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단상들 및 메모들

Posted 2015. 4. 6. 18:52, Filed under: 카테고리 없음

1.

네이버 뮤직 정기결제를 반 년 넘게 유지 중이다. 한 달에 30곡씩 찾아서 다운받는 것도 은근히 노력이 많이 든다.

네이버 최신앨범을 쭉 훑어보는 건 기본이고, 인디 쪽 음악은 ‘주목받는’ 앨범에 안뜰 때가 많기에 (ㅠ...) 향뮤직 홈페이지를 가끔 들러줘야 한다.

요즘은 감성적이거나 우울한 음악은 귀에 안 들어온다. 그동안 파묻혀 있던 야성미나 (...) 귀염발랄함을 자극하는 노래가 좋다.

그런 면에서 걸그룹 노래 나쁘지 않다.-_-* 특히 요즘은 걸그룹 전성기의 새 세대의 시작인가 싶을 정도로 못 보던 그룹들이 막 나오는 것 같다.


신인 걸그룹 clc. 무대를 안 봐서 잘은 모르겠는데 노래만 들었을 땐 느낌 괜찮다. 왠지 잘될 것 같다(잘됐으면 좋겠다...)

피에스타. 예전 앨범들은 전혀 인상에 안 남아 있는데 이번 앨범은 느낌 괜찮다.

레드벨벳. 노래 자체는 느낌 있는데, 가사가 왜 이리 오글오글하지...-_- (ex. happiness...) 차라리 발랄한 생활형 가사가 더 낫겠다 싶다.


EXID. 심심타파 게스트 초창기부터 쭉 들으면서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렇게 늦게 그리고 뜬금없이 뜰 줄은 몰랐다...-_-

(위아래 노래도 나오자마자 들어봤지만 사실 별 감흥 없었는데.-_- 차라리 초창기 노래들이 더 내 취향에 맞다)

요새 방송도 많이 하고 완전 포텐 터진 듯하다. 걸그룹 쪽에서 ‘늦었다고 생각해도 늦은 게 아니다’의 표본이 될 듯.-_- 잘돼서 참 다행이다.


2.

평소에는 음악보다 라디오를 훨씬 더 많이 듣는다. 파일로 다운받아 놨다가 보통 노래 들을 상황에 대신 틀어놓고 듣는다.


라디오 사연 중, 집 근처 의류함을 뒤지는 엄마를 발견하고 “엄마는 왜 이렇게 궁상이야!” 하고 휙 돌아서 들어오고는 속상해 죽겠다는 이야기.

보통 이런 ‘궁상맞은’ 행동이라는 게 -남보기에 부끄럽기도 하고- 부모님의 희생이란 테마와 엮이면서 묘하게 포장되는 경향이 있는데

근데 생각해 보면, 나만 해도 자취 초반에 가구 줏어오고 절약, 효율적인 식재료 이용 등 서바이벌리즘적인 요소를 즐기던 면이 있지 않던가.

게다가 직접 어려운 시절을 겪어봤다면 더더욱, 그렇게 꾸려나가고 아끼고 하는 걸 더 즐기는 측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발상의 전환으로, 궁상이 아니라 서바이벌리즘을 지향하는 덕후적인-_- 요소의 연장선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요즘은 애매한 거 정해주는 코너 같은 걸 못 듣겠다. 듣다가도 가끔 왜 저런 비생산적인 얘기들을 하고 있나 싶다.

예를 들어 ‘주변 사람과 ...한 갈등 상황이 있는데 뭐라고 해줘야 속이 시원할까요?’ 식의 사연에서 (애초에 사연 자체가 깝깝...)

청취자 의견이라고 오는 것들이, 죄다 살살 비꼬고 배배 돌리면서 공격성을 교묘하게 위장하는 식일 때가 많아서-_-...

그렇게 살살 비꼬는 게, 솔직하고 담백하게 말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건지 궁금하다. 위장된 공격성은 공격성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차라리 솔직하게 -담백하게- 말하든지, 아니면 공격성을 다른 쪽으로 승화시키든지. 슬슬 비꼬는 건 오히려 상황을 더 꼬아놓을 거다


어쩌다 가끔 우울해지는 게 아닌 이상, 경험상 우울할 때 더 감성적이고 축 처지고 우울한 걸 찾으려 드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라디오 게스트는 뭐니뭐니해도 걸그룹이 진리다.-_- 사실 재미를 떠나서, 목소리에서 뭔가 ‘생기’가 느껴질 때 힐링이 되는 것 같다

내가 기본 모드가 우울한 인간이다 보니, 의식적으로 더 밝고 발랄하고 귀엽고 이런 것들을 더 찾아보고 들으려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3.

