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집에 있던 거. 양을 쫓는 모험에 이어서 읽다.
양을 쫓는 모험보다 다 읽는 데 한참 오래 걸렸다. 한번에 느낌이 빡 오던 전작에 비해서는. 뭔가 세부적으로 긴가민가한 부분이 남아서...


p.23-
“나는 자주 이루카 호텔 꿈을 꾼다.”
“꿈 속에서 나는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 즉 일종의 계속되는 상황으로 나는 그 호텔 안에 ‘포함되어 있다.’ 꿈은 분명 그러한 지속성을 제시하고 있다. 꿈 속에서의 이루카 호텔의 모습은 일그러져 있다. 아주 길쭉한 것이다. 어찌나 길쭉한지 그것은 호텔이라기보다 지붕이 있는 아주 긴 다리처럼 보인다. 그 다리는 태고로부터 우주의 종국에 이르기까지 길쭉하게 뻗어 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선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호텔 그 자체가 나를 포함하고 있다. 나는 그 고동 소리나 온기를 또렷이 느낄 수가 있다. 나는, 꿈 속에선, 그 호텔의 일부이다.”


이번에도 소설 전체의 감성을 함축하고 있는 듯한 꿈으로 시작한다. 온전히 상실된. ‘돌아갈 수 없는’ 것에 대한. 아련한. 슬픈 회귀본능의 이미지...
전작-양을 쫓는 모험에서 과거가 ‘끝났다는’ 명백한 선고를 받아들였지만. 정작 그 상실을 제대로 다뤄내진 못했다는 느낌이다.
(찬찬히 성찰적으로 분리된 게 아니라. 마치 강제로 ‘뜯어내어진’ 듯한. 손상. 상실의 느낌...)
잃어버린 고향. 디아스포라. 수몰된 고향의 이미지. ‘돌아갈 곳’이 사라지고 나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혼란스런. 아노미 상태의 느낌이다.
어지간히 자아이질감이 쩌는 느낌이다. (익숙한 느낌이라 안쓰럽다.ㅠ) 자기 자신을 ‘볼’ 줄 모르고. 변화를 다뤄낼 줄 모른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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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있으면 ...가끔 공기가 쑤욱 엷어져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에요. 마치 달에 있는 것처럼.”
메이저 탐. life on mars의 메타포와도 연결되는. 삶-현실-에 연결이 빈약한 느낌이다. 죽어버린 과거가 그대로 공백으로 남아버린 느낌...


주인공을 보면 뭔가 묘한 느낌이다. 직감도 좋고. 이미지와 메타포에 능숙한데도. 정작 그 심리적 의미에는 깜깜한 듯한...


삿포로로 무작정 떠나는 건... 내가 예전에 (비슷한 심리적 처지에 있을 때) 무작정 고향으로 떠났던 게 생각난다. (같은 심리적 과정이 아닌가...)
그때 나한테도 마술같을락 말락 하는 일들이 있었고... 나는 거기서. 과거의 ‘죽음’을 재확인하고 (애도하고)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는데...
주인공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신비한. 자신만을 위해 남겨진 공간. 양사나이가 있는. 모든 곳이 연결되는 자기의 ‘중심’. ‘핵’...같은 곳으로 ‘돌아온다’.
“당신이 돌아오려고 생각지 않는다면, 여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요.”
(나도 저런 식의 *뭐라도*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한 줄기 기대를 했었지만.ㅠ *당연히* 없었지.) (없는 게 당연하지)
(애초에 건실한 성장보다는. 아련한. 슬픈 환상의 영역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양사나이야말로 회귀의 메타포의 핵심에 있는 중심 이미지고.)


p.151-
“춤을 추는 거요. 음악이 울리고 있는 동안은 어떻든 계속 춤을 추는 거야.”
“왜 춤추느냐 하는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요.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발이 멎어.”


이후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은. 과거와의 (회귀적인) 연결점들을 찾아내고(재경험하고). 그 연결된 방식들을 확인하는... 일종의 ‘순례’와도 같다.
키키를 매개로 연결되는 사람들은. 죄다 (주인공의) 상실. 회귀본능과 관련된... 주인공에게 뭔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종류의 사람들이다.
시작점-키키로부터 시작해서. 고혼다. 유키. 아메. 딕 노스. 준. 기타 등등을 돌아. 결국 다시 유미요시까지-
단서에 단서를 이어. 연결에 연결이 이어지는. 가지가 뻗어나가는 느낌이다. 세렌디피티. “연결돼 있어” 마치 자유연상처럼-


p.157-
“역이 다가온다- 자, 이번엔 눈길을 집중시켜 틀림없이 읽어 내야지,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틀렸다.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이다. 글자의 형상은 막연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글자인지는 분명치가 않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것은 뒤로 지나쳐 버린다. 그런 일이 끝없이 계속되었다.”
요런 감각의 연속이 자유연상이고 꿈 해석이다. 잡힐락 말락 하는 어렴풋한 무언가를. 기다리고. 쫓아서 결국에는 붙잡고. 또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것-


but. 뭔가. 과거가 제대로 성찰되고 분리되기보다는. (양을 쫓는 모험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강제로 ‘떼어내어지고’ 있다는 느낌에 더 가깝다...
다시 한 번 과거에 접근했음에도. 상실을 다뤄내는 태도가 양을 쫓는 모험 때랑 근본적으로 뭐가 다른지도 모르겠고...
(쬐끔은 더 성찰적인 거 같고. 재차 상실들을 겪으면서 어떤 감각을 일깨운 것 같긴 한데. 아직 그 정도로는 ‘본질적인’ 차이는 아니다...)
(양을 쫓는 모험에 대한. 재확인 같은 느낌...) (일종의 애도 ‘과정’일 수도 있고... but 애도가 끝까지 마무리된 느낌이 아니다)
결말 바로 직전까지도. 유미요시에 대해. 그녀도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상실해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악몽...)
뭔가. 이 양반은 아직도 시행착오 중이고. 여섯번째 해골은 유미요시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스멀스멀 온다.
읽기 전부터 으레 ‘다음 단계’ 성숙의 얘기겠지 했었고. 읽고 나서도 얼핏 해피엔딩인가 싶어 긴가민가했는데... 암만 생각해봐도 뒷맛이 찝찝하다.


p.166-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안 되겠다. 나는 나 자신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어느 쪽을 향하면 좋을지조차 알지 못한다.”
“(유미요시와 지금 잔다고 해도) ...그래서 어떻게 될 것인가, 거기서부터 어디로 갈 수 있는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어디로도 갈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더 잃어버릴 뿐일 것이다. 왜냐하면 나로선 나 자신이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가 파악되지 못하고 있는 한은, 헤어진 아내가 말하는 것처럼 나는 온갖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책 앞부분에서) 요래 거창하게 말은 해놓고. 그러면 지금은 자기가 뭘 구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서 돌아온 거냐고.-_-+
“굉장히 혼란스러웠는데 그 혼란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냐. 아마 혼란은 혼란스러운 대로 존속하리라고 생각해.”
유미요시 역시 (과거인) 호텔을 매개로 주인공과 연결되어 있는 거고. 주인공은 더 이상 (회귀적인) 뭔가를 잃어버리는 걸 견딜 수 없을 뿐 아닌가...
이것만은 상실하지 않았어. 이 연결은 굳건해. 식의 희망?같은 걸 말하고 싶어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게 위안은 될지언정 성숙은 아니다.


(등장인물 어쩌고 짜잘짜잘하게 쓰다가... 너무 길어져서 그냥 싹 날려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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