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이 떠오르는 대로 끄적이기

Posted 2013. 11. 22. 04:52, Filed under: 카테고리 없음
정말 오랫만에 읽은 소설 하나가, 최근에 접한 어떤 음악. 영화보다 내 상태를 뒤흔들어 놓다
(그냥 단순히 아파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일주일간 지독하게 아팠다)
소설은. 시는. 애매한 묘사 외에 구체적인 이미지는 하나도 제시하지 않으면서도, 훨씬 더 선명한 이미지를 스스로 떠올리게끔 만든다
그렇게 상상해낸. 내면에서 뻗어나가는 이미지들은 대개 외적으로 직접 제시된 이미지보다 훨씬 더 아름답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소설에서 묘사하는 것은. 독자가 받아들인 것은. 작가가 표현하고픈 이미지와 꽤나 거리가 있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이걸 당연하게 기본 전제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거 같다. 완벽한 전달은 가능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계속 죽음을 생각하고 말하고 있다
사실 내가 평소에. 최근에.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들이 반-삶 지향적이라는 것조차, 순간 자각하기 전까지는 알아채지 못했다
물론 직접 뭔가를 실행에 옮길 정도로 불안정한 상태는 아니지만, 적어도 삶을 찬양하는 자세와는 거리가 있다

인생에서 기본적으로 갈 곳이 없다는 생각. 공허감. 삶에 뿌리가 없다. 돌아갈 유토피아가 없다
지금 내 인생을 관통하는 어린 시절의 무언가. 족쇄가 있다면...
홍수와 폐허. 땀. 갑갑함. 업혀 있는 등의 느낌. 습기. 축축함. 회색의 공기
이걸로 뭐라도 하나 써보고 싶다. 내 딜레탕트적 기질은 뭐가 되었든 작품 하나를 완성하고 싶어한다

정신분석은 결코 사실관계나 인과관계를 따지는 과정이 아니다. 사실관계는 오히려 중요하지 않다. 단지 사고구조, 무의식을 띄우는 작업일 뿐이다
이걸 사실관계. 인과관계의 관점에서 strict하게 접근하는 순간,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빠지가 쉬운 함정이다
(이럴 경우. 오히려. 지나치게 이쪽으로 strict하게 접근하려 드는. 스스로의 마음가짐. 사고구조를 돌아보는 게 훨씬 도움될 거다)

내 삶에서 음악감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목적성 없이 그냥 들리는 대로 듣는 경우가 많다
요즘도 네이버 뮤직에서 매주 최신 앨범 한 번씩 훑어듣는 정도의 수고는 들이고 있지만... 실제로 듣는 건 한참 유행 지난 곡들이 대부분이다
f(x) - step. 미행. epic high - one. 스웨덴세탁소 - 다시, 봄. 오렌지카라멜 - lipstic.
exid. 다소니. f(x) - snapshot. 4minute. 어쿠스틱 콜라보. 델리스파이스. 티아라 - day by day. 나르샤. 윤하. 씨스타. 더원. wild.
아이유 - 싫은 날. 우울시계. 무한도전 음원들. 그 중에서도 거머리 - i got c.

한 3~4년 전쯤의 나를 생각하면 뭔가 상상하기 힘든 플레이리스트다. 정체성의 단절과 음악 취향의 변화가 관계없진 않을 거다
점점 더 노래를 동물적으로 듣고 있다. 예전에 비해서 이것저것 따지는 게 줄어들었다. 그냥 좋으면 좋은 거지 두 번 생각할 필요가 없지 싶다

음악이. 소설 등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개별 작품들이 (곡들이.) 소비자들에 의해 훨씬 더 노골적으로 평가절하당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클래식 등. 음악적 취향이 확고한 스노브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일반 대중음악을 쉽게 폄하하며 매도할 수 있다
소설이나 기타 예술 장르에서는 이런 식의 폄하를 자주 보진 못한 것 같다. 적어도 음악에서처럼 노골적이진 않은 것 같다
이건 음악성과 관련있(을수도 있지만. 그렇다)기보다. 그 음악이 표방하는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관한 문제에 훨씬 가깝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단순히 청각적인 즐거움을 위해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이 표방하는 아이덴티티의 소비에 중점을 둔다
이런 태도에서는. 어떤 가수가 불렀는지. 가사가 어떤지. 어떤 메세지를 담고 있는지가. 실제 음악이 어떤지 이상으로 중요해진다.
똑같은 음악이라도. 가사의 내용이. 일종의 마음 속의 필터를 가동시키는 것 같다. 음악과는 별개로. 가사에서부터 이미 필터 한 겹을 거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가사와 곡을 떼어놓고 듣는 연습이 된 것 같다. 사운드마다 주의대상을 바꿔 가며 듣다 보면. 가사가 그닥 중요하지 않아지는 순간이 온다

기본적으로 상대주의적 관점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과는. 대화하는 도중에 의견 불일치가 생길 때마다. 정말 대화하기 피곤해진다
저마다 서로 다른 (possibly 상충되는) 기준을 가지고. 제각기 절대적인 진리인것마냥 들이댈 때면. 가끔 그들끼리 서로 대질을 시켜보고픈 상상이 든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늘 까다로운 사람들 틈에서 시달림을 당하며 살아온 편이었다
사람 성격을. 매사에 까다로운 사람과 아무래도 좋은 사람. 둘로 나눌 수 있다면. 나는 거의 예외없이. 아무래도 좋은 사람에 들어갈 거다
어려서부터. 나만의 고집. 주관을 존중받기보다. 주변인들의 제각각인 주관. 상호모순된 관습 및 전통들을 주입받아 왔다
삶에 줏대가 없다. 확고한 기준이 없다. 대부분의 낯선 것들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지만, 무엇 하나도 제대로 내면화하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내 인생을 관통하는 거대서사 중에는.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상관하지 말라. do not touch me. 의 서사가 있다
나는 너희들에게 원하는 게 없으니.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말아 달라. 나도 가만히 있을 테니. 제발 나를 가만히 놔둬라. 어떤 형태로든 구속하지 마라.
생각해 보면. 이제껏 나는 스스로 꽤나 열려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단지 내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꽉 막혀 있는 사람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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