요즘에는 인터넷 뉴스나 홈페이지 게시판 글들을 의식적으로 멀리하고 있다.

처음에는 심심하고 근질거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인터넷 상의 글들이 나한테 눈에 띄게 정서적인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 같다.

인터넷에서 무슨 글을 보든 간에, 그건 객관적인 사실 적시가 아니라 글쓴이의 내면 이미지의 투사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

(심지어 요즘은 뉴스조차도 그렇다. 무슨 기자들이 뉴스 홈페이지로 공동 블로그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_- )


최근 몇 건의 연예인 관련 이슈들 관련글들을 보다가, 아이고 의미없다-_- 싶어서 의식적으로 신경을 끊었다.

솔까, 연예인 누군가가 뭘 그리 잘못했는지 아닌지는 우리에게 직접적인 의미가 없다.-_- 지인도 아니고 뭣도 아닌데 어쩌라고.

온라인 상에서 아무리 열심히 논쟁을 벌여 봤자, 정작 연예인 본인이나 상황에 대해서는 남들이 떠드는 것-카더라- 외에는 알 수 있는 게 없다.

오히려 그런 논쟁들은, 주제 그 자체보다는 거기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각자 저마다 자기 안의 이미지를 투사한 허수아비를 치고 있는 상황에서, 이 팩트가 어떤 허수아비에 제일 가깝냐?는 내가 볼 땐 부차적인 문제다.


그러니까... 결국 쌩판 남 얘기인 팩트 자체보다, 거기에 투사되는 내면의 허수아비를 다루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인 태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어떤 이슈를 다루기 전에 먼저 거기에 내가 투사하고 있는 내면의 허수아비가 뭔지부터 구체화해 보는 게 좋다)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인생을 관통하는 서사... 말하자면 본능적으로 끌리는 허수아비의 이미지를 내면에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 자체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만, 인간관, 인생관, 정치관 등 우리가 보는 모든 것에 투사되어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매사의 갈등에 ‘핍박’의 이미지를 투사하고, 강자에 항거하고 위계를 흔드는 ‘홍길동’의 이미지를 ‘약자’에게 투사할 수 있다)

예전에 고민하던 좌파 우파의 문제도 결국 자기서사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이성과 논리는 추후에 덧씌워지는 멋스런 포장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내가 보고 싶어하는 그림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이 팩트라고 믿고 싶어하는지를 자각한다면 그 틀에서 좀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4.

심리학에서 말하는 진정한 자기란, (흔히 착각하기 쉽듯이) ‘내 안의 진정한 나를 규정하는 알맹이’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런 핵심적인 알맹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양한 구성 요소가 협업하는 시스템이지, 단일 개체가 아니다.)

진정한 자기란, 내가 나 자신의 특정 면모들을 무시, 거부 또는 억압함으로써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의 반대의 ‘상태’로서 존재한다.

그러니까, ‘진정한 자기’를 찾아 떠난다는 건 종종 말장난같이 목표 설정부터가 잘못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 건 원래부터 없으니까.

진정한 자기를 찾는다는 것은, 1) 내 안의 무시되고 억압받던 요소들을 풀어주고 2) 생활에서 적절한 위치를 차지하게 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진정한 자기란 내가 모르는 멀리 어딘가에 가서 찾는 게 아니라, 지금 이 곳에서부터 나의 무의식에 파묻힌 것들을 탐사하는 것이다.


(...라는 결론을 최근 몇몇 심리학 책들을 읽고 나서 내렸다. 이런 생각들을 좀더 예전에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학교에서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억제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도 해소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분위기는 은연중에 억압을 종용하는 면이 있다.

자신의 욕구와 바람을 외면하고 억누르도록 만드는 이런 분위기는, 진정한 자기를 찾는 데 방해가 되면 되었지 하등 도움이 안 된다.

모든 것은 자신의 욕구와 바람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억제를 다루는 건 일단 욕구 자체를 인정하고 난 다음의 문제여야 한다.

(욕구 그 자체는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나쁘다고’ 여겨지는 욕구일지라도- 언제나 옳다. 다만 그 해소 단계에서 문제가 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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