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뭣도 모르던 한 때는, 천재성과 abnormality의 연관성에 대한 환상을 가진 적이 있었다
고흐의 예술성과 미치광이 행각들, 다빈치의 천재성과 편집적 성향 및 온갖 미친-_ 철학자들이 풀어놓는 현학적인 썰들을 읽어 가며
특유의 unique한 기질, ‘천재성’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깟 normality야 미련없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normality - 확고한 stability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깟 천재성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그저 절실하다
세상과 애써 모나게 부딪치고 싶지 않고, (그로 인해 피곤해진다면) 굳이 깨인 시각을 갖고 싶지도 않다 - 현실을 - 실재를 애써 직시하고 싶지 않다
그냥 모래 한 알마냥 생각없이 살다 갔으면 소원이 없겠다 - 복잡한 건 이제 지긋지긋하다 - 비핵심적으로, 곁다리로 설렁설렁 가고 싶다

2.
이자스민 당선자와 제노포비아 -
최근 들어 부쩍 (특히 웹상 일부에서) 세기말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_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이 지경이 됐지...-_ )
다음이나 네이버 뉴스 댓글들을 보다 보면 거의 공포스러울 지경이다 - 외국인 꺼지라느니 운운 극우 네오나치스러운 발언들이 오고가고
그런 인간들 중 다른 데서는 나름 진보랍시고 정의의 사도인 양 설치는 꼬라지도 종종 보인다는 게 참 갑갑하다
(...외국인 거주자 보호하고 다문화주의 어쩌고 하는 건, 예전부터 보수보다는 진보의 가치에 더 가까운 사안이라 생각했었는데 - )

p.s. 몇몇 글들을 보면, 이런 발언들이 진보 진영에서 ‘주로’ 나왔다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지는데 - 최소한 내 관찰로는 그렇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러한 종류의 발언자 중에서는 오히려 진보 진영에 적대적인, 극우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찾아보기 쉬웠다 - )
(...but.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신이 진보이며 정의의 편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와중에, “나는 순수하게 이자스민의 학력의혹을 심판하고 싶을 뿐, 제노포비아와는 전혀 상관없다!” 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간혹 보이는데
사실 주변 세부조건 다 떼고, 제노포비아적 맥락 100% 제거하고, 정말 학력 문제만 ‘순수하게’ 떼어내어 별개로 다루는 게 가능하다면 별 문제 없겠지만 -
...지금 상황이 그렇게 안 돼니 문제지-_ 돌아가는 상황이 그렇게 될 리가 없지-_ (환원주의적 사고의 헛점 - )
네오나치적 정념이 오가는 한가운데에서, 이미 학력 검증 뭐시기는 맥락상 절대로 ‘가치중립적’이 될 수 없다는 걸 모르는 척하는 건가?

p.s. 재밌는 건, 자신은 단지 학력 문제제기만 할 뿐이라던 사람들 중, 말이 길어질수록 제노포비아적 뉘앙스가 은연중에 드러나는 경우가 있더라는 것 -

3.
시험 기간이 되어서 공부하려니, 새삼 (수업 및) 교수님들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을 느낀다 -
교과서도 필요 없이, 자기 나름대로 내용을 재구조화하여 핵심만 딱딱 짚고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교수님이 계신가 하면,
책 없으면 수업 이해 자체가 불가능하고-_ 설명도 막 넘어가면서 “뭐 어쩌겠어. 다 외우면 돼-_ ” 식으로 이죽대는 (...) 교수도 있다
전자와 같은 케이스의 수업들은 공부 몇 시간만에 전체 맥락 (재)파악이 가능하고, 시험 결과에도 그럭저럭 승복이 가능한데
후자의 수업(들)의 경우-_ 시험공부하면서 욕을 한 바가지를 쏟아낸 것 같고-_ 시험보면서 속으로 또 욕을 한 바가지-_ 결과 보고 또 씨부렁씨부렁-_

...하여튼-_ 말하자면, ‘맥락 중심의 수업’과, ‘내용 중심의 (스스로 맥락을 구성해야 하는) 수업’이라고 표현하면 얼추 맞는 것 같은데 -
특이할 점은, 의외로 전자의 수업보다 후자의 수업을 ‘편하게’ 생각하는 애들이 훨씬 많다는 거다
(우리 과 주류 교수님들이 대개 후자 스타일이기도 하고 - 내가 좋아하는 교수님 수업들은 대부분 매니악한 소수 정예로 진행되는 것만 보더라도-_ )
사실 후자의 경우, (개인적으로) 중고등학교 때 으레 듣던 전형적인 수업 방식의 연장선격에 있다고 여겨지는데
맥락을 총체적으로 짚기 이전에, 그냥 외우면 되는 - 빈칸 채우기식 - 내용 중심으로 일단 배우다 보면, 어렴풋이 맥락이 잡히기 시작하는 -

...나는 언젠가부터, ‘맥락’이 ‘사실’에 우선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 맥락에서 흥미를 못 느끼면)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
내가 이걸 왜 배워야 하는지, 지금 이 얘기가 왜 나오는지 - 그게 두루뭉실한 상태로 아무리 열심히 떠벌거려 봤자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은 거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훌륭한 교사는 단순한 지식의 주입이 아닌, 지식의 ‘체계화’를 도와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
(이건 아무리 써도 써도 정리가 안 된다...-_ 다른 적당한 말이 떠오르거나 조금 더 생각이 깊어지면 여기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써봐야 될 것 같다 - )

p.s. 가끔 우리 중에 스파이가 있는 게 아닌가-_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_ 내가 종종 교수님 흉보는 (투덜대는) 걸 교수님이 알고 계신가?

