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9.21. (金)
군대. 생활관 중앙현관 로비에서. 직속 후임과 마주보고 서서 이런저런 시덥잖은 얘기들을 나누고 있다.
여유로운 오후 비번의 느낌이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문득. 지나치게 고요하다는 느낌이다. 생활관에 우리 말고 아무도 없다는 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나 혼자만 상황파악을 못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유리문 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활주로가 온통 물바다가 되어 있다. 넘실대는 바다가 생활관 코앞까지 들어와 있다. 압도되는 느낌이다.
바로 생활관 뒤쪽 언덕으로 빠져나와서. 안전한 곳을 찾아서 다급하게 달린다.
콜로세움 느낌의 거대한 현대식 원형 경기장의 관람석에. 홍수를 피해 몰려든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다.
이미 경기장 너머에는 바다가 출렁대고 있다. 엄청난 양의 물이 지속적으로 넘쳐 들어온다.
파도가 무시무시하게 몰아친다. 덮쳐오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얇은 깃대를 아둥바둥 꽉 붙든 채 물살을 견뎌낸다.
...콜로세움을 벗어나. 마을의 어둑어둑한 골목길로 들어선다. 뭔가 중세적인 느낌이다. 낡은 집들과 성벽이 보인다.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 아래로. 기묘한 가면을 쓴. 기묘한 걸음걸이의 종이인형들이 그림자처럼 오고간다.
예전에 내가 살던 숙소-여관-에 도착한다. 따뜻하고 그리운 느낌이다. 내가 살던 흔적. 내가 쓰던 과거의 물건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숙소의- 주인집 할머니가 등장한다. 따스하고 인자한 느낌이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못 볼 것처럼 인사를 드리고 나서. 내 짐을 모두 챙겨 나와 어디론가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