자선사업가도 아니다 이놈의 고양이가 끝내 오줌싸는 버릇을 못 고치면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장학금을 타면 전자 키보드를 꼭 사겠다고 예전부터 생각해 왔었는데도 귀찮아서 아직까지도 안 사고 있다
피아노 연주 취미의 꿈을 아직 못 버리긴 했지만 그건 나한테 그다지 우선 순위는 아니었나 보다

체격이 변해서 군대 가기 전에 샀던 옷들은 못 입는지라 대부분 새로 사야 하는데도 귀찮아서 별로 안 사고 있다
그럭저럭 챙겨 입고 다니기는 하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절실하다

군대 안에서는 못 구해서 제대하면 읽으려고 적어둔 책 목록이 무더기로 있는데도 읽을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대학 도서관은 거의 못 구하는 책이 없는 자료의 보고인데도 제대로 활용을 안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학교 공부와는 별도로 공부하려고 계획해둔 게 서너 가지 (대부분 IT 관련) 있는데 아직까지 제대로 건드리지도 못했다
학기 중에 병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방학을 최대한 활용해야 할 텐데도 지금 이러고 있다

내 문제 대부분은 귀찮음, 행동으로 옮기지 않음의 문제인 듯하다 현실적인 장벽이 아닌 의지의 문제라는 말이다
하지만 의지의 문제라는 게 그리 단순한 문제만은 아님을 안다 사람은 스스로 변화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가능은 하다고 믿는다 단지 어려울 뿐)
내일부터 다른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곧바로 달라지는 건 아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다

예전에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을 별 뜻 없이 매정하게 뿌리친 적이 있었다
그 때에는 너무 답답해서 나름 단호한 모습을 보이려 했던 거였지만 이제는 오히려 내가 그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기인 것 같다

Respon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