4.
예전부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듣는, 무려 ‘예뻐 보인다’(...)는 칭찬 -
며칠 전에는 엄마 친구분한테 “아이구, 머슴아가 어쩜 이리 이뻐? 이대로 여자옷 입혀놓아도 되겠네.” 라는 아주 구체적인 칭찬을 들었을 뿐이고...-_
...생각해 보면, 어려서부터 부모님(어머님)한테 “딸이었으면 좋겠다 - ” 는 소리를 은근히 많이 들었을 뿐더러
예전에 중학교 때는 축제 때 나를 여장(...)시키고 말겠다며 을러대던 여자애들도 몇 명 있었지-_ (지금은 다들 어디서 뭐하고 있으려나...-_ )
이런 종류의 얘기를 하도 들어서 그런지-_ 나 스스로가 전형적인 ‘남성성’보다는 ‘중성적’인-_ 이미지를 지향하는 면이 있는 듯하다
...안 그래도 졸업 전까지 머리나 계속 기르려고 생각 중이었는데-_ 이것도 생각해 보니 결국 비슷한 맥락 위에 있는 듯?

5.
요즘 들어 문득 체감되곤 하는, 두 문화(two culture) - ‘인문 문화’와 ‘과학 문화’ 사이의 간극 -
비슷한 은유로는 문과와 이과, 이성과 감성, 물질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 논리와 직감(본능), (상징으로서의) 남성성과 여성성, 성(聖)과 속(俗)... 등등 -
말하자면, “과학(논리)으로는 분석될 수 없고 설명될 수도 없는, 어떤 고귀한 가치(기준)가 존재한다!” 뭐 이런 건데
최근 추세로는 ‘감성기계’ 아이폰과 애플빠 및 까,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 및 반발 - 심사평 “노래는 기술보다 ‘진정성’이 있어야...” 및 상상력, 창의력 드립 -
기존 나가수에 은연중 묻어나던 가치 - “잊혀진 기성가수들의 노래에는, 아이돌에게는 없는 ‘영혼’이 있다!” 역시 결국 비슷하게 볼 수 있을 듯하다

...사실상 이런 간극은 산업혁명 이후의 반기계적 감성 - 과학주의와 낭만주의 - 에서부터 어느 정도 맥락이 쭉 이어진다고 보는데
(당대의 문학 작품들 - 블레이크, T.S. 엘리엇 등등의 작품에서 산업화 및 과학에 대한 혐오가 뚜렷이 나타나며 - 이러한 경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 )
지금까지 과학주의와 낭만주의의 승부는 (큰 관점에서 볼 때) 거진 과학주의의 승리로 이어져 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반과학적인 입장을 취한 많은 사상가들도, 사실상 어렴풋한 개념 이상의 합리적(과학적?)인 설명 및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것 - )
(대신 낭만주의는 감성과 직관이 중요시되는 예술 (및 종교) 분야를 주축으로 해서 살아남은 측면이 크다 - art vs. science - )

요즈음 인문 문화와 과학 문화의 ‘융합(hybrid)’이 무슨 유행처럼 번지는 것 같은데 (...그게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와는 별개로 - )
(과학에 ‘감성’을 불어넣으려는 방향과, 감성을 measure하려는 방향 -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겠다 - )
단, 과학적 기반이 부재한 상황에서 어설프게 과학주의적 속성을 불어넣으려 들면 (융합?) 오히려 문제가 생기기 십상이라는 점 - (like a ‘cargo cult’?)
(예를 들어, ‘창의력’에 대한 수업을 하면서, 시험 문제가 전형적인 사지선다형에다 내용을 달달 외워야 풀 수 있는 (...) 형식이라든지 - )
(또 다른 예로, 노래 - 예술을 대상으로 (낭만주의?) 심사의원들이 심사평을 한다 해도 (...과학주의?) 그게 과연 얼마나 객관적이 될 수 있느냐든지 - )

...-_ 이래저래 생각나는 대로 주저려 놓았지만-_ 늘상 이런 식의 글을 쓸 때마다 흐지부지 끝날 수밖에 없는 건 결국 내 한계다 -

6.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태 및 당권파 비당권파 사이의 갈등 운운 -
언뜻 보면 굉장히 막장스러워 보이는 상황이지만, 어쩌면 이번 사태가 오히려 진보 세력이 진짜로 진보하기 위한 critical한 갈림길일지도 모르겠다
과거부터 “진보 정당이 힘을 합칠 수만 있다면 한나라당을 이길 수 있다” 식 드립을 인터넷상에서 자주 봤었고 - 나도 한때 혹했던 게 있고 -
하지만 막상 통합이 이루어지니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 그리고 드디어 지금까지는 겉에서 잘 안 보이던 소위 ‘당권파’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무난하게 끝내기보다, 오히려 갈 데까지 한 번 가 봤으면 좋겠다 - (단기간의)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더라도 내 알 바 아니다 (...)
속을 완전히 게워내고 요란하게 몸살을 치뤄 봐야, 한국 진보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뭘 털어내고 뭘 감싸안아야 할지 명확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p.s. 내가 예전부터 진보에 상당히 호의적인 건 사실이지만, 내가 진보인지 - 내가 뭔지 나도 잘 모르겠다...-_ 그냥 이도저도 아닌 회색분자인 듯 -
p.s.2. 사실 무슨 대형 떡밥 터질 때 아니면 정치는 그냥 어쩌다 신문 한 번 슥 훑어보는 정도 - 별반 내 주 관심사라고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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